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나면 감동적이었던 금메달을 딴 선수의 입지전적인 이야기 내지는 아쉽게 혹은 분하게 놓친 선수들의 엇갈린 명암이나 경기 도중 일어난 석연찮은 판정에 관한 뒷이야기가 무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 올림픽과 달리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일이 생겼다.
한일간 축구 3-4위전에서 전범 일본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국민모두가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냥 일장기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골 깊은 상처의 우리 부모 세대가 아직도 살아있는데 2차대전의 원흉이었던 일본의 제국주의적 상징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가 난데없이 관중석에서 보였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엔 일본 선수들 앞에서 흔들어 대질 않나, 급기야는 폐막식에서조차 흔드는 일본인들까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 런던 올림픽 축구 결승전에서 일본 관객들이 전범기를 일장기와 더불어 흔들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서 전범기가 등장해서 말썽을 빚은 바 있다.
흰색 바탕에 붉은 색의 둥근 원. 붉은 선들이 사방으로 빛이 퍼져 나가듯 그려진 문양으로 일본이 아시아 침략을 하면서 사용한 ‘대동아기’ 혹은 ‘대동아공영기’ 라고도 한다. 영어 표기로는 ‘롸이징 선 플래그(Rising Sun Flag)’ 해석하자면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 이 되고 일본식 저들 해석대로 하면 천황의 군대가 태양 빛처럼 아시아를 향해 뻗어 나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 일본과 독일 전범기는 패전 후 속죄하는 차원에서 1945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독일과 달리 일본은 현재도 일본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극우파들이 상징적으로 쓰고 있다.
일본군이 조선과 아시아에서 침략하고 주둔했던 곳마다 걸려있던 상징으로 1945년 이래 자취를 감추었다가 슬그머니 자위대에서, 그리고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극우 단체 집회가 있을 때마다 출몰하고 있다.
아,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욱일승천기’ 는 일본 표기 방식으로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표현이다. 나치의 문장인(만자문으로도 불리는) ‘스와스티카 (Swastika)’가 들어간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기와 더불어 ‘전범기(戰犯旗 War Criminal Flag)’ 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부대와 전범기
한편, IOC는 한일전이 끝난 후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한글 문구의 깃발을 들고 승리의 세리모니를 한 축구 선수를 두고 명백한 정치적 표현(political statement)으로 올림픽 위원회의 정신을 위배했다며 징계를 검토 중이라고 쟈크 로케 위원장이 밝혔다.
한국인만 읽을 줄 아는 한글, 그것도 관중석에서 승리의 함성 속에서 흥분한 관중 하나가 무심코 내어준 깃발을 들고 세리모니를 한 것이 한글을 모르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정치적 의도로 보였는지, 얼마나 심각하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실수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꼭 해야한다면 전범기를 휘두른 일본인들과 전범기를 상징하는 일본 체조선수 유니폼의 문양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형평성에 맞지 않을까?
▲ '욱일승천' 을 입은 일본체조선수라고 설명이 돼 있다. '日本の体操選手たち、「旭日昇天」着'
그저 단순히 표현의 자유니 디자인의 영역이니 해서 슬그머니 넘어갈 사안이 아닌 이유가 IOC는 1945년 이래 독일 나치 문양을 연상 시키는 어떤 디자인의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 선수들 앞에서 독일 관중들이 전범기를 흔들면서 승리를 자축했다면 세계인들, 그리고 IOC의 반응은 어땠을까? 표현의 자유라고 결코 넘어갈 수 있는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대로, 실수로라도 전범기를 흔드는 화면들을 내 보낸 방송국에도 그 책임을 물었을 게 분명하다. 고의든 실수든 전범기를 화면에 실어 나른 방송 매체도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봐야 하기때문이다.
▲ '대동아전쟁욱일승천사진'을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전쟁 사진과 함께 일본 체조선수가 나온다.
그러니 징계를 하려거든 제대로 공평하게 해야 하고 정치적 표현을 금한다는 규정을 충실히 따르려거든 일본 전범기를 흔들어 댄 일본인들에게도 마땅히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은 올림픽뿐만이 아니라 국제 대회 나갈 때 마다 ‘대동아공영기’, 즉 ‘전범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단속하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인의 반일감정을 부추기지 않도록 강도 높게 사용금지를 요구하는 공문이 발송되기도 하였다.
▲ 전범기는 유명한 인터넷 경매에서도 '99 센트'에 버젓이 팔리고 있다. 완전히 사라진 독일의 전범기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일본 스스로도 그 깃발이 어떻게 세계에 비쳐지는지 알기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이 끝난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지만 아직도 군국주의적 망령은 끝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으로 식민치하 36년 이라는 참담한 역사가 생생하다. 일본이 우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과 잔인무도한 만행들을 어찌 다 말로 열거할 수 있으랴. 말과 정신 그리고 문화를 짓밟고 조선인을 상대로 한 마루타 생체실험, 무고한 양민 학살 등등 우리 세대가 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지난 역사이니 굳이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은 물론이고 대동아공영권의 침략전쟁을 합리화 시키면서 총알받이로 내보내어 개죽음을 시킨 조선의 징용청년들,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짓밟힌 종군 위안부 여성들, 아직도 국가적으로 풀고 매듭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당 시대의 피해를 당한 이들이 오욕의 역사 속에서 시퍼렇게 살아있음에도 국가적 사죄나 보상 또한 요원(遙遠)한 것을 보면 일제치하의 잔재와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한 댓가인듯 싶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작금의 ‘독도’를 한일간의 문제가 아닌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서, 결국엔 국제사법 재판소로 어떻게든 넘겨보려는 아주 파렴치한 물 밑 속내를 숨기고 있다가 서서히 그 꼼수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음을 본다. 오늘은 광복절. 나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께 머리 숙여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 뿐이다.
▲ 경매 옥션장의 모습. 빅토리아 시대 인형부터 현재의 캐릭터 인형까지 수천점이 4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지난 해 ‘인형 경매( Doll Auction)’ 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수천개의 인형들이 다양한 소품들과 어울려 진열되어 있었다. 값비싸고 인기 많은 고가의 인형들부터 만화영화의 캐릭터들 까지 망라되어 있었는데 한국 인형은 보이질 않았다.
▲ 한국인형은 단 한점씩 각각의 박스에 담겨 있어서 하나의 인형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섞여진 박스를 통째로 사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두 박스 속에서 나온 '반가운 한복 인형 두점'
그러다가 허름한 박스 속에서 치마저고리를 입은 인형이 보였다. 바랜 빛깔의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보면서 한국인인 내가 구입해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이 생겼다. 그런데 경매도중 일본인형이 하나 보였다. 일본 물건은 값어치가 있건 없건, 얼마나 오래 되었건 간에 외면을 했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수집가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고가에 낙찰 받은 19세기 기모노 인형.
손으로 짠 염직에 자연염색을 들인것으로 보이는 전통적인 기모노 복장이었다. 오래되어서도 아니고, 투자할 가치가 있어서도, 정교하고 섬세한 장인의 솜씨가 돋보여서도 아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자세를 보는 순간 경매에 나온 조선 처녀 인형들 앞에 일본인이 사죄와 용서를 비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면 상상이 지나쳤을까?
▲ 기모노 인형은 유리 케이스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유리관 속에서 형벌을 치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비록,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지만 고개를 숙인 그 모습은 속죄를 하고 용서를 비는 느낌마저 들었다. 순박한 댕기머리를 한 조선처녀 인형들 앞에서 기모노 인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본과 일본인을 대표해서 조선(한국)에 저지른 그간의 만행과 악행들… 죽어서도 씻지 못할 큰 죄를 졌스므니다. (日本が 日本人が 韓国に 日本人が 死ぬ罪をされました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스므니다. 어떤 보상이든 다 해드리겠스므니다. 앞으로 대대손손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도록 하겠스므니다.
▲ 빛바랜 한복입은 조선처녀 인형 앞에서 속죄하듯 고개 숙인 기모노 입은 인형
또한, 조선(朝鮮)의 국모(国母)인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한 대역 죄와 종군위안부(従軍慰安婦)로 끌려 나온 수 많은 조선처녀들께 저지른 죄를 다 어찌 씼을 수 있겠스므니까? 감히 어떻게 용서를 빌겠스므니까? 일본인으로 같은 여성으로서 그 아픔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백 배 천 배 엎드려 사죄 드리므니다. (日本人で 同じ女性で 一緒に 痛みを共感して 百倍千倍 お詫び申し上げます.)”
언젠가는 인형이 아닌 내 상상에서가 아닌 일왕의 입을 통해서 일본 수상의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위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한다.
대한 독립 만세! 코리아 만세!
▲ 제목 A Human Figure. 종이에 물감. 2011.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망령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 크로키를 통해서 몸에 온통 가시가 박힌것 같기도 하고 털로 몸을 덮어버린 느낌도 받는다. 진실은 커녕, 사실조차 왜곡하려는 군국주의 일본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