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적 맞은 생일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왜냐면, 열명이 넘는 대 식구 속에서 끝에서부터 두 번째였던 터라 미역국은 먹었던 것 같지만 서열(序列)에 밀려 생일을 찾고 자시고 할 계제(階梯)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교 다니던 내내 생일과 절묘하게 겹쳐지던 기말고사며 연말고사 그리고 리포트 등으로 생일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날 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습관적으로 으레 혼자 조용히 지내곤 했다. 짓궂은 친구들과 어울리던 어느 해는 생일축하노래 대신 ‘왜 태어났니?’라는 자조적인 노랫말에 기가 팍 죽어 더 침잠(沈潛)된 생일들로 이어진 기억도 있다.
▲ 아이를 낳은 산모가 먹는 미역국. 생일날 전통적으로 미역국을 먹는것은 엄마를 생각하도록 함은 아닐런지.
그렇다고 생일이 늘 우울하고 재미없던 것만은 또 아니었다. 비록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이긴 하지만 기쁘고도 그러면서도 한편 슬프고도 한 그래서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생일에 대한 추억도 있긴 하니까.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간 잃어버리고 살았던 생일을 보상(報償)이라도 받듯이 엄청난 밀도와 부피 넘치는 생일의 의미들을 남편을 통해서 찾기는 했지만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또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칠면조 파티로 어우렁더우렁 넘어가거나 연말휴가에 대충 묻어 지나는 날이 되었다.
마침하게 생일을 기념할 만한 일이 없어서 혹은, 생일을 찾아먹지 않아서 또는 못해서 불만이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파티가 없다고 한번도 초라하게 느낀 적 없고, 아는 척 해주는 이가 없다고 해서 행여 서운함을 느껴본 적 또한 없다. 그냥 생일은 태어난 사람이 주체가 아닌 태어나게 만들어준 엄마에게 공을 돌려야 할 날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일 뿐이다.
올 해의 생일은 특별했다. 한 보따리의 웃음 선물 덕분이다.

▲ 필통이며 문구제품을 통해서 중학교 때 처음 본 스누피는 이름은 몰랐어도 가장 좋아한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대한 풍선 스누피는 나의 동심을 어루만져주는듯 했다.
첫 번째 함소(含笑)
일어날 시각임에도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나는 쉬이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베갯머리 맡에서 들린 ‘생신을 추카 함니까?’ 로 시작해서 ‘생신을 추카 함니까’ 로 끝난 노래. 한 소절이 끝날 때까지 비몽사몽(非夢似夢)에 개사와 편곡이 뒤죽박죽이 된 노래였지만 뜻만큼은 올곧게 전해져 잠결에도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어른들께나 쓰는 ‘생신’이란 단어도 맘에 쏘옥 들기도 했고.
두 번째 파안대소(破顔大笑)
엄마와 통화를 했다. 모녀간의 통화가 끝나면 으레 그렇듯이 사위도 엄마와 짧은 통화를 한다. 단답형 안부 인사가 대부분으로 통역없이도 웬만한 통화가 가능해진 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돌발상황(突發狀況)이 일어났다. 소위 말하는 미스 커뮤니케이션(miss communication)이 이라고나 할까? “장모마마! 역바써요”를 연발해대는 사위 그리고 “뭐라 그러는고? 난 못알아 듣겄다”면서 (Don’t know 대신) “해브 노”를 외쳐대는 엄마의 의사소통은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고생했다 내지는 수고했다 라는 뜻의 ‘욕봤다’ 라는 방언(方言)은 생전에 장인이 사위가 한국에 와서 뭔가를 도우면 사위를 향해서 자주 날려주시던 격려성 멘트였다. 그 ‘욕봤네’ 가 어쩌다 오늘 툭 튀어나온 것이다.
옆에서 보니 ‘장모님, 예전에 오늘 아내 낳느라고 고생 많으셨지요?’ 라는 뜻을 전달하려고 한 게 거두절미(去頭截尾) 하고 발음도 시원찮게 계속 “역 바써요” 라고 튀어나왔으니 팔순 노모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게다가 엄마는 나름 영어를 할려고 애를 쓰는 입장이라 ‘못 알아 듣겠다’는 뜻의 아이 돈 노우(I don’t know)를 한다는게 뜬금없이 “해브 노우(Have No)”가 나왔으니 서로 못 알아듣긴 피차 마찬가지.
‘역 바써요’ 해프닝에서 그나마 다행은 어미에 ‘요’ 자를 붙여서 경어체로 사용한 것이다. 그간의 한글 학습효과가 녹슬지 않음이 보여서 뿌듯하면서 위로가 되었다.
세번째 미소(微笑)
생일날이니 밥 상을 손수 챙겨주겠다며 차린 저녁. 비록, 간단하게 빵에 치즈를 끼워넣고 납작하게 눌러서 구워준 ‘치즈 빠니니(Cheese Panini)’ 였지만 직접 차리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받은 밥상이라 메뉴를 막론하고 얼굴에 빙긋이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 치즈 빠니니에 꽂힌 한 개의 초. 생일케익에 나이대로 초를 꽂기도 하지만 한 개의 초가 더 정감 있는것은 왜일까? 거침없이 먹은 나이에 대한 심적 부담을 잠시 잊고 한 살로 돌아갈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네번째 실소(失笑)
뉴욕시장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축하행진을 우리 집 바로 앞으로 지나가도록 했다는 장난기 가득한 땡스기빙 데이 퍼레이드 ‘뻥’에 빵하고 터졌다.
풍악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미국의 마칭 밴드들이 왔는지 그리고 무거운 풍선인형들을 끌고 축하해주러 왔는지 보라며 이런 거대한 축하 세레모니를 이 세상 누가 또 받겠느냐는 말에 툭 터지고 만 실소, “푸하하 핫..그건 그래!”

▲ 귀여운 소녀 캐릭터는 1947년 만들어진 필름 '34번가의 기적'에 나온 주인공 버지니아(Virginia)로 이 작은 소녀 풍선이 내 머리위를 지날 땐 마치 내가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근사한 기분을 만끽하였다.
다섯번째 잠소 (潛笑)
아내의 생일을 하루로 그치지 않고 이번 주말까지, 아니 이왕 쓰는 것 인심도 좋게 크리스마스 전 까지 정하고 매일매일 한가지의 노동을 통한 선물을 크레딧으로 받은 것도 아주 뿌듯했다. 이런 종류의 실속있는 외상 선물도 마냥 기분 좋은 잔잔한 웃음을 만들어 내었다.
▲ 거대한 풍선인형들의 꼬리를 문 행렬들을 보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즐거운 하루였다. 울 옆지기 말마따나 이런 거대한 축하 퍼레이드가 이 세상 또 누가 받겠냐는데.....물론 본인이 특별히 집 앞으로 지나가도록 힘 좀 썼다니.....ㅋㅋㅋ
여섯번째 담소(談笑)
다정다감 속에 조곤조곤, 알콩달콩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 양념처럼 끼여 들어오는 웃음들은 일일이 셀 수 없는 담소 임에 분명하다.
평화롭고 잔잔함이 가득한 날…..여섯 종류의 웃음을 기분좋게 섭렵(涉獵)한 날이다. 아, 끝으로….. 하나가 더 있다.
웃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그래도 뭔지 섭섭하다며 마누라의 속물 근성을 은근히 들추어 냈다. “손에도 쥐어지는, 뭔가 만져지는 선물 있잖아..그럼 금상첨화(錦上添花) 일텐데….?” 운을 띄워 보았다.
곧바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 생일 중에서 오늘 최고로 비싼 선물 받은거 기억 안나?”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인가?
……. 잠시 어리둥절 해 하는데 …..
남편이 조심스레 가리키는 내 어금니.
아 맞다. ’골드 크라운’ (Gold Crown) 우리 말로 하면 ‘금 니!’
한 달 내내 고생하다 생일날 마감된 덧 씌워진 금 니. 그러고보니 생일날 이렇게 특별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내 평생 또 있던가? 이정도 되니 요절복통(腰折腹痛)을 넘어선 포복절도(抱腹絶倒) 쯤 이라고 해도 될 법 하다.
한참을 웃다가 눈물이 다 나기까지 하던 내 특별한 선물. 여태껏 받아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기념비적인 생일선물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금 니’ 덕분에 미국 최고의 힙합 래퍼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와 닮았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참고로, 카니예 웨스트 는 번쩍거리는 금니가 인상적인 유명 래퍼(Rapper)이다.
일소일소(一笑一少)
이만하면 참 근사한 생일 선물 아닐까. ^^
▲ 제목 Women Figures. 2011. 종이에 물감. 일곱개의 웃음으로 채워진 특별했던 하루를 알록달록한 색감의 다채로운 포즈의 이미지로 대신해본다.
Photo by Erik Pe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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