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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대상의 움직임과 느낌을 순식간에 역동적으로 잡아내는 크로키는 카메라의 ‘스냅샵’과 비슷하다. 누드크로키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뉴욕에서 십수년간 천착하며 작가의 붓끝을 거친 다양한 인종의 누드 모델만 1천명에 달한다. 크로키속에 담긴 진솔한 인간의 향기를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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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얼굴보기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1-12-04 (일) 08:58:03

아침 9시 집을 나서는데 낯선 경고 사인이 내걸려 있었다. ‘이 지점부터는 기자 출입 엄금’ 그리고 바로 옆 블록에는 붉은색 바탕의 소음(消音)금지 구역 ‘Quiet Zone’ 이라는 사인도 보였다.

 

이른 아침 TV를 켜자마자 “오늘이 10년 중 맨해튼에서 가장 복잡하고도 교통체증(交通滯症)이 심한 기록적인 날이 될 것” 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맨해튼은 일년 365일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한데 오늘따라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는 친절하게 그 이유가 미드타운에서 있을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點燈式)으로 인파가 대거 몰리는데다가 오바마 대통령 방문에 따른 교통통제로 최악의 교통정체를 불러 일으킬것이라고 겁박하는 뉴스를 전했다.

 

오후 5시 이후 재선 모금을 위한 펀드레이징 행사가 3군데서 열리는데 그 중 한곳이 '가섬 홀'에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건물이 가섬 홀인데 싶어 신경을 써서 들어보니 아닌게 아니라 애버뉴(ave)며 스트릿(street)이 영낙없었다.

가섬(Gotham) 이란 뜻은 뉴욕을 일컫는 옛날식 호칭으로 가섬 홀은 집 앞에 있는 회색의 그리스의 건축 양식의 건물을 이르고 있었다. 천정이 무척 높고 실내가 긴 타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 전 은행으로도 쓰였지만 근자에는 특별한 행사나 연회 등이 자주 열리고 있다.

두어달 전 집에 들어가는데 동네 분위기가 이상했다. 모래를 가득 실은 덤프 트럭들이 몇 줄지어 서 있고 거대한 크기의 시멘트 블록들이 주변 도로를 막고 있었다. 경찰들과 낯선 사람들도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주로 일급 보안이나 경호에 관련해서 경찰이 주변을 통제할 때 쓰는 ‘Frozen Zone’ 지역에 해당이 되어서 주변 도로는 물론 기섬 홀 바로 앞에 해당되는 우리 아파트는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 들고 나는 시각을 전후해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즉, 개미 새끼 한 마리도 경찰의 허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엎어진 김에 쉬어나 가자는 식으로 잘하면 대통령 얼굴도 볼 수 있겠다 싶어 내심 기대감에 부풀었다. 언제였던가? 작년 그리고 재작년 새해 벽두 즈음해서 두 차례에 걸쳐서 꾼 꿈들이 기억났다.

한번은 미쉘 오바마 영부인이, 그 다음엔 오바마 대통령부부가 함께 내 전시에 와서 직접 그림들을 고르고 사가는 꿈을 꾸었었다. 한번도 아닌 두 번씩 비슷한 꿈을 꾸었기에 해몽 깨나 한다는 사람에게 물으니 (물론, 개꿈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 꿈을 꾸었으니 ‘운수대통’ 할 일만 남았다고 나를 부추겼던 기억이 새로웠다.  

영문 모른채 도로며 건물에 잠시 묶이는 상황이 되자 ‘경호 때문에 이렇게 꼼짝없이 갇혀서야 원~’ 하는 주민들의 볼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입들이 댓 발이나 나왔지만 미국에 여행오는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워싱턴까지 가서 겨우 백악관 건물 언저리만이라도 보고 오려고 애쓰는 것을 생각해보면 동네어귀도 아닌 사는 집 앞으로 대통령이 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 고무되고 흥분까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날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아니, 그림자도 만나지 못했다. 본 것이 있었다면 수많은 덤프트럭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트럭들, 그리고 그 너머로 줄지어 움직이던 육중한 검은색 차량들이 전부였다.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 건물에서 1시간 여 머물렀고 곧, 떠났다는 말만 들었다. 마치 멀리서 손님이 내 집 앞 까지 찾아왔는데 얼굴도 못 보고 보낸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트럭들 대부분은 경호원 소속으로 보인다.

모처럼의 기회였음에도 대통령을 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상황은 일거수 일투족 파악이 되었다. 출입구는 큰 텐트가 둘려 쳐져 있었으며 그 옆을 모래를 실은 덤프트럭들과 웬만한 탱크도 못 뚫고 지나갈 거대한 크기의 시멘트 블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울러 화약냄새를 탐지(探知)하는 훈련을 받은것으로 보이는 탐색견들이 보였고 정 사복 경찰들과 검은 양복의 체구 좋은, 그러나 눈매가 서늘하게 매서운 경호원들이 쫘악 깔린 채 주변을 돌면서 사람은 물론, 건물 위에서 아래까지 눈으로 훓고 다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 대통령이 떠나고 경호원들도 철수하고 난 뒤 붙이는 붉은 조명탄은 도로 반을 차지한 흰색의 전용 텐트 철거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조치인듯 싶다.

우리 이웃 주민 하나는 베란다에 담배 피러 나갔다가 특별 경호원들이 바람처럼 치고 올라가 그 아파트로 돌진했더라는 말도 들었다. 주변의 건물들 옥상은 일제히 서너시간 동안 폐쇄 되었고 경호에 필요한 몇 개 층의 베란다에는 만일을 대비한 소위 말하는 일급 저격수들이 검은색의 길고 육중한 가방들을 한 짐씩 들고 들어가서 대통령이 떠날 때 까지 베란다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 행사장 주변에 움직이는 모든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가관인 것은 짐을 나를 때나 쓰는 큰 바퀴 달린 짐수레 마저도 아파트의 회전문 입구를 막아 놓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는데 물샐틈 없다는 표현을 넘어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경호작전이 아니었나 여겨지기도 했다.

 

▲ 양쪽 문을 폐쇄하고 회전문도 잠갔다. 그 앞에 다시 짐 나를 때 쓰는 카트로 이중으로 막았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 한명은 망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해바라기처럼 대통령을 맴돌았지만 워낙 빡빡한 경호 벽에 가로막혀 그에 관한 사진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그날 모였던 사람들을 통해 홀 안에서의 대통령의 동정(動靜)을 듣고 뒷 모습만을 스케치 했을 뿐이었다.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엊그제 그의 두번째 방문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어 나름 기대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뉴스에서 말했던 행사장이 기섬 홀이 아니고 가섬 그릴(Gotham Bar and Grill) 이라는 곳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비슷한 지명 때문에 생긴 방송국의 실수였거나 아니면 백악관에서 보안상 일부러 노리고 흘린 속임수였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이번에도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2번이 아니라 200번의 기회가 있어도 대통령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내겐 3가지가 결정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돈이다. 이번에 방문한 3군데의 예를 들어 보자면 오바마 대통령은 업타운의 개인 저택에서는 최소 1만 달러에서 시작되는 모금행사를 했으며 두번째 만찬장에서는 저녁을 포함한 3만5,800 달러 티켓이 있어야 했고 세번째 행사가 있었던 호텔 연회장 에서는 최소한 1천 달러부터 시작되는 티켓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여력이 턱없이 부족함이다.

 

두번째 ‘끈’ 이 없다. 소위 돈만 많다고 모금 파티에 입장권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맥 혹은 연관된 어떤 ‘끈’ 이 없이는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에는 백악관에 줄을 대고 사는 이도 없을 뿐더러 워싱턴에 사는 친구 하나 없으니 그도 불가해 보인다.

 

▲ 대통령이 머물다 간 곳은 이렇듯 조명으로 남기는 걸까? 푸른, 붉은, 흰 빛깔의 조화가 마치 성조기를 상징하는것 같다.

세번째로 담력 내지는 용기가 없다. 철통같은 보안과 경호로 해서 2중3중으로 엄중하게 차단되는 상황에서 어설프게 나서거나 어슬렁댔다간 신상에 좋지 않은 험한 일을 당하게 된다. 군중속에서 아무리 까치발을 든다 한들 언감생심(焉敢生心) 대통령의 얼굴은 커녕, 대통령의 뒷모습 조차도 볼 기회가 절대 주어지지 않음이다.

여기서 얻는 나름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라고나 할까?

Television is the Best Place to See Obama.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에 TV 만한 게 있을까)

 

▲ 집 바로 앞 까지 왔어도 얼굴 보기 힘들던 대통령은 그날 밤 TV 뉴스를 통해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을 대하기 가장 마침한 곳은 역시나 집에서 보는 TV 화면 뿐. 서로 쌍방이 얼굴을 마주 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면을 통해서나마 한쪽이라도 충족되게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감 없이 경호원들의 살벌한 제재나 눈 부라림 없이 맘 편하게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에 TV로는 도저히 성에 안찬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방법은 있다. 경호원이 되든가 아님 백악관 출입 기자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

 

▲ 제목 Portrait. 종이에 흑연. 2008. Shree Freels 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모델이다. 크로키에 나타난 표정에서 누군가를 짐짓 기다리는듯한 심정이 배어난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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