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몇시길래 이런가 싶어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아니, 엊저녁 자기 전에 분명 알람을 그것도 두개씩이나 설정을 해놓고 잤건만 자명종이 왜 깨우질 못했지? 그러나저러나 밤 사이 둥글던 눈알이 사각이 되기라도 한듯 눈이 여간 뻑뻑하지 않았다.
번개같이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후다닥 끝냈다. 문을 나서기 앞서 TV부터 켰다. 분명 오늘 금요일 생방송 공연이 있는 날 맞는지 그 가수가 나오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카메라가 관중을 훓고 있었다.
'아이고머니나!' 넘치는 관중들. 지금부터 저렇게나 많이 모였다면 그들은 밤을 샜거나 아님 신새벽부터 온 사람들일 게 뻔했다. 설령 빛의 속도로 10블럭 떨어진 공연장에 단숨에 달려 간다해도 그 근처에 조차 가 닿지 못할 상황으로 보였다.
어젯 밤 잠들기 바로 직전 컴퓨터를 켜지 말았어야 하는데...... 조회수 1억 5천을 넘은 '강남 스타일' 뮤직 비디오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나면 숙면에 도움이 될것 같기도 하고 현재 입소문을 타고 있는 뮤직 비디오를 안보고 공연을 간다는것은 말이 안되어서 일종의 워밍업으로 본 것이 바로 그 동영상이었다.
그렇게 잠깐 몇 분이면 가볍게 보고 끝날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결국 밤을 꼴딱 새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서울의 강남을 배경으로 토종의 친근한 얼굴의 한국 가수가 부르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 코믹한 컨셉, 빠르고 쉬운 반복적인 리듬, 따라하기 좋은 간단한 춤 동작, 현란한 색상의 의상과 요란한 안무, 섹시함과 코믹함이 범벅된 강남스타일은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만 빠져들게 했다.
몇번을 듣고 또 듣고....그러다가 '강남스타일 패러디' 물이 숱하게 만들어져 있는것을 보고선 하나씩 열어서 감상하다보니 훌쩍 서너시간이 가버렸고 급기야는 잠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잘려고 노력을 했지만 반복되는 리듬이 베개를 베고 누워서도 귀에 여운처럼 남겨있는데다가 화려한 춤 동작이 내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니 도저히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노래가 맨해튼 이곳 저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상가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리기도 하고 지하철 안의 젊은 층의 미국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에서 '강남 스타일'이란 단어가 들리기도 하면서 또, 여기저기서 그 춤을 따라하는 '플래쉬 몹' 뉴스들을 접하면서 한국 가수가 미국 시장에 조금씩 들어오고 있구나 짐작만 했지 이 정도로 센세이셔널 할 줄은 정말 몰랐다.
'NBC 투데이 쇼' 생방송이 열리는 블럭의 열기는 비록 TV를 통했어도 실감나게 전해졌다. 엄청나게 운집한 관중도 그랬지만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도 대단했다. 반짝이는 태극선이며 정감어린 한글 문구들을 보니 코 끝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분홍빛깔의 한복입은 미국 아저씨가 추는 춤까지 보려니 가슴이 찡해왔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아니라 '금요일 아침의 열기'는 정말 기대 이상의 벅찬 감동이었다.
몇시간 동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9월 14일 금요일 '오늘은 싸이의 날이자 한국의 날'이었다. 한마디로 뉴욕 한 복판에서 '난리가 났다 내지는 뒤집어 졌다' 라고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늘 봐온 생방송 금요일 공연이고 매일 접하는 진행자들이었지만 오늘만큼 그들이 신나게, 기쁘게, 유쾌하게 방송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쇼를 진행하는 앵커 4명이 하나같이 몰입해서 같이 노래 부르고 추임새를 넣고 춤을 따라하는 장면은 가슴 뿌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방송이래 '앵콜'을 받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강남스타일'을 동네가 떠나가게 울려대니 이 또한 가슴이 찌릿했다.
싸이 (PSY 박재상) 는 그냥 가수가 아니었다. 뉴욕을 아니 미국을 들었다 놓는 거인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아예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진행자들과 나란히 앉아 여담을 나누고 분위기도 띄워주면서 '대한민국 만세' 가 무슨 뜻인지, 강남이 어디에 있는지, 강남스타일이라는게 뭘 말하는지 등등 재밌게 설명해가며 유쾌하게 아침 방송을 이끌었다.
나아가서 앵커들이 한국어로 '어떠십니까?'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를 배우기도 하고 이 쇼의 가장 오래된 앵커인 '알 로커(Al Roker)' 씨는 다가오는 일요일 저녁 행사를 알리면서 '일요일 밤 축구' 라고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듣자니 그 방송을 본 미국 동포 그 누군들 나처럼 가슴이 찡해오지 않았을까?
오늘 싸이는 재능있는 가수로 인정 받은것에서 나아가 자유로운 영어구사와 유머감각 그리고 두둑한 여유있는 배짱이 어느 문화사절도, 어느 정치인도, 어느 외교관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 을 했다. 아직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있다.
주위에서 만난 이들중에 그나마 한국을 가장 잘 기억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70세가 넘는 고령의 한국전 참전군인들이었거나 아니면 미 8군에 복무한 적이 있었거나 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아는 정도들이 고작이었다. 더러는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 내지는 통일교가 시작된 나라 쯤으로 아는 이도 있긴 했지만 그 마저도 가뭄에 콩나는 격이었는데 싸이라는 가수 하나가 미국과 세계 전역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 공중파로 내보낸것이다. 그것도 무려 세시간이나!
'싸이 박재상' 씨 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한 가수로’, ‘거만하거나 교만하기 쉬운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성실함과 겸손함이 배인 연예인으로’, ‘모범적인 가정을 가진 진중한 남자로’, ‘신출내기가 아닌 십수년을 닦아온 내공이 쌓인 사람으로, 신중함과 매너를 갖춘 재담가로’, ‘자기만의 개성과 색깔을 갖춘 재능인으로’, ‘세상 밖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거리낄것 없는 열창하는 가수로’, ‘한국사람 냄새 물씬 나는 준비된 만능 엔터테이너로’ 말이다.
지난 주에 접했던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에 이은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감독으로서 예인으로서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것을 떠나 한국영화를 세계 시장에 내놓은 그래서 한국을 세계로 알린 최고의 민간 외교관 역할에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
오죽하면 트럭 10대 분에 실은 정치인들 하고 영향력 있는 문화 예술인 한명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문화 콘텐츠가 주는 영향과 파급 효과나 기여도가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 아무쪼록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는곳 마다 만나는 이들 마다 나눈 '싸이'에 관한 이야기들..... 그로 해서 아침이 상쾌하고 기분이 절로 좋아졌던 하루. 나도 모르게 가슴이 펴지면서 걸음걸이에 알 수 없는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실렸던 그런 날이었다. '싸이'로 인해 행복한 하루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혹여,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 강남 스타일을 한글이 아닌 영어로 번역 해 줄 수 없냐고 부탁을 받거든 한마디로 거절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해주면 어떨까?
“노래란 번역을 해서 들으면 그 맛이 나지 않지요. 그냥 그대로 들어야 합니다. 정 답답하면 아예 한글부터 배우시던지요!”
여기 '오빤 강남스타일' 가사 나간다.
* * *
오빤 강남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오오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 * *
어때? '쥑이지?’ (MTV 시상식에 나온 싸이가 우리말로 소감을 피력한 후 제일 끝에 했던 표현대로)
▲ 제목 Man Figure Croquis. 종이에 물감. 2012 9.14. 장애물을 다 넘기고 이젠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뉴욕 맨해튼에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싸이의 공연은 시간문제라는 생각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