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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움직임과 느낌을 순식간에 역동적으로 잡아내는 크로키는 카메라의 ‘스냅샵’과 비슷하다. 누드크로키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뉴욕에서 십수년간 천착하며 작가의 붓끝을 거친 다양한 인종의 누드 모델만 1천명에 달한다. 크로키속에 담긴 진솔한 인간의 향기를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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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과 ‘731’<中>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2-10-29 (월) 23:00:23

‘스님, 이것 좀 봐 주세요.’ 강연이 끝나고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책에다 사인을 하던 스님이 고개를 들어 안경너머로 날 보았다. 눈이 맞춰지자마자 두루마리를 내밀면서 ‘죄송합니다. 이 물건이 너무 무서운 물건이라.. 살(殺)이 너무 낀 물건 같아서 스님의 자비로 중화시키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모두가 분주하고 바쁜 상황이었지만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싶은지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그 물건에 모아졌다.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짧게 대답했다. ‘태평양 전쟁 깃발인데요. 만주에 있던 일본군것으로 보여 기도를 받았으면 합니다’.

나는 그 족자를 내려뜨려서 보여드리려고 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신 스님은 ‘그냥 그대로 두십시요.’ 라며 양 손으로 족자의 양 옆을 살짝 거머쥔 채 묵념하듯이 몇 초간 눈을 감으셨다.

아침에 그 소포를 들고 나서는데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만약, 이 깃발이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아시아의 홀로코스트(Holocaust by Unit 731) 라 불리우는 그 부대원을 환영할 때 썼던 것이라면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머릿속이 순간 백지가 되면서 복잡해왔다.

 

불과 몇 초 였지만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법력이 높은 스님의 손길을 닿았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그 짧은 묵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내친김에 같은 자리에 있던 한문을 잘 아실법한 세대의 유명 작가에게도 도대체 이게 무엇인지 보신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 어찌되었거나 궁금증이 풀리지도 않고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집에서 들고 나올 때 보다 덜 무서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혼자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지만 글자를 못 알아먹으니 답답했다. 우선 검색부터 들어갔다. 같은 부대의 징표가 되는 무엇인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거라 믿어서였다. 검색 방법은 같은 단어를 한글로, 영어로, 일어로, 한문으로 각각 검색해 보기로 했다. 웹 정보가 아닌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미지 검색을 택했다.

‘마루타’ 에 이어 ‘731’ 이란 숫자도 넣었다. 그 부대를 이끌었던 이시이 시로 이름을 딴 ‘이시이 부대’로도 검색했다. 영어로는 ‘unit 731’ ‘생체실험’ ‘731 部隊’……연관된 검색어는 다 끄집어 냈다.


▲ 일본식 한자인 丸太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이렇듯 온통 통나무 땔감의 이미지만 나온다.


  

▲ 영어로 'Maruta' 로 치면 마루타 라는 스페인 식의 성을 쓰는 사람들 사진만 뜬다. 
 

먼저 마루타를 ‘히라가나’로 검색했다. ‘まるた’. 빼곡하게 통나무에 관한 수백개가 한 페이지에 떴다. 마치 통나무를 쌓아둔 목재소나 제재소를 방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문으로 ‘丸太’ 역시 뜻 대로 ‘통나무’ 이미지만 떴다.

 

▲ 일본어 발음대로 'まるた; 로 검색해도 똑같이 땔감재료 라는 것만 보여준다. 이와같이 같은 단어를 여러 언어로 검색해보니 일본인에게 보여지는지....사실과 진실이 얼마나 숨겨지고 어떻게 왜곡되는지 한 눈에 이해 할 수 있다.
 

이어서 한글로 쳐보았다.


▲ 중국식 한자로 731부대를 상징하는 한문으로 검색을 하니 57만개 이상 결과가 뜬다.


 
▲ 한글로 쳤을때는 9만장의 이미지가 뜬다.

컴퓨터 창에는 '실험'이라는 빌미로 자행된 처참한 살육현장의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화질을 흐려 놓았어도 그게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두건과 앞치마에 피범벅을 구별할 수 있었고 생체실험을 하는 중임을 증명하는 인간의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야만적인 군의관과 조수들을 알아 볼 수 있었다.

731 부대(部隊) 군의관들 앞에는 인간이 아닌 마루타(통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린 찢겨 발려진 참담한 주검들만이 참혹하게 실험대에 널부러져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이 인간을 남, 녀, 노, 소 구분없이 일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실험 대상이 된 ‘생체 실험’. 말이 의학이고 의사이고 실험이지 그것은 ‘집단으로 미친 것들의 광란의 짓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동영상 웹 사이트도 뒤져 보았다. 미비했지만 영화로 만든 것도 있었고 사람들의 증언을 모은 녹취록(綠翠錄)도 있었다. 다큐멘타리도 있고, 아주 일부분이지만 극비 문서도 있었고, 꿰맞추기 놀이 같은 퍼즐 게임을 방불케 하는 의학 자료도 있었다. 한국인, 미국인, 더러는 양심에 가책을 느낀 몇몇의 일본인의 고백도 있었지만 솔직히 그 증언조차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왜냐고? ‘마루타’ 는 일본 사이트에서는 통나무들로만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우리 선조요, 대부분이 간도에서 만주에서 독립활동을 하다 잡혀간 청년들의 주검’ 들이기때문이다.

오래전 책으로 읽었을때도 힘들었지만 그 참상을 사진으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확인하는것은 차원이 달랐다. 가슴이 마치 푸른 잉크폭탄을 뒤집어 쓴 것처럼 퍼래지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왔다. 욕지기가 나면서 구역질이 났다. 눈물이 흐르고 가슴엔 아픔이 통증으로 그대로 전해져 왔다.


' ..... ..... ..... .....'
' ..... ..... ..... .....'
 

아, 젊디 젊은 수많은 조선의 청년들…..가족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이들이었는데 실험대상으로 쓰여지는 내내 얼마나 아프고, 죽는 순간까지 고통스러웠을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래, 언젠가는 과거는 과거로 묻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실상을 알고 나니 우리는 얼마나 무지몽매 했는가. 그렇게 일본군에게 조선의 딸들이 능욕과 능멸을 당하고 조선의 아들들이 징병으로 끌려가 개죽음을 당한 이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역사를 언제까지 '지나간 역사'라는 이름으로 '망각'을 강요당할 수 있을지? 아무리 세대가 지난 일이다 한들 그것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쯤으로 덮고 넘어갈 수 있을까?

 
 

공포의 ‘731 部隊’.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의 이름을 따라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도 불리는 이 부대는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세균전 비밀연구소로 시작 '관동군 방역 급수부'에서 다시 1941년 731 부대로 명칭을 바꾼다. 자그만치 여기 한곳에서만 1936년 부터 1945년 8월 까지 3000명이 실험 되었다고 한다.

매해 600 여명의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살아있는 건강한 성인을 상대로 쥐나 개구리를 대상으로 하듯이 실험을 했다. 인체를 원심 분리기에 회전시켜가면서 피를 뽑아내는 ‘착혈실험’/ 임산부를 마취없이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는 ‘분만실험’/ 사람을 세워두고 거리에 따라 총구를 관통하는 ‘보병총 성능 실험’/ 압력실에 나신을 집어넣고 압력에 따라 장기가 어떻게 파열하는지 알아본 ‘진공실험’/ 청산가스 등을 주입해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한 ‘독가스 실험’/ 뜨거운 방에 가두고 화상을 단계별로 입힌 다음 심장을 꺼내어 한 ‘심장실험’/ 부서진 전차 안에 사람을 넣고 화염방사기를 쏘아 견디는 정도를 측정한 ‘내열실험’…..

그뿐인가.

밀폐된 방안이나 한 공간에 가슴과 배 부분만을 철판으로 가리게 한다음 신형 폭탄을 투하 성능 정도를 알아본 ‘신무기 성능시험’/ 매독균을 주입 진행경과를 관찰한 ‘매독실험’/ 동물의 피와 인간의 혈액을 대체교환 주입한 ‘대체 수혈 실험’/ 피부를 산채로 벗기는 ‘피부실험’/ 성기 절단 및 ‘이식 실험’/ 피부 ‘괴저실험’/ 산 사람을 해부하는 실험/..


추운 날씨에 소련군과 맞선 일본군을 동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장 조직적으로 면밀하게 시행했던 실험은 한겨울 맨 몸에 물을 뿌려 얼리거나, 젖은 장갑과 양말을 신은 상태로 동상을 만든 후 부위별로 절단하면서 통증을 느끼는 정도와 동상부위를 모닥불에 올려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는지를 실험한 ‘동상실험’ 이었다.
 

그야말로 미치광이도 할 수 없는 참혹한 짓거리를 ‘실험’이라는, ‘의학’이라는 미명하에 저들은 인류 최악의 잔혹한 범죄를 군대라는 집단으로 철저한 베일속에 숨긴 채 저질렀다. 

   

중국에 주둔한 516 부대, 543 부대, 773 부대, 베이징의 1855 부대, 광조우의 8604 부대, 창춘의 100 부대, 200 부대, 난징의 1644 부대, 싱가포르의 9420 부대 가 있었고 일본 도쿄의 육군 군의학교 에서도 조선 독립운동가들과 몽골인, 중국인 등으로 추정되는 실험흔적이 역력한 인골 300 여 구가 병원이 옮기면서 매몰된 지하에서 발견되었다. 이뿐이 아니다. 교토대학 및 후쿠오카 등 지방의 의과대학에서도 인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했다는 극비문서의 증거들이 속속 새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일본의 '731 부대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에서 찾아낸 '극비문서'를 언급하면서 1940년에서 42년 사이에만 6차례에 걸쳐 페스트 및 콜레라 균에 의해 당시에만 2만 5946명이 감염되었다고 밝혔다.

생체실험 부대의 잔인의 폭은 수용자뿐만이 아니었다. 신입 병사가 전입해오면 군기 확립 차원에서 가장 병약하거나 반항의 정도가 심한 수용자를 때려 죽이게 함으로서 그들을 인간이 아닌 ‘땔감’ 즉 ‘통나무’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사진들 속에서 가장 경악하게 만든것들은 시체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몸을 부분별로 절단했다는것 그리고 매거나 끌거나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향해 웃고있던 모습은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했거나 아니 어쩌면 애시당초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아니었을까.....
 

인간을 산채로 비명과 고통속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웃어가면서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 고등관이라 불리던 군의관들, 조수들, 실험 외적인 일을 맡은 판임관들, 잡다한 일을 맡은 이들과 잡부들과 병사들…..그들이 아무리 조직사회에 속한 부대원이었다고 해도 조직원이었다고 해도 1000 여명이 넘는 군의관이 실험에 참여했는데 현재까지 군의관으로 양심선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이시이 부대였던 하얼빈의 731 에서는 가장 막대한 실험이 행해졌는데 수용자를 나르는 전용철도까지 만들어 비밀리에 마루타를 수송했다. 일본은 그 엄청난 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나옴에도 그에 관한 증명할 만한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발뺌을 하다가 1984년 도쿄의 간다 고서점 거리에서 한 일본인에 의해 발견된 문서가 나오고 11년이 지난 1995년 부분적으로 인정을 했을 뿐이다.

  

 

▲ '이시이 시로' Ishii Shiro/ 石井 四郎 (いしい しろう), http://en.wikipedia.org/wiki/Shir%C5%8D_Ishii 1941년 '군사기술발전 공헌상' 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기도 했다. 교토제국 의학부를 졸업했으며 731부대를 창설했다. '관동군 방역 합수부' 라는 이름으로 방역에 대한 부대로 위장했으나 세균전과 생화학전 실험, 수만명에 이르는 중국인과 한국인 전쟁포로 등 살아있는 인체를 실험재료로 삼아 '생체실험'을 한 전범 중의 전범이지만 전 후 단 한차례의 기소도 되지 않았다. 일본어로 검색을 하면 그가 일본의학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에 대해서만 95% 집중 다루어져 있어서 영어나 한국어,중국어와는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731 부대는 패망하면서 1945년 해체되었지만 731의 끔찍한 망령은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그들이 지난 '일본군 강제 성 노예 차출' '난징 대학살' '생체실험'에 대해 함구하고 나아가 진실을 왜곡하면서 거짓된 역사를 가르치는 한 언젠가는 그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그들에게 거대한 비극이 되어 되돌아갈 것이 틀림없다. 
 

  
 

▲ 몇년전 731 출신의 군의관 중 유일하게 양심선언을 해서 그 실상을 고백했던 유아사 캔 씨. 731에서만 최소한 1000 명이 넘은 군의관이 생체실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얼마전 노벨상 발표가 있었다. 올해의 의학상이 일본의 교토대학 의과교수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생체 실험은 일본 도쿄 육군 군의학교에서도, 후쿠오카 대학과 그리고 교토대학에서도 실행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어떤 훌륭한 연구결과로 업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그 효과가 의료계를 빛낸다 할지언정 그들의 가슴에 박힌 ‘생체실험 일본’이라는 선명한 주홍글씨를 영원히 벗지 못할 것이다.

2009년 로마 교황청에서 발간한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의 죄악’이 있다고 했다. 환경파괴, 마약거래, 낙태, 소아 성애, 유전자 조작 실험, 양심없는 부의 축적, 그리고 ‘윤리적 논란을 부르는 과학’ 이라고 했다. 즉. 휴머니티(Humanity) 인류애 없는 의료 및 과학의 발달은 죄악이라는 것에 빗대어 말한 만큼 일본의 노벨의학상 소식만큼은 인류애를 말살한 비극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듯 싶다.


  

 

▲ 교토대학을 위시해서 도쿄대, 후쿠오카 대, 일본군의학교 등에서도 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교토의과대학은 이시이 시로가 졸업한 곳이다. 올해 노벨 의학상이 교토대 의대 교수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의학의 공헌과는 무관하게 ‘생체실험을 한 대학’ ‘이시이 시로가 나온 대학’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을까?

영문 알파벳 A(Report of A ~ Z)로 시작해서 Z 까지 작성된 영어로 된 보고서는 어디로 누구에게 넘겨졌을까? 패전했지만 731 부대 대원은 최우선적으로 선박과 기차가 제공되어 일본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으며 면책(免責)을 받았다. 이후 각 의과대학으로, 제약회사로, 연구소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731의 망령은 일본 사회에 스폰즈가 물을 먹듯이 보이지 않게 스며들었다. 
 

예전엔 정보가 부족해서 몰랐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려는 그리고 알려는 의지만 있다면 보이는 법이고 알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다. 진실을 알리는 역할이 결코 정부나 시민단체의 몫이 아니다. 우리 각자 스스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731에 관해 자료를 찾고 검색을 한지 얼추 3주가 지났다. 이후 내내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비애, 주체할 수 없는 적개심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도때도 없이 흉몽을 꾼다. 정말 이게 한바탕 꾼 구역질나는 악몽이었으면......할로윈을 앞두고 가장 무섭고 흉악했던 공포 추리소설을 한권을 읽은 것이었더라면.....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범죄가 일본의 731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직도 그 두루마리 속의 내용이 파악되지 않았으며 현수막 이었다는 정도만 알았다. 그 물건이 731 부대원의 것이었는지 아닌지 알아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개선(凱旋)을 축하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日本)의 전쟁(戰爭)에 미친 평화(平和)에 반(反)하는 그 이상의 그 이하의 표현도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생체실험으로 스러진 수많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투사들의 죽음을 기리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6일 스러진 한 섬세한 감성의 건강하고 아름답던 27세의 조선의 독립을 염원했던 민족 저항 시인의 시를 음미하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제목/ 2 Figure Croquis 종이에 물감 2012 설명/ 그림 그릴 종이가 부족해서 두 포즈를 한 지면에 겹쳐 그렸다. 하나는 모델의 포즈이고 하나는 모델이 쉬는 시간 누워있는 모습이 겹쳐진 것인데 '형언하기 힘든 비애'가 느껴졌다. 731 부대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희생된 '조선의 항일 독립투사들'.....

<下편 계속>

kimchikimn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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