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들어 내 주변에 부동산과 관련한 소송 등으로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는 이들이 몇몇 있다. 묘하게도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부모로부터 받은 땅'이라는 점이다.
부자 同壻(동서)를 둔 P 씨의 경우는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반목과 유산싸움으로 시동생으로 부터 남편이 소송을 당한 경우이고 다른 이는 시인이면서 목공예가인 땅이니 돈이니 하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L 씨이다.
어느날 P 씨는 한국사는 손아래 동서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민사소송이 걸려있는 참인데다가 꽤 오랜기간의 공백이 있었기에 여전히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관계였지만 간만에 온 전화여서 어쩌면 형제간의 반목을 접고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닐까 싶어 반갑게 응했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었다. 소송에 관해서 일이 더욱 복잡해지고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당면해서 손윗 동서인 자신에게 시종일관 불만을 토로하다가 결국엔 ‘형님, 땅 주세요. 땅, 땅, 땅!’ 이렇게 일방적으로 내지르고는 수화기를 부서져라 내려 놓았다고 했다.
가족간의 재산싸움이 법정의 힘을 빌릴만큼 되었을때는 쌍방의 이해와 관용을 기대하긴 늦었다손 치더래도 최소한의 상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손아래 동서의 경우 없는 말과 행동에 불쾌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전화 이후 가족관계마저 끊어졌다는 P 씨는 '땅'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올랐다. 땅 욕심 때문에 소송보다 더한 것도 불사하겠다는 시동생이나 동서의 경우없는 말과 행동 역시 넌덜머리가 났지만 동생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남편 역시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그 땅 없이도 잘 살아 왔는데 인생을 정리해야 할 黃昏(황혼)期(기)에 서로가 더 권리를 찾겠다며 소송이라는 길고 지루한 씨름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바라봐야하는 하는 심정이 너무 괴롭고 견원지간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 개탄하고 있었다.
비단, P 씨의 경우만이 아닌 가족간의 질시와 반목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원인이 '땅'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땅이 돈'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대지며 건물, 논과 밭, 아파트, 임야 나아가 조상묘가 있는 선산마저도 분배가 공정하지 못하거나 식구 중 누군가가 몰래 차치하겠다는 욕심을 내게 되면 법정공방도 불사하게 되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수확한 벼들을 형은 아우의 집으로, 아우는 형의 집으로 밤사이 나르던 형제간의 友愛(우애)를 다룬 이야기는 이젠 케케묵은 고전이 되어 버렸다. 조상 및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부동산을 통해서 얻는 수확과 이익을 공평하게 재분배 하면서 나누던 가족애는 사회가 산업화 되고 인간의 도리마저 저버리게 만든지 오래 된듯 싶다.
미국인 L 씨는 결혼 이후 줄곧 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두어 해 전 장모가 돌아가시고 나자마자 손위 처형으로부터 유산을 정리하자는 요구와 집을 팔라는 독촉에 시달려 왔다. 아내가 태어나고 줄곧 살아온 집, 장인 장모가 돌아가신 그 집은 그들 부부에겐 여태껏 그래왔듯이 그저 집이었지만 처형에게는 빨리 처분해서 나눠야 할 재산 이상의 의미도 아니었다.
집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팔릴 때 까지는 살기로 했음에도 쉽게 팔릴 기미가 보이질 않자 처형은 경매로라도 처분해야만 한다면서 변호사를 고용, 소송을 시작하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환자들을 어루만지던 커뮤니티의 존경받던 의사였던 장인이 평생 남긴 수집품들이 하루아침에 경매에 붙여지고 급기야는 동생 부부에게 집을 비우라는 날짜를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로 속썩지 말고 하루빨리 이사를 해야하지 않겠느냐' 며 L 씨의 부인에게 말을 건네니 남편이 작업하기 위해 말리고 있는 나무며 목재가 산더미처럼 많은데 어떻게 이사를 갈 수 있겠느냐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너른 정원과 지하실에 켜켜이 쌓아둔 목재며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떠올랐다.
그뿐이랴? 그 큰 나무들을 다룰 때 쓰는 여러 도구며 장비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웬만한 크기의 창고나 땅이 아니면 이사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L 씨의 잔병치레로 해서 경제적으로 바닥이 들어나서 땅이나 집을 임대해 사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급기야 L 씨는 수만리 떨어진 고향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땅에 살고 있는 형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사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고향이 워싱턴 스테이트 주여서 차로 운전해서 20 여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곳이라 부부는 가진 현금을 다 털어 중고 트럭을 마련했다. 그리고 두어달에 걸쳐 대여섯번에 나눠서 엄청난 양의 목재며 도구 등을 실어 날랐다. 냉방도 안되고 소음도 차단 안되는, 달랑 운전석 하나만 있는 허접한 트럭을 몰아 이제 겨우 마무리가 되어가는 즈음 靑天霹靂(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안되겠으니 내 땅은 안되겠다. 다른곳을 알아봐라' 법원이 지정한 날짜에 맞추어 이사를 끝내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바로 재이사를 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형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L 씨의 아내 말을 빌리면 형이 내준 공간을 보니 정말로 형편없이 황폐한 곳으로 거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의 목재들은 쌓아두지 못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내 궁금증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e메일과 첨부된 사진 몇장이 왔다. '설치예술 사진을 방불케 한다' 는 우스갯 말로 심난해 하는 부인의 마음을 다독였지만 ‘아, 맙소사’ 그쯤 되면 어불성설이 따로 없는 형편무인 지경이었다.
‘왜, 당신 형에게 동생으로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지요? 비록 척박한 곳이라 하나 당장 필요하지 않나요?’ L 씨에게 물었다.
‘나는 땅이 필요한게 아니고 나무 작업을 할 공간이 필요할 뿐인데... 형은 내가 땅 욕심을 내는것으로 오해하는것 같네요. 그런데 그 결정은 형의 몫이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요.'
몇 초간의 작은 침묵을 통해서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겠지만 속은 얼마나 답답하고 울고 싶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 부부는 벼량끝에 선 심정이지 싶다. 정신적으로 지쳐있는데다가 육체적으로도 얼마나 고단한 상황일지. 그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를 대여섯번에 걸쳐 주를 넘나들며 이삿짐을 나른 L 씨의 건강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중삼중으로 처형과 형에게 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그들이 형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말한 이후 P 씨 동서가 내뱉었다는 '형님, 땅 주세요. 땅! 땅! 땅!' 이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정말 이들만큼 땅이 절절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땅'이 도대체 뭐길래 형제간에, 자매간에 그토록 모질게 굴도록 만드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이 말이, 이 간절한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형님, 동생 분에게 땅 좀 쓰게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땅은 이미 예전의 땅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언젠가 만났던 미국 원주민 아파치(Apache) 족의 '영혼의 독수리(Sprit Eagle)' 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이 던진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The Land is as Air, we use this Land shortly and then gone as the Wind'
(땅은 공기와 같은것, 우리 인간은 그 땅을 잠시 빌려쓰다가 바람처럼 사라질 뿐''
▲ 제목/ 2 Human Figures 종이에 연필, 물감/ 2012 / 땅과 관련하여 돈 욕심을 더 부리는 이미지와 땅이 당장 필요하나 현실적으로 길이 없는 이미지가 느껴지는 크로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