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디 넓은 공터에 높이 솟은 하얀 천막. 흰 바탕의 천에 검은색 궁서체 글씨로 쓰여 있던 ‘동.춘.서.커.스.단’. 이젠 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 몇이나 될까 싶을만큼 아련한 추억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공연 문화가 거의 없던 시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假設劇場(가설극장) 즉, 천막극장을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했던 이 서커스단은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서커스단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오래전의 기억속에는 비록 공연 내용은 없지만 서커스를 홍보하던 그리 키가 크지 않던 곡예사 단원들의 모습과 홍보 전단지 등의 대한 기억은 꽤나 선명하게 남아있다.
선전용 종이에는 조잡한 글씨로 공연 내용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별난 기형으로 태어난 이들에 대한 선전도 같이 곁들여져 볼거리로 선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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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맨해튼에서 열리는 이탈리안계 미국인들이 벌이는 '산 제나로 페스티발'을 다니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그 축제가 우리나라 모습과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장날같이 북적이는 모습과 철판위에서 구워지는 기름진 음식들 냄새,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놀이나 공연 천막으로 유인하는 모습이 마치 동춘 서커스단을 연상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서커스단에 몸 담았다가 나왔다던 한 고달픈 곡예사의 인생사를 통해서 듣게된 단원들의 哀歡(애환)은 꽤나 슬펐다. 아울러 정착하지 못하고 늘 옮겨 다니며 사는 삶으로 해서 가족을 이루는 일과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 시키는 데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 친구 한명이 조심스런 부탁하나를 해왔다. ‘내 그림이 과연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조금은 생뚱맞은 부탁이라고 여겨졌지만 맨해튼에서 꽤 명성이 높다는 그 화랑을 찾았다.
화랑주인은 나를 돈많은 고객으로 여겼는지 침이 마르도록 작품과 화가에 대해서 번지르르한 美辭麗句(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이름없던 무명의 화가가 화랑주인의 입을 통해서 졸지에 피카소, 고갱 및 고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천재 화가로 둔갑되었으며 작품값은 평균적으로 1만5,000 달러를 홋가하고 있었다.
▲ 소녀들로만 채워진 몽환적인 세상을 그린 Henry Darger
화랑에서 작품당 평균 500~1,000 달러 사이에 구입해 간다고 했기에 천재라는 이름이 붙은 채 엄청난 금액에 판매되는 작품값은 화가 친구에게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금세기에 보기드문 미래의 피카소’라도 해도 그렇지 무려 20배 정도 육박하는 차액은 작품 몇점을 팔아 근근이 생활해야 했던 친구에게는 엄청난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뉴욕 그림시장이 원래 그런거려니 하고 받아들이기엔 현실적인 괴리감이 너무 크고 상식선을 넘은 '도둑 심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전이 끝난 뒤 해를 가름한 어느 날 친구를 만났을 때 ‘전시를 성공적으로 잘 마쳤느냐? 이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으니 작업실을 좀 더 여유있는 공간으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개인전이 열린 화랑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화랑에서는 작품을 3개월 단위로 골라서 가져갔고 전시할 때는 얼추 2년여에 걸친 작품들로 중 대형 크기인 유화 35점을 걸었는데 작품값을 3분의 1도 못 받았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늘 푼돈으로 쪼개어 지불했으며 일년이 다 되도록 정산되지 않아 차라리 작품을 돌려 받으려고 갤러리를 방문했더니 작품 18점이 도난당했다(?)며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속터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시 1년이 지난 뒤 바람결에 들은 소식은 소송을 포기했다는, 아니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들렸다. 소송을 위해 東奔西走(동분서주) 했지만 화랑 전문 변호사를 구하는것이 별따기였고 설사 찾는다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임료 때문에, 또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노예계약 문서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소송은 커녕, 작품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 뒤로 그 친구를 본 기억이 없다. 듣자하니 그 일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홀연히 뉴욕을 떠났다는 말만 들었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거대한 뉴욕이라는 그림 시장에서 힘없고 가난한 무명화가가 설 땅이 없었을 뿐더러 그 화랑주인의 야비한 술수에 幻滅(환멸)을 느꼈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을 해 볼 뿐이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친구인 입장에서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엄청난 재력과 변호사를 가진 화랑 주인과 돈 없는 무명화가의 게임은 진실공방을 떠나 이미 뻔한 결과가 나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 TV 에서는 미드타운에서 ‘링링 서커스’ 단의 공연이 있다며 선전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의상, 분장,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사들의 묘기를 보면서 환호하지만 막을 내리고 분장을 지운 이들의 뒷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초라하게 보였다.
한 때 서커스단에 몸 담았다던 한 러시안 곡예사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링링과 동춘 서커스, 아니 그 어떤 서커스단 역시도 규모나 공연 내용은 달라도 공연단의 삶의 애환이나 속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동춘 서커스단의 곡예사들이 분장을 지우던 모습과 볼쇼이 서커스 단원들의 무대 뒷 모습을 떠올리면서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어 버린 내 그림쟁이 친구까지, 그들은 어쩌면 ‘재주 많은 곰’이 아니었을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벌고’ 라는 말이 서커스 단원들의 생활고와 가난한 무명 화가가 당해야 했던 현실을 꼬집어 말해주는 것 같다.
얼마 전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무명 화가들의 ‘아웃사이더 아트 쇼 (Outsider Art Show)’ 가 열렸다. 대부분이 가난했으며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고 더러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만 표현의 재능을 가진 이들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되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는 전시로 자리잡았다. 반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방인들의 작품값을 대하면서 안타까움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살아있다면 저 작품 하나만 팔아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비참하고,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서 힘들게 산 그들의 이력들을 작품값만을 올리는데 이용하려는 무리는 없지 않은지 염려가 된다.

▲ Bill Traylor 화가. 남부 농장의 노예로 살았던 할아버지. 홋가하는 금액이 10만불에서 100만 불까지
아직도 이 세상에는 시대가 바뀌고 진화되었어도 여전히 재주를 부리는 곰의 역할과 현실적인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 변함없이 양분화 되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추억 속의 '동춘서커스단' 을 찾아봐야겠다.
▲ 제목/ Male Figure 종이에 연필, 물감 2011. 설명/ 서커스 단원들의 공통점은 유연함으로 나무 막대를 뒤로 하고 몸을 젖히는 모델의 포즈에서 동춘서커스단을 떠올려 본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