일요일 상황도 어제와 다름없이 교통이 통제되면서 뉴스에서는 조금씩 ‘불만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가며 교통을 통제했어야 했는지 최소한 버스라도 다녀야 하는 것 아닌지….
▲ 맨해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로인 23 스트릿이 텅 빈 가운데 연인 한쌍이 모터 스쿠터를 타고 대로변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아직 허리케인이 다 지나간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피해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더 사태를 지켜본 뒤 교통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빨라도 16시간은 지나야 정상 가동 될 것이라는, 어이없고도 참으로 배려 없는 보도만이 나오고 있다.
▲ 문닫은 백화점 쇼윈도우 앞의 홈리스
뉴스가 뉴스가 아니고 뉴욕 시민을 상대로 한 겁박(劫迫)이나 협박(脅迫)과 다름없다고 느낀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거 아닌지 타박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소 ‘저이가 정말 주지사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뉴저지의 크리스티(Christie) 라는 지사는 금요일 오후 방송에 나와서 뉴저지가 접해 있는 대서양 연안의 해수욕객들에게 수준 떨어지는 말을 해댔다.
“You're done. It's 4:30. You've maximized your tan. Get the hell off the beach. Get in your cars and get out of those areas.” “지금 오후 4시반 입니다. 선탠은 그만하면 되었으니(비꼬듯이) 당장 ‘빌어먹을’ 해변에서 나가세요. 차를 타고 이 지역을 어서 벗어나세요.”
▲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왼쪽사진)와 왈더 뉴욕시 교통국장
TV 뉴스에선 ‘Prepare Your Grab Bag’(비상 물품만 챙긴 가방)을 당장 챙겨서 어디로든 가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었다.
▲ 얼마나 겁을 줬는지 아파트 20층 창문에도 저렇게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심지어 ‘Yesterday was Funny but Not Today’ (어제는 재밌었는지 모르나 오늘은 아닙니다) 라는 야유적인 표현도 나오고 ‘This is not a Joke this morning’(오늘 이 아침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심각하게 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한 채 불안을 종용(慫慂)하는 모습이었다.
어제처럼 블럭마다 포진된 경찰차나 주 방위군의 군차량들이 이동하는 모습과 여차하면 ‘복구가 아닌 전기를 먼저 끊어야 할 상황이 될지 모른다’며 비상대기하는 수십대의 콘에디슨 사의 전력차량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알아서 기도록, 아니 주눅들게 만드는 부분도 없지 않아 보인다.
▲ 전기회사 콘 에디스 차량들이 유니온 스퀘어 광장에 무려 20대가 넘게 비상 대기 중. 복구도 그들의 일 이지만 여차하면 전력을 일부러 더 큰 피해를 막기위해 끊어야 (?) 하는 책무가 있다고 한다.
겁주는 문구 중에서도 ‘Don’t Panic. But Get Out Now’ (겁먹지는 마시구요 하지만 지금 당장 나가세요) 라는 것은 겁을 잔뜩 줘 놓고서는 겁먹지 말라는 아이러니컬한 표현으로 겁주는 문구의 백미(白眉)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 차량이 거의 통제된 맨해튼은 보행자의 천국이 되고 자전거의 천국이 되고.....
본래 뉴욕은 조금만 비가 퍼붓거나, 눈이 조금만 쌓여도 도서관이며 관공서가 일제히 문을 닫으며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전을 염려한 예방차원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주의를 넘어서는 경보발령은 주변을 패닉상태로 몰아가기 일쑤이다.
▲ 50 kg이 너끈히 넘어 보이는 쓰레기 통을 자건거 전용 주차장에 비닐 노끈으로 힘있게(?) 묶어놓은 모습이 실소를 자아낸다.
아무튼 뻥이 센 뉴욕은 과잉대응 내지는 과잉방어 등으로 필요이상으로 과도한 도시다. 더러 항의나 불만을 제기라도 하면 불량한 정도를 넘어 험악한 경찰의 눈빛도 감당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반한데 따른 벌금을 무제한으로 발부하기도 한다.
▲ 맨해튼의 명물인 플랫 아이언 빌딩의 1층 뱃머리를 연상시키는 Flatiron Prow 에 합판을 둘러치기 위해 마구잡이로 못을 박는 모습을 지나가는 시민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한편으로, 차량들의 홍수와 붐비는 인파 속에 길들여져 있다가 텅 빈 거리의 맨해튼은 딴 세상 이었다. 어쩜 그렇게 색다르고 처음 보는 건물들이 그렇게나 많던지…. 태풍덕분에 이제껏 뉴욕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별 세계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자유로웠다. 길이 뻥 뚫려서 택시가 광속으로 질주하듯 하는 모습은 다소 위험하고 생경했지만 대로를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는 여행자들 무리 속에서 사진들을 담는 모습은 평화로와 보였다.
▲ 홈리스 등이 맨해튼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 되었다.
특히, 셧다운된 지하철에서 쫒겨난 노숙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많은 홈리스들이 눈에 띄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교통지옥과 인종전시장이라는 뉴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조용함을 만끽한 토요일 이었다.
▲ 태풍과 무관하게 절대 문닫는 일 없는 이곳으로 오세요 라는 문구가 적힌 한 펍(Pub)
그러나 어젯밤 우리가 해댄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시간이 곧, 돈’ 이라는 엄연한 현실인 이곳에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태풍이 시늉이라도 하면서 가줘야만 당국도 할 말이 있을텐데 하는 쓰잘데 없는 걱정이 들었다.
▲ 허리케인을 대비해서 붙였다는 유리창에 붙인 투명 테이프가 마치 예술사진을 방불케 한다.
지금은 오전 11시. 아직도 카메라의 앵글은 자꾸만 뭔가 더 심각한 재해상황을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껏 보이는 피해 상황이라곤 하나같이 해변가에 설치한 바람막이가 파손되었다는 정말 태풍 아이린 이름을 들먹거릴 수 조차 없는 경미한 것들인데도 애꿎은 자연을 향해 사람이 부실하게 만든 시설물 파손을 들먹이며 ‘자연재난’이라는 어이없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대고 있다.
▲ 못된 아이린(Bad Irene) 이라는 표현이 유리창을 도배했다.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은 이의 불만이라고나 할까.
차라리 그럴 시간에 평온했던 지난밤을 떠올리면서 피해가 없이 지나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태풍은 지나갔으니 이제 안심하고 생업에 몰두 할 수 있도록 묶어놓은 버스나 지하철부터 빨리 풀어야 하지 않을까?
▲ 토요일 맨해튼. 경찰과 소방서, 콘 에디슨을 제외한 유일하게 일을 하고 있는 우체국의 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철딱서니 없는 소리라고 돌팔매 맞을지도 모르나 백 년만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정도의 무서운 태풍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준(準) 전시를 방불케 하던 상황에서 새로운 얼굴의 맨해튼을 만난 것에 감사를 해야 하나 아님, 원망을 해야 하나 당최 헷갈리기까지 하는 일요일이었다.
▲ 팔의 동작이 겁박을 하는 느낌이다. ‘당장 나가라니까!’ 종이에 수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