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명종이 울리자마자 으례 그렇듯이 버릇대로 TV 부터 켰다 오늘 따라 눈이 여간해서 떠지질 않아 뭉그적대는데 아침 뉴스 한 대목에서 세개의 단어 ‘낮 12시 30분, 지하철 역, 한국 남자 이름’이 귀에 꽂히자 그길로 잠이 확 달아나면서 벌떡 일어났다.
지난 월요일 점심 약속이 하나 있었다. 약속시간은 1시였고 53가에 있는 모마(MoMA) 였기에 노란색 선인 N, R, Q 셋 중에 하나를 타고 가면 49가역까지 15분 남짓해서 도착하겠다 싶어 12시 35분경 유니온 스퀘어 역의 플랫폼에서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3개의 노선이 빈번한 운행을 하는 곳으로 곧 오겠거니 했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늦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지만 택시보다 빨리 가는 것이 뉴욕 지하철인만큼 또, 기다린 시간이 있다보니 아까워서 좀 더 진득하게 더 기다리기로 했다. 지하철 역에 전화라도 터지면 그리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심히 답답했다. 그때 스피커를 통해서 방송이 나왔다. 경찰의 수사(Police Investigation) 때문에 상행 하행 열차 모두 잠정적으로 운행 정지중이라며 4, 5, 6번 노선을 이용하라는 안내였다.

'뉴욕 지하철'의 부실함을 투덜대면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28가 역을 지날 때에도 그 방송이 지하철 환기창을 통해서 들렸다. 말 그대로 경찰 업무(Police Activity) 로 중단이 된다고 하니 아마도 중대한' 마약' 범인을 잡기 위해서거나 불가피한 '불심검문(不審檢問)' 때문이겠지 싶었다. 사건사고 다발 지역인 34가 주변 역시도 아무런 동요도 없는 것으로 보아서 마음이 놓여 여유롭게 약속장소를 향해 걸었다.

언젠가 전 세계의 손꼽히는 지하철 10군데에 관한 순위를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뉴욕 지하철은 세계 6위라고 나와 있었는데 수긍하기 어려웠다. 낡고 노후화된 시설과 넘치는 쓰레기로 불결하기 짝이 없는 뉴욕이 오래된 역사와 저렴한 비용으로 24시간 운행하는 장점으로 해서 6위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모스크바와 평양을 제외하곤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지하철은 다 섭렵(涉獵)해본터라 각 도시의 노선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몰라도 노선표 이해하기, 승차감, 승차비용, 배차간격, 정확도, 위생, 안전, 역무원의 친절 면에 있어서 나름 점수를 매겨봤다. 그때 내 기준은 안가본 두 곳을 빼고 꼴찌였다. 그 이유는 넘치는 노숙자들이나 쥐들 때문도 아니고 전화나 인터넷이 안터지는 답답함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안전면이었다. 요 몇년 사이 들어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역 사무소가 폐쇄되고 역무원들이 감원되면서 폭력이나 강도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도 거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잊을만 하면 플랫폼에서 터지는 끔찍한 살인사건들로 해서 언제부턴가 무섭고 두려운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을 등 뒤에서 밀어 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지하철 탈 때 마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피게 되고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3일 월요일 오후 12시 30분 경 N, R, Q가 다니는 49가 브로드웨이 역의 플랫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20대의 흑인이 50대의 아시안을 선로로 밀어 버렸고 역에 진입한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으며 희생된 사람은 한국인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인이고 보니 그 죽음이 더욱 안타깝고 애석했다.


일을 하면서 다른 방송을 켜보니 ‘사진’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진이란 말을 들으면서 다행히 그 와중에도 도망치는 용의자 사진을 누가 찍은 모양이구나 싶어 곧 용의자가 검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아침 방송에서 언급하던 사진이 무엇인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 라는 일간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에는 역에 진입한 전동차의 불빛 바로 앞으로 선로에 떨어진 남자가 올라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플랫폼을 부여잡은 매달린 두 팔이 보였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상황에 내가 닥친 것마냥 심장이 턱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 얼마나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을까?

분노가 일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같은 인간으로서 생명을 구하는것이 급선무 아니었을까? 근거리에서 촛점을 맞춰 찍을 수 있을만큼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고 선명한 밝기의 화질을 위해서 플래쉬까지 터트릴 정도의 여유는 있었어도 목숨을 구해볼 생각은 안들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그들과 한 이웃으로 같이 살아가고 있음에 환멸마저 느껴지기까지 했다.


▲ 2004년 12월 어느날 지하철 플랫폼에 '작품'을 설치 한 줄 알았다.(왼쪽사진) 알고보니 테러 경고로 '폭탄 같은것이 담길 수 있다' 며 청소부가 검은 비닐로 묶어 봉했는데 그 모양이 살벌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이 사진을 실은 신문사엔 윤리강령이란 부재한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Pushed in the subway track, this man is about to die (선로에 밀쳐 떨어진 이 남자는 죽기 일보 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세배나 큰 대문자 활자로 ‘DOOMED’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뜻) 이라고 써 놓기까지 했다. 황색선전에 맛이 간 천박한 뉴욕 신문사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꼭, 그 사진을 실었어야 했는지......
2면 3면에 까지 이어서 선로에 떨어져서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간 모습의 그 사진을 보였어야 했는지...... 신문사가 더러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특종(特種)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신문에 싣기도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사진들 만큼은 싣지 말아야 했다.


2000년 9/11이후 신문 지면에 올라온 확대한 사진을 잊을 수 없다. 우연인지 아니면 그게 이 신문사의 본질인지 모르지만 그 때도 이 신문의 1면에 실렸던 무역센터의 고층에서 낙엽처럼 거꾸로 떨어지던 사람들이 망원렌즈로 확대된 사진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잔인한 장면을 찍어 올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때 이후로 가장 경악스러운 사진이었다.
희생자의 처절한 마지막 모습을 봐야했던 가족들, 그 전동차를 운전했던 기관사, 그 차량에 타고 있었던 시민들, 그 신문을 본 모든 시민들 그 어느 누구인들 예외(例外)일 수 있을까? 아무리 선정적인 사진'을 싣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더래도 언론 재벌 '머독'의 윤리는 내팽겨졌으며 다시는 복구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어느날 안내를 받아 기관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사진에서 보는것과 같이 한정된 시야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전동차 기관사들의 고충이 이해가 갔다.
더욱 분노를 느끼게 한것은 플래쉬를 터뜨린 이유가 막 들어오는 열차 기관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고 그저 사진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찍힌 것일 뿐이라며 프리랜서 사진기자 우마 압바시(Umar Abbasi) 의 궁색한 변명은 어이가 없었다.
사고 경위를 더 파악해보니 선로에 갑작스레 내밀쳐져 떨어진 상태에서 60초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고 했는데 주변에 있었다던 18명의 시민들 그 누구도 거들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서 우울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플랫폼에 매달려 있는 크지 않은 아시안 남자를 두 사람이 한 팔씩만 잡아 줬어도 분명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터인데.....
왜, 그이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Help Me!' 그 외마디조차 외치지 못했을까? 혹 그랬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모두가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고 경황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음에도 구조를 외면한 시민들과 그것을 카메라에 특종으로 잡겠다고 찍은 사진기자의 윤리의식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2001년 도쿄의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발을 헛디뎌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밀쳐내어 살리고 목숨을 잃었던 한국인 '이수현'씨, 그리고 열차사이에 끼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십명의 승객이 전동칸을 밀어 들어 올린 사건들을 보면서 한국사람들과 뉴욕사람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조리개를 맞추고 플래쉬 까지 터트릴 여유까지 부리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범인이 도망가도록 방관했을까? 모두가 떼로 달려들어 팔부터 잡아당겨 목숨부터 일단 살리고 보지 않았을까....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지는 '고의적으로 밀쳐 떨어뜨리는 사고'를 접할 때 마다 지하철을 안타고 살 수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뉴욕에 사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인파속에 부딪히며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플랫폼에서 기다리면서 눈은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주변을 훓게 된다.

이상한 눈빛을 한 사람은 없는지, 해괴한 복장을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거나 누군가를 해코지하기 위해 불량한 모습을 보이는 이는 없는지, 원망과 증오의 낯빛을 한 이들은 없는지.....
행여 그런 사람이 보일라치면 멀치감치 거리를 두거나 차량을 바꿔탄 적이 몇번인지 모른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치의 각도가 180도 라고 하지만 뉴욕의 지하철에서 만큼은 눈이 넷 달린 도깨비 마냥 360도를 삥 둘러가며 세심히 돌아보고 살펴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 2006년에서 2010년까지 지하철 역에서 자주 마주친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옷으로 입고 역시 검은 비닐봉지로 뒤집어 씌운 수레를 끌고 다닌다. 움직임이 아주 느려서 유심히 보지 않고서는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험한 곳이니 스스로 조심하는 길 밖에 방법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을 해도 어쩔 수 없는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란 것은 생길 수 있다.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가 태반이다. 결국은 같은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지켜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같이 몸담고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건재하고 그것을 지켜주는 상식을 바탕으로한 인간애가 있을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설령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런 이들과 더불어 산다면 최소한으로 피해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루종일 우울하고 답답한 기분을 가눌 길이 없었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고에 누군들 예외일 수 있을까. 사람이 무서워지는 사회,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 이젠 그만! 아무쪼록 제발 이런 비극이 지하철에서 더는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2010년 도쿄에서 유학중인 한 한국인이 선로에 떨어진 취한 일본인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던 일이 있었다. 훗날 그를 찾아낸 언론이 ‘제 2의 이수현’ 이라며 어떻게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 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일본인들은 나에게 ‘용감했다’고 말하지만,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돕고 싶었을 것”이라는 그 말이 뉴욕 지하철 사건을 보면서 겹쳐 보인다.
뉴욕엔 ‘그 누구라도’ 에 해당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과연, 있기나 할런지......범인은 오후에 잡혔다고 들었지만 맨해튼에 살고 있는 오늘 그 우울한 기분을 영 떨쳐 버릴 수가 없다.

▲ 제목/ A Man Figure 종이에 물감 2006 설명/ 때로는 말로 무어라 설명을 붙일 수 없는 크로키도 있는것 같다.
kimchilimnyc@gmail.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1:09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