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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움직임과 느낌을 순식간에 역동적으로 잡아내는 크로키는 카메라의 ‘스냅샵’과 비슷하다. 누드크로키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뉴욕에서 십수년간 천착하며 작가의 붓끝을 거친 다양한 인종의 누드 모델만 1천명에 달한다. 크로키속에 담긴 진솔한 인간의 향기를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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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의 손톱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1-06-20 (월) 07:27:09

6월 8일 소포 하나를 보냈다.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날짜를 잘못 짚었다는 것. 그러다보니 6월 19일에 맞춰 들어가면 좋을 소포가 일주일이나 앞서 도착되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주 초 “아버지날이 머지 않았는데 어떤 계획이 있는지 남편에게 물으니 올해는 e-card 하나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겠노라고 했다. 근래 맡은 프로젝트로 해서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말로 생각돼 혼자 슬금슬금 소포를 꾸리기 시작했다.

보낸지 3일째 되는 날 시부모님으로부터 아버지의 날을 기념한 ‘깜짝 선물’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는 답장이 왔다. 이어서 담긴 내용물 하나하나 여간 맛있지 않다며 며느리 덕분에 잘 먹고 있다는 이메일까지 왔다.

내 시아버지는 엄격하고 근엄하며 절제가 습관화되어 있는 편으로 평생을 대학 강단에 선 때문인지 다소 권위적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중도파 성향으로 우리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사뭇 코드가 다르다보니 대화도중 부딪힐 때도 적쟎아서 나로선 시아버지가 여간 어렵지 않다.

  

▲ 배우 숀 코네리와 닮았다는 소리를 듣던 시아버지의 4년 전 모습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제 햇수로 3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진다는데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대한 정이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바람이 되는가 하면 한국에선 아버지랑 걸음걸이가 닮은 노인 뒤를, 미국에선 옆 모습 선이 닮은 느낌 하나로 자석에 끌려가듯 네이티브 어메리칸 노인 뒤를 나도 모르게 한참이나 뒤따라 가다가 힘없이 발걸음을 돌린 적도 있다.

6월의 세번째 일요일은 미국에서 정한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다. 이 날이 의미깊게 다가온 것은 비록 내 아버지는 가셨지만 시아버지가 계시다는 안도감을 느껴서였다. 우리가 서부와 동부라는 지리적으로 먼 관계 그리고 한정된 휴가 기간 때만 만날 수 있는 제약으로 자주 뵐 기회가 적다보니 알게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서먹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특별한 날을 맞을 때면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만으로 감사함과 존재감이 뭉클해진다.

소포 박스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시아버지가 자주 들렀던 뉴욕의 한 식당에 찾아가서 평소 즐겨 드시던 살라미(Salami)를 사고 리커리쉬(liquorice) 라는 감초 맛이 진하게 나는 스웨덴 산 젤리 박스도 여럿 넣었다. 그리고 식당에 간 느낌이 드시도록 그곳의 메뉴와 곁들여 내오는 겨자, 심지어 식당에서 쓰는 냅킨까지도 접어서 넣었다.

더불어 늦은 어머니날일망정 잊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시어머니가 즐기는 야생 꿀 한 병도 준비했다. 선물은 풀러보는 재미인만큼 크래커와 곁들이면 좋을, 뉴욕에서만 구할 수 있는 군것질거리까지 챙겼다.

큰 카드도 준비해서 큼지막한 하트 모양의 수를 놓기 시작했다. 한 땀식 색실로 하트를 만들다 말고 그만 수 놓는것을 포기했다. 우리의 사랑이 느껴지기 앞서서 손끝으로 읽혀지는 카드가 오히려 상실감을 부추기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어느날부터 시아버지는 급격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평소 강골(强骨)이신 터라 일시적인 시력장애이겠거니라고 믿었다. 우리의 염려에 늘 ‘별 것 아니다. 곧, 나아질거다’ 라고 하셔서 대수롭지 않게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듯 했다.

사물이 흐릿한 정도를 넘어서 겹겹이 겹쳐 보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식탁위의 음식도 식별(識別)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직도 정확한 병명이나 원인을 모른 채 혈관계통의 순환장애라는 소견만 들었을 뿐이다. 수술이 대안이 될 수 있다지만 위험도가 높아서 그 연세의 노인에겐 고려해볼 수조차 없다고 했다.

   

▲ 들어가는 입구 쪽의 큰 나무 몇그루만 제외하고 키높이의 나무 가지 대부분도 전지했다.

운전은 물론이고 운동, 독서, TV 시청, 늘상 하던 컴퓨터 작업등 일상적인 리듬이나 생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시아버지는 깊이 낙담하고 있었다. 대신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의 눈이 되어 신문도 대신 읽어 드리고 길 안내잡이가 되기도 하는가 하면 83세의 연세임에도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을 쓰고 보내는 역할까지 도맡게 되었다.

  
▲ 길과 주차장이 연결되는 곳이 군데군데 홈이 파여 헛디뎌서 넘어지지 않도록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다.

방문할 때 마다 우리는 최대한 장애물(障碍物)이 되는 것을 치우기 시작했다. 넘어지거나 해서 생기는 사고나 찰과상을 방지해서 문턱들을 없애고 욕실 구조도 바꾸었다. 정원의 지표면으로 올라온 뿌리들은 잘라내고 뻗은 가지들은 다 쳐 냈다. 또한, 바닥의 모서리가 있고 흔들거리는 벽돌들은 다 걷어내고 새로 깔았다. 마치 걸음을 막 떼기 시작하는 아이를 위해 집안의 온 높고 낮은 장애물을 치우는 부모의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 나무 뿌리가 벽돌을 밀어올려서 발이 걸리곤 했던 뒷 마당의 패티오(patio). 바닥을 다지고 새로 깔았다.

매일 다니던 수영과 헬스대신 시어머니가 이끄는 손을 잡고 안전한 해변가 산책이 유일한 운동이자 외출이 되었다. 무척 자중하셨지만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고 답답한 처지를 낙담(落膽)하여 짜증을 보이는 빈도(頻度)도 눈에 띄게 늘었다.


▲ 두분이 매일 아침 한시간씩 걷는 집 앞의 해변

시력장애가 온 뒤 첫 방문 때 시아버지의 손톱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길고 짧고, 삐죽하고, 모서리지고. 손톱 가장자리엔 생채기도 많이 나 있었다.


▲ 제목 Hand Croquis. 갱지에 연필. 2010. 설명. 손에는 손가락이 있고 그 끝에는 손톱이 있다.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얼마나 많은것을 말해주는지 모델의 손을 보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남편 말로는 아버지가 형제 없이 자라서 뭐든지 독립적으로 혼자 하는 습관이 배여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다 보니 혼자 손톱을 자르다가 난 상처들이라고 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것들을 일일이 챙겨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고 요구하지 않는 이상 먼저 챙기려고 하지도 않는게 습관화 되어 있는 탓에 그런것 같다고 했다.

살갑게 서로를 보듬고 세세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이들을 크면서 늘 봐온 나로서는 북유럽 사고방식의 시부모가 얼른 납득되지 않았지만 문화와 환경의 차이로 살아가는 방법이나 표현방법이 다른 이유로 이해를 하기로 했다.

   

▲ 펠리칸들이 나는 모습을 즐겨 바라보시곤 했는데 어서 시력을 되찾아서 다시 볼 수 있으셨으면….

어느날 남편이 손톱을 다듬어 달라기에 시아버지의 손을 만지기가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아버지, 이 사람이 집안 어른들을 많이 돌봐드려서 아프지 않게 손톱을 잘라 드릴 수 있어요.” 손을 맡겨보시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괜찮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며 거절하셨다. 이쯤되니 남편 또한 아버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더는 제의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나 시댁에 머무는 내내 시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늘 매만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분명 어딘가가 편치 않아서 그럴진대 싶어 “손톱 정리를 잘 하셨네요. 어디 한번 보여 주세요” 라며 손을 보자고 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멋쩍게 손을 내민 시아버지에게 “완벽한데요. 그런데 잠깐만요. 여기가 좀 아플것 같네요.” 라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손톱깎이를 재빠르게 꺼내 거슬리던 부분들을 잘 다듬어 드렸다.

얼떨결에 며느리에게 손을 잡힌 시아버지는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歷歷)했지만 다듬어진 손톱을 만지며 “거기가 계속 거슬렸는데 한결 편하고 좋구나.” 라며  편안해 하셨다. 그 일 이후로 뭐랄까 며느리를 좀 더 편안하고 거리감 없이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여기 좀 봐다오” 라며 묻곤 하시는 것을 볼 때 당신 스스로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고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자연스럽고 스스럼 없어진 모습도 읽혀졌다. 어렵사리 한번 손을 트고나니(?) 뭐랄까 지금은 시아버지의 손을 마음대로 덥석 잡을 수 있는 거침없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아무쪼록, 이 작은 경험을 통해서 좀 더 당면한 상황에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젠가는 시력이 회복되어서 당신 스스로 손톱을 예전처럼 잘 다듬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며느리 개인전때 뉴욕 방문 당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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