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타고난 ‘아침형’ 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명종(自鳴鐘)이 울려도 쉬이 눈이 떠지지 않는다. 그래서 강구해 낸 방책이 생방송 뉴스가 나오는 채널의 TV를 크게 켜는 일이다 . 바로 잠이 깰 때도 있지만 어느 땐 뉴스를 들으면서 뉴스와 연관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근 반년 전부터 뉴스에서 한가지 단어만 들리면 놀라서 번쩍 깬다. 깊이 잠든 상황이라면 잠결에서 어김없이 흉몽을 꾼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것을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
나를 소스라치게 만드는 단어 ‘베드버그’(Bed Bug).
올들어 8월부터 10월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욕의 아침 생방송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단어가 되었다. 신선하고 상쾌하게 맞아야 할 아침에 ‘베드버그’에 관한 사진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망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3주 전에 TV 아침방송에 여행전문 기자와 앵커우먼이 나누는 좌담에서도 ‘베드버그’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혹시나 독자들은 ‘어떻게 퇴치를 할것인가’를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서 라고 느끼실지 모르겠다. 전혀 아니다.
사회자가 물었다. “지금 이곳 저곳에서 출몰하는 베드버그로 해서 혹, 뉴욕 관광산업 특히, 연말 특수(特需)에 관광업계나 여행업계가 그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요?”
기자가 답하기를 “글쎄요, 아직은 그 정도로 관광산업에 타격(打擊)을 줄 만큼 심각하게 외부에 알려지진 않은 것 같군요. 빈대로 해서 관광객이 감소했다는 어떤 공식적인 통보나 결과를 받은 적이 없어서요.”
▲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2009년도 베드버그 현황
역시 뉴욕이구나 싶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아직 멀었는데도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뉴욕 백화점과 일반 매장에서는 대대적으로 장식을 하고 판촉 작전에 들어간걸 유독 심하게 느끼는데 그 분위기를 탄 것일까?
베드버그가 나타나면 호텔업계나 임대업, 매장 등은 쉬쉬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그런 정보가 새면 엄청난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근래 몇 달 사이에 맨하튼만 해도 링컨 센터, 연방 정부 건물들, 유명 백화점들, 명품 가게들, 부유한 주택과 아파트, 학교, 특급 호텔들, 사무실, 공연장, 항공기, 극장, 병원, 양로원, 유치원… 등등 빈대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출몰했다.
한때 자취를 감취었던 빈대가 21세기에 창궐하는 이유는 강력한 살충제인 DDT 사용제한과 함께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확산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기때문이라고 한다.
2001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단어가 ‘테러’였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테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이중삼중 검문을 하고 이래저래 겁주는 뉴스들이 늘상 등장한다.
나는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베드버그’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무섭게 물린 끔찍한 경험을 해서만이 아니다. 그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해서 그 심각성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
테러는 절대 같은 사람이나 같은 장소를 연속해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버그’ 은 언제 어떻게 또 출몰할 지 모르는 해충이다.
물론, 콜레라나 장티푸스처럼 전염병(傳染病)도 아니고 벌레에 물려서 생명을 위협 받는건 아니지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베드버그이다. 일단 베드버그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 된다. 한두번 약을 쳐서도 죽지 않고 쓰던 물건 몽땅 다 버려도 어디선가 또 나타나고 여간 힘든게 아니다.
▲ 웹사이트에 올라온 빈대에 관련된 사연들
어떤 정신과 의사는 베드버그는 작은 해충에 불과하지만 사람을 따라서 옷이나 생활용품들을 통해서 묻어 옮겨지기 때문에 물질적인 피해보다 ‘대인 기피증’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베드버그가 있다’는게 맞는 말이다. 지역, 동네, 나라, 인종, 빈부, 나이, 성별, 종교 모든 것을 불문한다. 위생적으로 깨끗한 곳에서도 나타나고 관리가 잘 되는 사무실에서도 나타나고 부촌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사무실에서도 빈대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무실 청소를 하고 소독을 하고 난리를 피는 소동이 대서특필 되기도 했다. 그 뒤 클린턴 대통령이 침대를 사무실에 둘 수 없는 ‘500번 째 이유가 바로 빈대 때문’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떠돌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TV에서 빈대로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나오고 끔찍한 피를 빠는순간 몸이 뻘겋게 부풀려지는 빈대가 확대된 사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잔뜩 유발시킨 뒤 나오는 해충 박멸 선전 광고였다. 해충 박멸 직종이 최근 미국 뉴욕 일원에서 가장 유망한 직종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시월 마지막 주 월요일엔 남편이 1시간 늦게 출근했다. 같은 층의 다른 사무실에서 빈대가 발견되는 바람에 전문가가 나와서 조사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전문가가 다름아닌 작은 강아지였다.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롸스코’(Roscoe)라는 이름의 비글종 한 마리가 냄새 맡는 것에 따라 빈대의 유무를 기준한다는게 우습기도 했다.
다행히, 출근한 남편에게서 ‘빈대 없음 확인됨’ 이라는 문자가 왔다. 아,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빈대 탐지견이 왔다 돌아간 후 남편 사무실에서 보내온 문자.'베드버그 없음'을 확인됨
최근 공항마다 테러대비 보안검색(保安檢索)으로 전신을 스캔하는 기계가 설치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전자파가 ‘몸에 해롭네, 아니네’를 가지고 공방이 한참이다.
그런 기계보다 ‘베드버그’ 부터 찾아내 그자리에서 박멸(撲滅)할 수 있는 기계나 좀 제발 빨리 만들었음 좋겠다.
빈대 사건이후 우리 집에 달라진 현상이 하나 생겼다. 남편이 ‘녹두 빈대떡’을 좋아해서 가끔씩 해 먹곤 했는데 ‘이젠 빈대떡을 먹지 않겠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빈대라는 말 때문에~.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빈대떡에 빈대는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다. ‘하고 많은 단어 중에 하필 빈대일게 뭐람~.
▲제목: 악몽이미지 2009. 종이에 크레용 물감. 빈대의 창궐은 이제 악몽정도를 넘어 거의 현대판 재앙으로까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