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상에서 풀방구리 드나들 듯 방문하는 곳이 하나 있다. 미국 사회에서만 30 여 년이 넘는 세월을 산 탓에 어눌한 한국어 표현,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나 맞춤법이 거슬릴 때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칼럼이 있어서이다.
때묻지 않은 삶의 이력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글을 통해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왜곡(歪曲)되지 않은 시각과 이웃과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낀다. 미국 남부의 일상을 정갈하게 담아내며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즐거움이 있어 그 칼럼니스트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최근에 올라온 그이의 제목이 눈에 들어 와 소개한다. ‘한국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바라는 소망’ 속에는 ‘뜨거운 감자’ 와 같은 그 주제에 해당되는 ‘해외입양(海外入養)’ 에 대해 진지한 호소(呼訴)가 묻어나 있었다.
지난 해 러시아에서 테네시 주로 입양 되어 온 7살 된 사내아이가 정서장애와 정신지체를 보인다는 이유로 아이를 혼자 비행기에 태워 러시아에 돌려보내 이른바 파양(罷養)시킨 사건으로 해서 올 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뉴스를 통해 해외입양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지적한 것이다.
뉴스타임스 기사를 빌어 미국에서 입양한 지난 17년간의 통계를 보면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한국이 고아 수출국 4위를 하고 있다면서 경제대국을 향해 가는 한국이 아무쪼록 아이들이 해외에서 이중삼중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고국에서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으면하는 호소를 소망이란 단어로 조용하고 힘있게 피력하고 있었다.
전쟁이나 재난, 기아로 인해서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제 3 세계 아이들이 해외입양이라는 제도로 탈출구를 찾은 것처럼 한국동란 이후 수 많은 전쟁고아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어언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한국의 해외입양은 줄어들고 있지 않음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지금부터 20여 년이 지난 이야기다. 노르웨이 최 북단인 노르드캅(Nordkapp)이라는 곳을 향해 혼자서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이름 없는 작은 시골 역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기차에 오른 한 일행이 있었다.
보는 순간 나도 놀라고 그들도 놀랐다. 9살쯤 보이는 계집아이와 4살쯤 보이는 사내아이를 양 손에 잡고 탄 엄마는 푸른 눈에 노랑 머리를 한 것과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특히 계집아이가 나랑 무척이나 닮아서였다. 순간, 육감적으로 한국에서 온 입양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게 대각선으로 마주하고 있었으며 목적지에 내리기까지 계집아이는 한 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 칠 때마다 조금은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아이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대신, 나를 뚫어지도록 보았다. ‘나랑 너무 똑같이 생겼네요’ ‘머리카락도, 눈도, 피부도 너무 닮았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나는 누구예요?’ ‘왜, 나는 엄마와 조금도 닮지 않았나요?’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나요?’ ‘날 낳은 엄마 아빠는 어디 있나요?’
말로는 다 쏟아낼 수 없는 질문들이 눈 빛 속에 담겨 있었다. 호기심과 당황된 눈빛이 역력한 것으로 미뤄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을 처음 본 것 같았다.
아이의 이상 행동을 눈치 챈 양 엄마는 아이를 잡아채어 반대로 앉혔고 주의를 여러 번 주는 듯 싶었다. 주눅이 들린듯 아이는 그 뒤 몰래 엄마의 눈을 피해 고개를 꺾어 가면서도 계속 훔쳐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플랫폼을 빠져 나가는 순간까지도, 기차가 안 보일 때까지 자꾸만 되돌아 보고 있었다. 오래 전의 기억이건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죄스러움이 뒤범벅이 되었던 그 풍경을 뇌리속에서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엄마가 손이라도 한번 쳐들어 주고 또, 눈인사라도 나눠 주었더라면 용기를 내어 그 자리에 찾아가 인사라도 나눴으련만 경계 어린 시선의 양 엄마를 보니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죄스러웠다.
이 크로키에서 문득, 이십년전 노르웨이 기차안에서 만난 한국 입양아를 향해 흔들던 나의 무력했던 손짓이 떠올려진다. '안녕..잘 가..미안하다..씩씩하게 잘 살아..' 제목: 손짓. 재활용 종이에 싸인펜. 2008
여행을 준비 할 당시 합정동에 살았는데 누군가 ‘공짜로 비행기 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동네에 있는 재단을 통해 입양아를 데리고 타면 비행기 절반 값만 내면 되고 운이 좋아(?) 2명 이상을 데리고 나갈 경우엔 공짜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돈 절약할 욕심에 유혹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첫 비행의 기내에서 한 남학생이 울고 보채는 간난아이 하나를 끌어안고 진땀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마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 남학생 입장이었다면 훗날 유럽에 사는 입양아이 하나를 내 손으로 데려갔다는 자책을 평생 하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아이가 부부 사이에서 적법하게 그리고 축복속에 태어나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너무 많다. 급속한 노령인구(老齡人口) 증가와 저 출산(低出産)으로 해서 심각한 인구감소가 걱정거리라며 등장하는 뉴스를 볼 때 마다 해외입양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는 사랑으로 태어나고 길러지기 앞서 핏줄로 먼저 받아들이고 길러지는 것은 아닐까? 고아가 된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으로 구제하는 차원에서 보내지는 해외입양과 지금의 해외입양을 두고 자칫 경제적인 이유때문으로 볼 지 모르지만 어쩌면 경제와는 무관한, 아니 별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국내입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자원 봉사자를 통해서 국내 입양이 어려운 실태(實態)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무섭도록 매정하다’ 고 표현 할 만큼 우리 정서 밑바닥에는 ‘누구의 핏줄인지 모를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생각과 공개입양은 다들 꺼리기 때문에 국내에 무자녀 가정이 많아도 막상 입양으로 연결되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만났던 병들고 장애가 있는 아이만을 골라 자신의 자녀들과 동등하게 사랑 속에서 키우는 그들은 어떤 이들인가?
‘아이는요,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지요. 우리가 받은 축복과 사랑을 그저 조금 나눠줄 뿐’ 이라고 대답하는 겸손한 그들을 대할 때 무한한 존경심과 더불어 우러러보게 된다. 저들이야 말로 세속의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뭔가가 다른 천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지하철 안에 걸린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입양과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의 다섯 손가락으로 꼭 쥔 어른의 손가락 하나.....
해외입양이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서 사회나 기관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입양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더불어 ‘껴안기’ 해주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길 바란다.
한편,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가 있어 보인다. 미혼모(未婚母)에 대해서 보듬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사회가 그들을 멸시하거나 내치고 있지는 않은지, 청소년에 대한 성의 구조와 역할, 임신예방 등에 관한 포괄적이고 진지한 성 교육과 피임(避姙)에 대한 안내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 건강한 성 담론(性談論)이 어디서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잘못된 성 의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지 등 등 말이다.
특히, 사내아이의 성 교육을 ‘나이 들면 다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로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에서 들어본 성교육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성교육의 비중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크고도 중요한지 듣게 되었을 때 ‘그래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요한 길라잡이 역할을 아들의 성교육은 엄마가 아닌 아빠가 맡아야 되는 일로, 학교에서 전담해서 해 줄 일로 전담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오죽하면 해외 입양을 보낼까 그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다손 치더라도 나라로부터는 외면당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저 출산이니, 인구감소니 떠들기 앞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부터 밖으로 보내지 않고 우리가 지켜내면 안될까? 남부에 사는 그 칼럼니스트의 절절한 소망(所望)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길 바램 하는 마음 나 또한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