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시간표를 찾아 보았다. 올 때는 분명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자주 있었는데 갈 때는 상황이 달랐다. 띄엄띄엄 있는 스케쥴도 황당(荒唐)했지만 버스를 타려면 도시에 있는 온 카지노를 다 훑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분명 왕복표를 샀으니 돌아가는 버스표는 손에 쥐었지만 자리가 확보된 것은 아니니 줄을 서야 했다. 그러나 두 곳의 정류장을 들렀다 가는 버스라 할지라도 첫 정류장에서 만석(滿席)이 되면 버스는 떠나버렸고 줄을 선 사람들은 다음 시간표를 찾아 다른 카지노가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황급히 이동을 해야 했다.
▲ AC를 커버하는 미니 버스. 카지노와 카지노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대부분 이 버스를 이용한다.
헐레벌떡 걸어서 갈 수 있으면 좋지만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는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야 했다. 그곳엘 가면 이미 그곳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또 다시 긴 줄을 서고…. 그래도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휴가가 끝나는 늦은 밤 시간, 돌아갈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결국은 새치기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로 인해서 잦은 말다툼이 일어났다. 힘세고 무식한 놈이 판을 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어이없고 볼썽 사나운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도박장에 계획적으로(!)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없으니 밤인지 낮인지 구별을 할 수 없고 시계 또한 찾기가 어렵다. 몇 시에 들어왔는지 몇 시간째 머물고 있는지 몇시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또한, 화장실을 가기 전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이 어디 한군데 없다.
물론, 아주 없는건 아니다. 있긴 하지만 대부분 벽 장식과 천정 장식을 한 조각 거울들로 오히려 정신을 사납게 하고 미로(迷路)에 빠진 착각을 일으키게 하며 무한대로 뻗어져 있어서 거리 감각마저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인테리어 용 거울들 뒤로는 숨겨진 감시 카메라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하지 아마.
도박장에서 제일 당혹스러운 것은 출입구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길눈이 어두운 나 같은 사람은 내가 어디로 들어왔으며 어디로 나갈 수 있는지 감을 잡기가 여간 헷갈리지 않는다. 수백 수천개의 똑 같은 기계들 일색이어서 혼돈(混沌)의 연속이다. 더러, 길을 잃는 일이 다반사라 일행을 놓칠 때를 대비해서 손 전화기를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길을 잃고 돌고 돌다 보면 다리도 아파오고 짜증도 나는데 앉을 곳은 한군데도 없다. 카지노가 있는 호텔 로비라는 곳에서도 의자를 구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자에 찾아 앉으려면 게임기 앞에 가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게임을 또 하게 되는데 이 또한 의도된 계산이 숨어 있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자주 다니고, 요금도 카지노에서 협찬한 가격으로 승객들은 같은 거리의 다른 곳에 비해 적은 요금으로 탈 수 있어 좋았지만 카지노가 있는 도시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복잡하고, 정류장 찾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많이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굳건한 의지가 아니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들게 계속 헛바퀴 돌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곳이 도박장이 있는 도시의 다른 얼굴이 아닐까?
몇 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버스를 탈 차례를 얻었다. 바로 앞에는 얼추 80세가 넘어 보이는 노인 한분이 한껏 멋을 냈지만 피곤에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내 바로 옆 좌석에서 단돈 1불 75 센트를 집어넣은 사람이 글쎄, 2만불 잭팟이 터진거야. 바로 내 옆자리에서 말야.”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듯한 표정의 그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동생이라고 해도 될만큼 닮아 있었다. 한껏 멋을 내어 부풀린 금발머리, 짙은 화장, 욕망 가득한 눈을 가진 그 노인은 모르긴 몰라도 ‘제발, 나에게도 행운이’ 라는 심정으로 하루 종일 기계와 씨름을 했을게 틀림없다. .
“Why not me? 나라고 잭팟 터지지 말라는 법 있어? 그래서 계속 했지.” 되뇌는 노인은 하루만이 아닌 인생 전부를 저 도박장에 다 쏟아 부은 것은 아닐까.
▲ 카지노 도시라 그런지 건물 외부의 네온 장식도 온통 카드에 나오는 상징들 일색이다.
사람들은 잭팟(Jackpot)을 꿈꾸며 산다. 특히, 미국인들처럼 복권에 열광하며 사는 이들이 또 있을까? 어느날 터지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이 고단한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바꿔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수백만 명이 후회를 하고 한숨 짓고 간 자리에서 어떤 한 사람에게 터지는 수천만 분의 1의 확률에 목을 맬만큼 행운은 가치 있는 것일까?
▲ 1센트 집어넣은 슬롯머신에서 2센트가 나왔으니 100% 수익이다. 액수를 떠나서 작지만 노는 재미를 터득하는 것도 카지노를 즐기는 하나의 요령이 될 것 같다.
오래전 나를 현혹(眩惑)시켰던, 우직하게 생긴 모양새가 정감 마저 느끼게 한 슬롯머신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오래된 기계여서라기 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기계 역할을 더 이상 못하기 때문에 폐기 처분되었으리라. 그리고 새로 나온 기계들을 보면 쉽게 돈을 만지고 싶어 하는만큼 돈도 쉽게 잃도록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다.
손가락 한 개만 까딱하면 눌러지도록 아주 편리하게(?) 설계 되었으며 1센트 짜리 머신도 한번 잘못 누르면 수백 배로 돈이 걸게끔 되어 있어서 1센트 기계라도 수십, 수백 달러 잃기는 단 몇 분이면 족할 정도다.
나처럼 그런 것을 최대한 피해 가려고 애쓰는 사람에겐 단추 누르는 곳 바로 옆에 실수로라도 건드리도록 최대 베팅 단추가 슬며시 붙어 있기도 하다. 잃다 보면 본전 욕심에 열 받게 되고 조금 땄다 싶으면 공돈 버는 맛에 더! 하도록 욕심이 욕심을 자꾸 부르게 되는 것 아닐까.
▲ 단돈 1 센트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니터. 비록 1센트짜리라도 돈 욕심을 내는 순간 아주 무섭도록 빠르게 돈을 잃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슬롯머신.
본전 생각에 그 열배 스무배를 쏟아 붓게 하는 것이 도박의 생리이며 그 장밋빛 환상 같은 꿈을 쫒을수록 자신과 가산을 탕진(蕩盡)하게 되는게 도박의 종착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박장에선 사람들이 문어(文魚)처럼 보일 때도 있다. 넓게 펼친 문어발처럼 여기 저기 게임기에 눈이 가고 몸이 가는 모습이 마치 촉수(觸手)를 붙이려는 것 같다. 그러다 잘못하면 통발에 갇혀 스스로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 카지노에서 누구라도 꿈꾸는 숫자는 777 아닐까? 멀리서부터 잘 보이도록 만들어진 이 숫자가 사람을 현혹시킨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도박의 고수이자 카지노의 VIP고객이 전하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다. 첫째, Enjoy losing your money 카지노는 돈을 벌러 가는 곳이 아닌 즐겁게 잃겠다는 생각으로 갈 것, 둘째, Limit how much you are going to lose 잃어도 좋을 액수를 미리 정해놓고 갈 것. 세째, Stop when you reach your limit 정해진 돈을 다 잃었으면 미련없이 일어설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Don’t go by yourself 절대 혼자 가지 말 것.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잭팟은 무엇이었는지? 안전하고 무탈하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것’ 그것이 우리의 최고의 행운이었다.
Our Jackpot is ‘Return Home Safely’.
▲ 제목/ Figure. 폐지에 색연필/ 2010 설명/ Why me? 난감함 자체의 표정들에서 읽혀지는 메시지. 왜 하필 나야?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