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바람은 차가왔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선 봄의 기운이 차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일부러 작정을 하고 찾아가는 아미쉬(Amish) 마을이 있다. 이곳엘 가면 바야흐로 겨울을 벗는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릴 뿐만 아니라 농사 지을 준비로 한창 바쁜 부지런한 이들도 먼발치로 만날 수 있다.
▲ 뉴욕을 벗어난 주말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씨를 보이고 있다. 창공의 매 한마리가 적당히 바람을 가르고 있다.
농사라곤 한번도 지어본 적도 없고 농삿일을 거들어 본 기억도 없지만 전생에 농부였는지 농사에 관해서 유독 관심이 많은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때는 수집에도 열을 올려서 나무로 된 농기구만을 집중적으로 사러 다닌 적이 있다. 대부분의 농기구나 공구들은 하나같이 크고, 무거웠지만 비싸지가 않아서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었다.
▲ ‘사슴주의’ 라는 노란색의 표지판. 사슴이 많이 다니는 길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가짓수가 늘어나고 더 좋은 물건을 보는 눈이 생기면서 매입하는것이 조금씩 부담으로 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되팔때 전혀 돈이 안되는 물건들이다보니 파는 골동품 상인들 조차도 “팔아서 좋긴 한데 대체 아가씨가 이런것들은 사서 무엇에 쓸려고 하느냐? 짐만 될것을.....” 이라는 염려와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꼭,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 될까마는 굳이 들자면 ‘그냥 좋아서’ 였다. 오래 쓴 농기구들엔 농부나 그 아낙들이 쓴 닳고 닳은 흔적이 손때와 함께 고스란히 묻어 있으며 닳아서 변형된 흔적들에서는 읽혀지는 농심(農心) 때문이라고나 할까.
수집이란게 그렇듯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한정된 그것도 좁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농기구들은 포개지고 쟁여지면서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어느 싯점에 다다르니 누울 자리도 내줘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건들에 치여서 어쩔수 없이 정리를 해야했고 사물도 그렇지만 물건도 제 자리에 있어야 보기 좋다‘ 라는 결론을 내린 다음 주터는 거의 편집증(偏執症)적인 수집을 멈춘 것 같다.
다행히 미국에 와 살면서 농기구 사는 일은 없어졌다. 정서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기계농을 하는 미국이라서 그런지 나를 매료시킨 농기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도 사람의 손때가 묻은 소박한, 장식 없는 목물(木物)들이 많다보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아직도 욕심과 갈등속에 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이사 갈 때 편하려고’ 내지는 ‘집에 갖다 놀 곳도 없으니까’ 라는 식으로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포도’처럼 위로를 삼는다. 대신 사는 것을 줄이고 철마다 농장이나 농원에 쫒아다니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나 눈으로나 보고 즐기는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 소방서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각 카운티 단위로 이른 봄에 열리는 재미난 세일에 다녀왔다. 사람들을 일러 ‘Mud Sale(진흙 세일)’이라고 한다. 대체 뭘 팔까? 혹시, 종류대로 진흙을 한덩어리씩 놓고 파는 것은 아닐까?
▲ 아미쉬 마을이 가까워진 것을 알려면 도로상의 표지판을 보면 되는데 버기가 다니는 길엔 이렇게 표기가 되어 있다.
▲ 아미쉬 농가가 멀리서 보인다.
▲ 빨래가 줄맞춰서 널려 있는 모양을 보니 목적지가 가까와 오고 있다는 표시 같다.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섰지만 네비게이터에 오작동이 생겼던지 한참을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다가 예정 시간보다 두어시간 늦게 도착했다.
▲ 흰 스카프를 두른 아미쉬의 여학생 둘도 머드세일에 바삐 서둘러 가는 모습이다.
부지런한 한국의 오일장처럼 벌써 장이 파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놓은 물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구경도 못해보고 다 팔려나지나 않았을까, 날씨가 출발할 때 구름 한점 없었는데 흐려지는걸 보니 비라도 갑자기 내려서 취소되는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가는 내내 들었다.
▲ 주차장이 따로 없다. 밭으로 쓰고 있는 공터가 오늘 머드세일 공식 주차장인 모양이다.
▲ 진흙 세일이라더니 혹, 이 차들이 지나간 밭의 흙을 파는게 아닐까? 진흙보다 찰흙이라고 해도 될만큼 진흙이 아주 찰지다.
▲ 마차인 ‘버기(buggy)’도 세일하는 곳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또각, 또각.....소리가 정겹다.
도착해보니 온갖 종류의 경매가 여기저기서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거의가 다 중고 물품으로 농삿일과 관련된 도구, 기계, 재료, 화초, 묘목 등을 망라해서 팔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줄을 길게 서서 번호표를 받는 신청서를 쓰고, 다른편에서는 구입한 물건값을 치르느라 바쁘고, 한편에서는 나르느라 너도 나도 바쁜 상황이었다.
▲ 벌써 물건을 사가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린이 중고 자전거와 삽 두자루와 농기구 하나를 좋은 가격에 샀다며 희색이 만면이다.
▲ 농기계 경매가 한참 진행중인 곳의 풍경. 채양 넓은 밀짚모자들의 운집이 퍽 인상적이다.
▲ 머드세일에 장 보러 나온 노부인. 검은색 겨울 코트와 모자가 외출용 정장이다.
우선 먹거리가 있는 곳부터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경험상으로 배가 적당하게 부르면 느긋하게 구경도 하고 사고 싶은 유혹도 멀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 틈에 어울려 여유를 부리며 늦은 점심을 했다.
▲ 소녀 둘이 담소를 나누며 점심을 들고 있다. 뒤로는 페달이 아닌 발로 굴러서 타는 자전거들이 있다.
▲ 공동체에선 남아는 씩씩한 사내로, 여아는 요조숙녀로 성 정체성을 확고히 해서 키워내는 것을 본다. 어린 남매가 사이좋게 그러면서도 독립적으로 걷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보니 어린 사내 아이들이 둘 혹은 셋으로 조를 이루어 바퀴가 달린 평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손님이 산 물건들을 차 있는 곳까지 배달을 다니고 있었다. 이제 겨우 예닐곱살 될까 말까 한 아이부터 열두 셋 정도 되는 어린 소년들이 긴 장화들을 신고서 작은 수고비를 받으며 열심히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면서 내게도 아이디어 하나를 주었다. 무겁거나 큰 물건들 사도 문제 없겠구나.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 하는거고!
▲ 한 가족이 장 본 물건들을 열두어살쯤 된 사내아이가 수레에 물건을 실어 날라주고 있다.
▲ 제목/ 남자의 발 2009/ 종이에 흙물과 커피. 흙 물로 그려져서 그럴까? 머드세일에 온 흙 투성이의 건장한 남자의 발을 연상케 한다.
장이 파하고 해가 어스름해질 때 까지 그곳을 돌며 군것질도 해가면서 물건들이 팔려 나가는 흥정과 경매를 지켜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비록, 한국의 깡 시골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장날의 후덕(厚德)한 풍경들은 아닐지라도 시장만한 흥미로운 곳은 없는 것 같다.
▲ 머드세일 중에서 유일하게 아미쉬 사람들이 아닌 이들이 참여한 세일이다. 골동품에 가까운 물건 경매여서 그런지 인근 주변에 사는 가게 주인들이 주를 이룬다. 일반인들끼리 하는 경매는 경쟁이 높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 여성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경매는 ‘퀼트’다. 겨울 내내 집에서 손 바느질로 만든 것으로 적게는 2개월에서 5개월까지 걸려서 만든다고 한다.
▲ 기도모자 ‘캡(Kapp)’을 착용한 아미쉬의 여인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차가 묵직하면서도 흐뭇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동네 여성들이 집에서 만든 잼 종류의 들고 다니기 힘든 무거운 저장식품이나 곡류 등을 여유있게 실어서도 그렇지만 시골 농가에서 뜯어낸, 짝 잃은 그것도 흙이 덕지덕지 묻은 외문짝 하나를 샀기 때문이다.
▲ ‘머리에는 예절이, 가슴에는 사랑이, 손에는 노동이 있다’는 아미쉬 공동체를 표현하는 말 같다. 머드세일에 버기를 사러 먼 길을 왔다는 30대 초반의 아미쉬, 새뮤엘 씨의 손이다.
안살려고.....정말 안살려고 했는데..... 경매장 특유의 분위기에 휩싸여 어찌어찌 경쟁하다 보니 예상보다 높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았지만 뭔지 모르게 흐뭇했다. 아마도 한국의 지름신이 그순간 미국까지 제트기라도 타고 날라온 모양이다.
어찌되었건, 진흙세일에서 흙이 제대로 묻은 놈으로, 세월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은 때깔 좋은 물건을 골랐다 싶으니 마치 진흙속의 흑진주라도 찾은 기분이다. 이런 내 기분을 대변할 적절한 영어 문장을 하나 골라 보았다.
“I CAN'T HELP IT!”(누가 날 좀 말려줘요!)
<하편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