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무서운 악몽을 꾸어 잠을 설친 탓인지 성탄절 아침 늦잠을 잤다. 방을 나서려는데 커피를 막 내리고 있던 남편이 허겁지겁 두 팔을 벌리며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No No No…..Not Yet” (아직 안돼). “왜?” “산타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 중이거든.”
거실에 있는 몇 개의 선물들에 대해 이미 아는데 새삼스럽게 저러나 싶었지만 모른척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막 뽑은 향이 진동하는 따끈한 커피 한잔과 노트북을 침대 위로 가져다주면서 혹 방을 나와야 할 용무가 있을 때엔 눈 가리개를 쓰고 나와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쩜 산타가 자취를 감춰버릴지도 모른다며~을 가리고 나올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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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이후로 크리스마스 때면 시댁의 전통을 따라 온 가족의 선물을 챙긴다. 얼굴을 보게 되면 트리 아래 놓아두고 성탄절 아침 열어보지만 멀리 있을땐 식구들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큰 소포 박스를 꾸려서 보내곤 한다.
그렇게 챙기다보니 가족은 기본이고 남편의 상사며 동료 부하직원 까지도 선물을 두루두루 고르게 되었다. 우리처럼 우편물이 많은 집은 집배원은 물론이고 큰 소포를 맡아주는 우편실 직원들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용역직 일꾼들도 챙기게 되고보니 숫자가 족히 30여 명이 되곤 한다.
그러나 미국에 살면서 연말이면 입주자들이 모른척 해서는 안되는 때로는 의무사항 같은 팁 내지는 선물을 주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보니 연말이면 그들을 염두에 둔 목록 작성부터 포장까지 할 일이 많다.
‘선물 포장’을 굳이 일이라고 까지 부를게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목록 작성에서부터, 예산을 짜고, 무엇을, 누구 누구에게 어떻게 주거나 보낼것인지 정하고 그에 맞춰 기호, 나이, 성별, 취향, 지위, 건강, 가족관계 심지어는 알러지(Allergy)가 있는지 없는지 까지도 파악해야 하는 일이고 보니 일이라 부르고도 남음이 있다.
11월의 추수감사절이 지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단어가 ‘해피 홀리데이즈’(Happy Holidays!) 이다. 크리스마스에 가까워 오면서 맨해튼에는 쇼핑백을 든 인파들로 넘치는 그야말로 쇼핑 천지인 풍경을 목도하게 되는데 한 사람당 적어도 2개부터 20개가 넘는 꾸러미를 끌다시피 해서 가는 사람도 보았을 정도이다.
해피 홀리데이즈 라는 단어가 유독 직원들이나 아파트 관리인들 입을 통해서 때도 시도 없이 듣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입주자 들은 심적 부담감이 느껴질 때도 많다. 나아가 현관 문 아래로 관리인들과 핸디맨들 이름이 스무명 가량 빼곡하게 적힌 인쇄된 프린트를 받고 보면 선물을 해야 할 날짜가 거의 임박(臨迫)했음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처럼도 느껴진다.
자주 바뀌는 용역직 직원들까지 챙기는게 다소 부담되는 일이라서 더러는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없을까 한 두사람 에게만 해볼까 하는 꾀도 내어 보지만 강력한 권장사항을 넘어 일종의 의무사항으로 느껴진지 오래라 연말 팁이나 선물 문화를 외면하기가 어렵다. 물론, 연말의 선물 공세가 일년을 거쳐 얼마나 큰 윤활유 역할을 하는지 알기 마련인 사람은 이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아무튼,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애써 준비하는 선물이 실망스러움을 주지나 않을지 혹은 짐이 되지는 않을지 따지게 되다 보니 속속들이 아는 지인들에겐 나름 마땅한 선물이 대세지만 모르는 이들에겐 상품권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더러 어떤 이는 ‘현금이 제일 쉽고 좋은 선물’ 이라고 그 방법을 권장하나 뭐랄까 현금은 아직도 우리에겐 선물(膳物)보다 뇌물(賂物)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고하를 막론하고 꺼리게 된다.
선물을 보내고 받은 답장을 통해 본 올 해의 최고 인기 품목은 메인(Maine) 주에서 배송된 은은하면서도 싱그러운 발삼 향의 성탄용 트리였다. 작은 크키의 트리나, 문에 거는 둥근 화환, 그리고 식탁 장식용 트리는 누구하나 예외랄 것 없이 큰 환영을 받았다.
특히, 올 해는 시간을 투자해서 직접 만든 선물들도 하게 되었다. 이 중 한 선물은 내게 선물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결혼한지 35년이 넘도록 남편으로부터 결혼기념일은 커녕, 생일 조차도 단 한차례의 선물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P님. 여전히 사람 좋은 함박웃음을 늘 짓지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지나온 세월을 소급(遡及)해서 훤히 알고도 남음이 있게 느껴졌다.
서른해 가까이 단 한차례의 병가도 쓰지 않고 결근 한번 없이 연방 공무원으로 직장에 성실하고 가정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면서 장애가 있는 형제와 노모까지 손수 챙기고 짬을 내어 사회봉사도 마다하지 않는 그분을 보면 한국인을 떠나 삶의 귀감이 될 뿐더러 존경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나아가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겸손 속에 숨은 노고와 어려움을 어떻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나름 있는 재조 없는 재조 발휘해서 만든 어깨를 감쌀 수 있는 숄과 책 읽을 때 등을 기댈 수 있도록 만든 퀼트 방석은 물건의 의미를 뛰어넘어 때로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고 싶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게 되었다.
성탄절인 오늘 오후에서야 듣게된 음성메모에는 ‘올 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한 ‘…..’ 말없음의 공백이 있었지만 비로소 크리스마스 선물의 의미를 감히, 터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는 기쁨을 통해 내가 얻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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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는 방에서 나와도 돼” 라는 소리가 들렸다. 두어 시간 동안 거실에서 산타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궁금해하며 나오니 “짜잔~ 이게 바로 일명 크리스마스 타워라는 것이야.”
내가 자는 사이 내내 산타는 긴긴 밤과 아침에 걸쳐 내 키를 훌쩍 넘을 높이의 탑을 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선한 놀라움에 취해 아침도 거른채 커피 한잔 만으로 아침을 때우고 혹, 무너질세라 조심스레 선물의 탑을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 1년간 묵혔다가 나온 스웨덴에서 온 난장이 비누와 브롱스의 곽선생님으로 부터 받은 유칼립투스 향이 든 버블배쓰.
하나씩 내려가면서 풀고, 열고, 뜯으면서 선물이라 이름하는 모든 것들의 실체를 확인해 가면서 ‘와우!(Wow!)’ 라는 감탄사가 새어 나오기도 하고 감격의 ‘아이고’ 가 튀어 나오기도 했다.
2011 년 해를 지나면서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지나는 말로 운을 띄운 것까지도 빠짐없이 산타의 목록에 입력이 되었다가 이렇게 탑이 되어 쌓여 있었다. 그게 비록, 작은 소박한 과자나 작은 쵸콜릿 일지라도 예쁜 포장 옷을 입고 선물을 열어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 크리스마스에 맞춰 도착한 기쁨 가득한 카드들.
솔 향이 나는 손으로 제작한 초들, 작은 동전 지갑, 평소 찾으러 다닌 이상한 모양의 과자, 야외에서 날릴 수 있는 날아다니는 모터용 헬리콥터, 조각퍼즐, 재미난 모양의 목욕 비누, 골동 인형, 양말, 책, 음반 등등 게다가 시원한 크기의 신형 모니터에 내가 좋아하는 홍시감까지.

▲ 경숙님의 첫 손주 본 백일기념으로 퀼트 이불을 만드는 작업을 거들어 드리고 답례로 받은 빈티지 싱거 재봉틀과 재봉가위. 가위 선물은 인연을 끊는다는 미신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고 들어서 2페니를 주고 사가는 눈속임을 빌어 받게된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선물을 한참 풀다 말고 조용한 남편에게 물었다. “뭐 잘못되었어? 왜그래?” “당신은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y) 나 바바라 월터즈(Babara Walters) 를 닮았어.” “내가? 나는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데 어떻게~” 영문 몰라라 하는 나를 두고 “그들처럼 결국엔 사람을 울리잖아.”
아, 그게 그랬나? 으례 연말이면 있곤 했던 보너스가 없었다. 대신 휴가를 길게 받았다. 사무실이 엄청 규모를 넓혀 파크 에브뉴로 두어 달에 걸쳐 대대적으로 이사를 하면서 아마도 여유가 없었던 모양인지 보너스 대신 파티와 유급휴가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 모양인데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게 여간 섭섭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준 선물이 뭐였더라? 하나같이 다 손으로 만든 것 일색이었다. 작년 털옷을 풀어 만든 울 목도리와 낮잠이불뿐인데. 이불이니까 덮고 자는 기능면도 중요하지만 즐거운 꿈을 꾸었음 하는 바램으로 동화 속의 캐릭터들을 응용해서 재미난 모양들을 오려 넣어 박았다.
생강과자 캐릭터들, 크기다 다른 산타 할아버지들 그리고 사랑을 나르는 작은 색색의 요정들이 꽃과 새들과 더불어 날아다니는 화려하다면 화려한 유치하다면 유치한 1인용 이불이었다. 그저 어디서나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그리 크지 않게 그의 키 높이에 맞게 또, 두텁지 않게 목화 솜을 넣어 누볐는데 아마도 어릴 적 정서를 자극했는지 이불을 열어보고서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리고 더불어서 일년 가계부를 통해서 절약한 것들을 날짜 별로 꼼꼼히 액수를 적어서 일일이 작은 단위로 묶음을 만들고 그간 해를 통틀어 퀼트 작업이나 그림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까지도 큰 금액은 아니지만 모두 빠짐없이 챙겨서 마치 딱지처럼 접어서 색실로 묶어 내년 직장 생활 하면서 힘들 때 하나씩 꺼내어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은 게 고작이었다.
“사장이 주는 보너스도 좋지만 내무장관이 검약을 실천해서 내미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보너스” 임도 강조했는데 그 말에 그의 눈이 어느새 토끼눈 마냥 빨개지며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가 ‘내 표현 방식을 빌어‘ 말하기를
“내 코가 매워~”
▲ 포장도 없이 맨몸으로 온 배낭. 산타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제일 막바지의 선물은 배낭이었다. 왜 이것을 그것도 하나만 샀을까? 내 궁금해 하면서 끈을 풀고 안을 들여다보니 봉투 하나와, 지도 한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쿠바가 당신을 부르네. Viva! Cuba! Have a Safe and Good Trip. (자, 쿠바를 향하여! 여행 조심해서 잘 다녀와’) 내가 일년간 모은 용돈이야. 일년은 다닐 수 없겠지만 한 달은 할 수 있겠지? 보너스 받았더라면 더 폼나게 줄 수 있었을텐데..”
아주 오래전부터 노래하다가 결국 포기했던 쿠바(Cuba) 노래. 미국의 봉쇄정책이 끝나기 전에 오래되고 낡은 그 유물과도 같은 흔적이 일순 문명의 완력(腕力)으로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그곳엘 다녀와야 한다면서 노래를 불렀지만 사회주의 체제 때문에 염려가 되어서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그곳만큼은 안된다고 말렸던 남편이었다.
오지(奧地)여행을 오래 전 부터 고집하는 여행 철학을 지지하면서 보여주는 무한한 신뢰감이 결국 아내로 하여금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신이 정말 내 코를 강력하게 맵게(Super Spicy) 만드네!!!”
2011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 우리 두 사람은 난데없이 코가 매워 죽는 줄 알았다.
▲ 제목 Green Figure. 종이에 물감 2008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은 초록의 크로키를 통해서 선물을 받는 즐거움이 연상된다. 더불어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와 누군가를 위한 '주는 기쁨' 그 두배가 넘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것 같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