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 앉자마자 영화가 곧 바로 시작되었다. 얼마 안 되어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보여주는 한국 독립 영화제에 선정된 작품이었으므로 뭔가 다른게 분명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독립영화에 관심있어 하는 미국인을 대동하고 자신있게 간 것은 제목때문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특히, 젊은 감독이 만든 한국 영화를 각별히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애니멀(Animal) 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 때문에 그 주의사항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만것이다..
영화 내용이나 감독, 그리고 배우에 관해서 전혀 몰랐지만 ‘애니멀 타운’을 자신있게 소개하고 같이 동행 한 이유는 며칠전 '소'가 비중있게 다뤄진 독립영화 한 편을 막 본 다음이라 짐승이라는 어감이 아닌 동물에 관한 이야기 쯤으로 지레짐작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이었지만 남녀의 肉德(육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신체의 노출 수위가 한껏 높은 적나라한 정사 장면을 보노라니 뜨악한 생각이 들면서 나의 부주의 함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에서 느끼기 시작한 자극적이다 못해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장면들. 나아가 잔인하고 섬뜩한 폭력성이 넘치는, 수백만 관객이 든다는 그런 한국영화들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잔혹한 영화가 많다는 것 그리고 악역을 단골로 하는 유명 배우들이 많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를 수용하는 관객과 비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내용이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고 그런 장면을 담는 카메라의 현란한 기술이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과도한 폭력조차 영화의 메시지 뒤에 숨어버리는 현상을 언제부턴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멀 타운'은 여러가지 부분에서 내겐 충격적이었다. 정사 장면이 있긴 했지만 선정적이진 않았고 폭력 장면이 있었으되 엽기적이지도 않았건만 충격으로 온 것은 '영화 속' 이라는 것을 잊고 마치 실 생활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몰래 카메라의 눈으로 훔쳐보는 긴장감과 현장감 그리고 사실감이 느껴져서 더욱 그랬던것 같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독립영화는 우리에게 많이 낯설고 상업영화에 치여 많이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바탕으로 제작에서 배급까지 독점적인 관행을 일삼는 상업영화들. 재미와 흥미 위주로 치닫는 화려한 영화들이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 잊게 만드는 기괴한 屬性(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인디즈(indies)라고 불리는 독립영화(獨立映畵, Independent Film)는 참신한 아이디어, 독창적(獨創的)인 전개 방식 등 자유롭게 의도대로 제작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그러나 저 예산에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해서 미숙하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독립영화를 보고 나서면서 많은 질문들이 맴돌곤 한다.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었을까? 출연료는 고사하고 제작비나 건졌을까? 과연 몇 명의 관객이 들었을까? 등 등 여러가지 궁금한 점들이 많다. 이런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 독립영화 만의 숨은 매력이 아닌가 싶다.
독립영화는 하고 싶은 소리를 하기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가상하고 신선하다. 세련되지는 못해도 눈물겹도록 직선적인 메시지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바로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도 독립영화의 특성이다. 늘 숙제가 남는다. 풀리지도 않는 그런 숙제 말이다.
도시라는 배경으로 아동성폭력 전과자와 그 피해자를 그린 '애니멀 타운' 에서 그리고 이방인의 눈에 비치는 도시 '모짜르트 타운'에서도 탈북 여성의 시선에 걸리는 낯선 도시 '댄스 타운' 모두가 무겁고 씁쓸했다. 허구의 남의 이야기 같지만 실은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설정에 가슴이 저며왔다.
상업영화가 기름진 반찬 이라면 독립영화는 양념이 적은 수수한 나물반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오래 씹으면 씹을 수록 나는 특유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 그런 산나물 반찬 이라고 비유될 수 있을것 같다. 그래서 화면의 구성이나 카메라의 앵글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솔함과 진실됨이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느껴지는게 아닐까?
한국 사회에 뜨거운 감자처럼 자주 등장하는 ‘아동성폭행’이란 단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후유증이 慘憺(참담)해도 스스로 알아서 숨어버리게 만드는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이상한 법이 성에 관한 법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그 법은 無用之物(무용지물)로 약자를 대변하거나 위로해주지 못하고 가해자를 엄단하지도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운 시리즈 영화 모두가 쉽게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길고도 깊은 餘韻(여운)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전규환 감독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간담회’를 통해서 만나 본 감독은 열정과 노력에 자신의 가산까지 저당 잡히면서 몰두하는 그런 ‘바람직한 영화광’이 아닐까 설레이게 된다.
좋은 독립 영화를 만나고 싶은 바램으로 적어본 각오들..... 실수 투성이의 모습이나 완성되지 않은 미숙함에 너그러울 것,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과 같은 이치로 초라하고, 엉성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지켜 볼 것, 영화가 실망스러울지라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줄 것, 십시일반으로 영화를 후원하는 일 그리고 영화표 사는 일에 인색하지 말 것..... 이것들이 조금씩 갖춰지면 머지않은 싯점에 실력있는 미래의 巨匠(거장)들을 나게 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든다.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는 말을 사족(巳足)으로 붙여보고 싶다. 끝으로 애니멀 타운 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전규환 감독을 좀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간담회에서 오간 질문과 답을 몇가지 정리 해 보았다.
▲ 제목/ Torso Figures Croquis 설명/ Animal Town은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사는 '짐승의 도시' 라고 해석이 될까? 종이에 연필, 콘테, 물감. 2009.
-전 감독의 영화가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상영이 되고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데 무엇때문이라고 보는가?
“한국 영화시장의 독과점 방식이라든가 대기업적 횡포가 없지 않아 있는게 현실이다. 어디서 상영된들 어떨까 싶지만 이왕이면, 우리가 우리 말로 우리 정서로 우리의 배우들이 만든만큼 뭉뚱거려서 이해할 수 있는 한국에서 상영 기회가 많고 더욱 인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영화를 보면 누구 영화 같다, 어떤 영화를 닮았다 이런 의견들이 있는데 그부분에 대한 생각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혹,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영화나 어느 감독과 닮아있거나 겹치거나 하는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손질한다. 내용은 물론이고 나아가 카메라의 앵글, 편집까지 다른 무엇과 닮았다는 느낌이 있다면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나만이 만들어 내고 풀어내는 나만의 색깔이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카메라 앵글이 다른 감독과 판이하게 다르다. 무엇때문인가?
“기교적인 면을 배제한다. 그런 차원에서 영화음악도 취소했다. 비록 이 영화가 다큐가 아닌 허구일지라도 사실을 추구하는 그런 앵글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트라이포트(삼각대) 사용이나 심지어 레일을 이용한 이동차 사용도 가급적 쓰지 않는다. 할 수 있는만큼 기술적이고 기교적이지 않아야만 도시의 현상, 사회의 현상 그리고 진실에 가깝게 근접할 수 있을것 같기때문이다.”
-타운시리즈 3편을 통해서 같은 배우를 다른 역할로 계속 출연시키고 있는데?
“같은 배우지만 다른 역할을 통해서 배우의 力量(역량)을 볼 수 있다. 연기 스펙트럼을 통해서 배우의 다양한 폭이랄까, 깊이를 새로 발견하게 되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소아성애자로 연기한 주연배우는 너무 사실감이 느껴져서 진짜 배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의 어떤 장점이 결정적으로 캐스팅을 결정 하게 되었나?
“연극배우이자 코미디 배우다. 그러나 변신을 꾀할 수 있는 그의 연기 예술에 거는 기대가 커서 캐스팅 하게 되었다.”
-뉴욕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캐릭터가?
“뉴욕은 영화를 하기엔 정말 매력적인 도시이다. 먼저 최소한 몇 달 살아보면서 좌충우돌 하다보면 이곳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나올 것이다. 지구상에는 60억 인구가 있고 각기 저마다 60억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애니멀 타운 및 타운 시리즈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연 배우가 있지만 궁극적인 주인공은 ‘도시’이다. 서울의 도시를 조명하고 있지만 지구상 어느 도시에게서 있는 모습이다. 서울이 그렇게 영화처럼 어둡고 칙칙한 것만은 또 결코 아니다. 내가 봐 온 도시와 대중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도시와는 갭(차이)이 있는 것 같다. 도시의 상처받고 상채기 내는 그런 보편적인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사람들을 외모나 차림새 등으로 판단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시장에서도 상업영화에서는 캐릭터를 이미 정형화된 이미지나 틀에 맞추어 끌어나간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캐릭터 하나를 만들때도 패턴, 행동, 내면의 연기를 통해서 독립적인 고유 캐릭터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게 독립영화를 만드는 매력이다. 내가 만든 사회적 드라마가 아무쪼록 무료하거나 지루하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도 긴장감이 늦추어 지지 않는 그런 영화로 만들고 싶다.”
-계속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것인가?
“도시영화....한마디로 힘들었다. 다음 작품은 도시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다.”
영화제도 끝났고 간담회도 끝났다. 전규환 감독의 다섯번째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바라나시(Varanasi)’ 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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