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만든 ‘패션위크’가 지난 17일 막을 내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의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에서 열리는 ‘패션위크’ 때가 되면 작은 얼굴, 긴 다리의 모델들을 수도없이 보곤 했다.
▲ 2011 패션 위크 기간중 맨해튼 5번가 쇼 윈도우
가까이서 보면 ‘보기좋다’, ‘건강해 보인다’라기보다 ‘카메라에 참 잘 받겠다’, ‘옷을 걸쳐놓으면 효과 만점이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만큼 가늘다 못해 휘청이는 코스모스처럼 보이는 모델들. 그 '기럭지'에 한뼘씩이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도 넘어지지 않고 잘도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모델은 타고나야 하는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유명한 패션 모델 두 사람을, 한 사람은 뉴욕에서 한사람은 서울에서 가까이 접한 적이 있다. 얼추 25년전의 일로 당시 유명한 디자이너가 학교에 찾아와서 패션쇼를 하기 위해 조각작품을 제작해줄 두 사람을 찾았다. 조교의 추천을 받아 나와 이 아무개가 아르바이트로 디자이너의 요구에 맞춰 구리로 만든 느낌의 수천년의 세월이 덧 입혀진듯한 옷 제작에 착수했다.
FRP 라는 화공약품으로 써서 번쩍거리는 금속 동상처럼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먼지와 동분 가루를 마셔야 했다.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마치고 쇼가 열리는 무대 뒤로 갔다. 두명의 패션모델들이 우리에게 왔다. 인형같은 모델 하나와 ‘이런 사람도 패션모델이 될 수 있구나’ 라고 내심 놀란, 광대뼈가 돌출된 몽골리안의 전형으로 보이는 개성이 강한 모델을 만났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패션모델들이 모인 패션쇼 현장은 아수라장(阿修羅場)을 방불케 했다. 화장과 머리모양을 후다닥 바꾸는 일 부터 옷을 번개처럼 갈아입히는 일은 기본이고 여기저기서 재촉하는 소리,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고함소리까지 정신이 없었다. 패션쇼 무대와 뒷 무대의 괴리감(乖離感)이 그렇게 클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나, 주변사람들을 마치 시종 부리듯 다루는 유명한 모델들을 보면서 놀랬던 기억이 새롭다. 차례가 되어 작품을 입혀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옷이라고 하기엔 그 작품은 너무나 걸치기 무거웠고, 딱딱했고, 거칠었다. 모델의 몸을 실측해서 만든 작업이 아닐뿐더러 실리콘 같은 재질도 아닌 대리석과 금속 같은 재질의 옷을 입히는 것 자체가 무리로 느껴졌다.
디자이너는 그 상황을 감지했음에도 ‘재주껏 무조건 입혀라’ 였다. 그 인형같은 모델은 온갖 짜증과 울상을 짓더니 이런 옷은 죽어도 못 입겠다고 버텼다. ‘옷을 입으라가 아니고 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해내라’는 디자이너의 한마디는 명령 그 이상이었다.
그와 달리 내 앞의 모델은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몸을 최대한 유연하게 움직여서 옷을 입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입는 과정에서 어깨에 찰과상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팔이나 부러지지 않으면 된다’며 주변 사람들 무안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듯 웃어가며 그 옷을 입어내는 내 모델은 달라 보였다. 덕분에 쇼는 멋지게 잘 끝났다.
나는 그 모델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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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요구하는 분위기와 느낌 그리고 역할에 최대한 맞추려고 애쓰던 모습도 그랬거니와 겸손하고 침착한 인내심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우리나라의 탑(Top) 모델중의 하나라고 했다.
뉴욕에서 본 패션모델은 흑진주로 불렸던 ‘나오미 캠벨'(Naomi Cambel)’이다. 백인 일색의 모델계를 평정한 유일한 흑인 여성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눈빛과 모든 의상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로 유명한 수퍼모델(Super Mod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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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패션위크가 열리던 즈음 나와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에 둘러싸인 채 줄 담배를 피워대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걸걸하고도 쉰듯한 목소리, 사이사이 양념처럼 섞어서 터져나오던 육두문자, 키가 장대같이 크고 몸매가 무척 탄탄해 보이던 흑인 같기도 하고 백인 같기도 하고, 여성같기도 하고 남성같아 보이던 사람.
몇 분 되지 않아 나타난 파파라치에 에워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을 때까지 나는 그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냐?” 물으니 그 카메라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말 누군지 몰라서 묻느냐”며 “그 유명한 나오미 캠벨” 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이름을 내가 모를리 있나? 내가 손꼽던 수퍼모델인데.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결코 내 시력때문이 아니었다. 무대를 통해 보여주던, 카리스마 넘치고 위풍당당하던 수퍼모델은 온데간데 없이 욕설과 천박한 대화 일색의 ‘안하무인’ 으로 보이던 거친 여성만 있었다.
이후, 나오미 캠벨이란 이름은 이름난 패션 쇼 무대와는 거리가 먼 주변인들과의 마찰 내지는 폭력과 연계되거나 마약과 관련된 가십거리 속의 불명예스러운 뉴스 단골로 전락한듯 보인다.
수퍼모델들. 그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한만큼 그 이면에는 눈물젖은 빵으로 점철(點綴)된 보이지 않는 인고의 세월이 있다. 또한, 훤칠한 키와 수려한 용모만이 아닌 다양하고도 폭넓은 지식, 당당하고도 여유로움, 부드럽고도 강한 이미지로 자신에 대한 투자와 끝없는 자기 개발을 통해서만이 세계적인 반열(班列)에 오를 수 있어 보인다. .
대단한 영화배우가 되려면 ‘자신을 비워내고 맡은 배역의 캐릭터를 채워넣는 일’이 관건이듯이 모델은 무대와 관중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찰나의 짧은 시간을 통해 압축된 자신과 디자이너가 요구하는 역할을 단순히 옷걸이가 아닌 작품으로서 소화해내야 하는 직업이다.
내가 존경하는 모델을 두고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못생긴’ 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그 모델을 수식한다. 모델을 ‘갖춰진 자질’이 아닌 ‘생김’ 이라는 잣대로 보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세계적인 수준의 반열에 오르는 한국인 모델을 배출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왕년의 화려한 모델이 아닌 가정주부로, 요리사로, 작가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일로 부단한 관리와 노력을 경주하는 그는 패션모델이 아닌 삶의 모델로 입지가 우뚝 서 보인다.
오늘도 맨해튼에는 세계 각국에서 최고의 모델을 꿈꾸며 오는 숱한 모델들로 넘쳐난다. 개성있고, 당당하고, 자신의 직업정신에 투철한 제2의, 제3의 김동수가 나온다면 머지않아 뉴욕의 패션위크를 통해서 한국의 세계적인 수퍼모델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바램 해 본다.
▲ 크로키 제목/ Figure Images 종이에 잉크 2006. 설명/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패션모델과 크로키 시간에 만나는 수퍼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다. 패션모델이 늘씬하고 시각적인 빼어난 선이 요구되는 반면 그림그리는 입장에서는 풍성하고, 분위기 있고, 운동감이 느껴져야 수퍼모델 자격이 있다. 십년간 우리의 수퍼모델 역할을 충실히 해준 아비바 'Avi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