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炸裂)하는 태양볕이 뜨겁다못해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6월의 마지막 일요일. 맨해튼이 후끈 달아올랐다. 가족과 연인들, 친구들과 이웃들 그리고 여행객들과 뉴요커들로 북적인 미드타운은 여기저기서 틀어대는 빠른 템포의 리듬과 거기에 맞춰 흔들어대는 이들로 누가 행진에 참여하는 이고 누가 구경꾼인지 구별하기 힘들만큼 한데 뒤엉켜 있었다. 그들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있었다면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인파를 막아선 철제 가림막 뿐.
▲ 보라색 립스틱을 바른 여경을 통해서 게이 프라이드 행진의 날임을 짐작할 수 있다.(오른쪽아래)
행진의 성격상 그렇기도 했지만 부채질도 한계가 있어 보이는 폭염(暴炎)속에 치러진 탓에 다 벗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벗어제낀 복장의 참가자들 속에 내 시선이 자꾸 가는 곳이 있었다. ‘드래그 퀸(Drag Queen)’! 대부분이 캬바레나 클럽에서 노래나 춤을 추는 여장남자(女裝男子)들로 하나같이 180cm는 족히 넘는 장신들로 체구가 건장하기 그지없는 그들은 높이 올린 가발과 한뼘이나 되는 굽 높은 구두까지 신어서 그런지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었다.
뮤지컬 배우 이상으로 공들인 짙은 화장하며 갖춰입은 복장, 거기에 어울리는 요란한 가발들로 해서 수십배는 더워 보였다.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는 몇몇은 연신 우아한 동작으로 손수건으로 땀을 닦기도 했지만 행여 화장이 지워질세라 자제하고 있었다. 그들 누구도 지치거나 짜증난 모습은 없었으며 나아가 누구라도 사진찍기를 청하면 다정하게 포즈를 잡아주는 등 차례가 오기까지 서너시간 내내 한결같이 환하고 친절한 모습들이었다.
위의 풍경은 45회를 맞는 ' 게이 프라이드 마치(Gay Pride March 2014' )가 시작하는 6월 29일 정오의 맨해튼 5애버뉴와 6애버뉴 사이의 37가에서 본 한 단면으로 주변의 대여섯 블럭은 동성애(同性愛)를 상징하는 무지개 빛깔들로 일색이었다. 화려함을 넘어 요란스럽기 짝이 없는 쳐다보기조차 민망한 형태의 복장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선두에 있는 이들 중에서 보라색 셔츠를 입고 무지개 빛깔 넥타이를 맨 이가 눈에 띄었다. 주변 사람들에 비해 우뚝 솟아 보이는 체구로 해서 여장남자가 아닌가 싶었지만 사람들이 '시장이닷!' 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얼마전 선출된 뉴욕의 새 시장인 ‘빌 드블라지오(Bill de Blasio)’ 씨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존의 시장들이 입던 양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그는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부인의 손을 잡고서 한 손에는 무지개 깃발을 열심히 흔들기도 했고 입가에 가득한 미소로 연도에 늘어선 이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빌 드 블라지오 시장이 부인과 딸을 동반하여 행진에 참여하여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시민들이 환호하고 열광하였다.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매년 참가한다는 윌과 도미니크 커플은 “아이오와 주에서는 흑인부인을 둔 백인정치인이 입지를 얻는 일도 없지만 시장이 보라색 옷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뉴욕시민들이 부럽다. 하루빨리 아이오와 주를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행진에 동반한 딸 역시도 ‘퍽 과감한 모습의 복장’으로 시민들과 어울려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십수년 간 보아왔던 이전의 뉴욕 시장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의례적인 행사로 숱한 경호원들에 둘러싸여서 다니던 관료(官僚)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달리 소탈한 모습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소리높여 환호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십수년간 같은 장소에서 매해 행진을 보았지만 올해처럼 열기가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못지 않게 구경하는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덕분에 이열치열(以熱治熱)처럼 더위를 눌러버리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게이 마치’가 비단 동성애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하나의 유행처럼 마치 젊은이들의 축제를 치른듯한 느낌을 받았다.
1969년 ‘스톤월 인(Stonewall Inn)’ 이라는 게이 바에서 있었던 경찰의 과잉단속(過剩團束)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1970년부터 시작된 행진은 해를 거듭하면서 LGBT(여성애자, 남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모두를 망라해서 권리와 인권 그리고 평등을 요구하는 퍼레이드로 바뀌었으며 근자에 이르러서는 게이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 행진을 보기 위해서 다른 주나 외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부쩍 증가하는 등 뉴욕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가 큰 거대한 도시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해와 구별된 또 한가지의 특징이 있었다면 ‘보이스카우트’ 단원들이었다. 카키색 혹은 진곤색 복장을 한 이들이 목에 무지개색 스카프를 매기도 하고 배지를 달기도 한 모습으로 행진을 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 작년에 비로소 투표를 통해 보이스카우트 유스그룹에 동성애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공식적인 선언이 나온 이후로 첫번째 행진이었던 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단원들이 있었다.
87세의 데이빗 냅(David Knapp)씨는 자신이 동성애자여서 보이스카웃에서 퇴출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보이스카웃으로 살아온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自矜心)을 느낀다며 어린 단원들과 피킷을 들고 행진에 참여한 소회를 밝힌 탓에 기자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듣고 보기를 보이스카우트 단원들은 캠핑과 규율(規律)을 통해 협동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용감한 남자중의 남자로 이해되었던것 같다. 보이스카우트의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 한 동성애자 역시도 단원이 될 수 있다는 평등의 원칙과 기회균등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생겼다. 성인이 아닌 유스그룹(Youth Group) 즉, 청소년기의 소년들에게 성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어려운 나이의 이들에게 어떻게 그런 규율이 적용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기준으로 삼고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를 적용 할 수 있을지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곤혹스럽게도 여겨졌다.
▲ 이날만큼은 뉴욕시 어디서나 거리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동성연인들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의문과는 별개로 올 해도 뉴욕에서의 ‘게이 프라이드 마치’는 적쟎은 잡음과 가십거리들을 뒤로한채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기를 펴게 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주눅들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활보하게 만든 날임에 분명하다. 45년 간의 세월의 더께를 입음으로서 적어도 다른 어느 나라 어느 도시와는 차별화된 뉴욕만의 자랑거리가 아닌가 싶다. 올 해 프라이드 마치에는 한국인들의 사물놀이패도 참여해 신바람 나는 행진이 되도록 톡톡히 한 몫 거들었음에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스치고 지나간 한 시민의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하나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맨해튼에 살면서 게이 퍼레이드 행진을 얼추 15년간 가깝게 쭈욱 지켜봐온 내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GAY OKAY!’
제목/ Rainbow Color Croquis 2011. 종이에 물감. 동성애자들과 동성애 문화를 상징하는 빛깔들..... 빨간색은 삶, 오렌지색은 치유, 노란색은 햇빛, 초록색은 자연, 옥색은 예술, 남색은 조화 그리고 마지막 보라색은 정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kimchikimnyc@gmail.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