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는 이들의 손을 유심히 본적이 있는가? 김장철에 찬물에 배추를 씻느라 언듯한 붉은 손들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김치를 먹으면서 늘 감사했던 것 또한, 그 손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주는 손을 보면 경외심이 든다. 제목/손 크로키 2009 재활용박스 종이에 크레용
‘이 김치 좀 맛 보세요. 이것은 일반적인 배추 김치로 조금 맵고, 여기에 담긴 것은 사과와 샐러리를 넣고 만든 새콤달콤한 물 김치 라고 하는 것이고…… 이것은…..’
미국인들을 향한 김치에 대한 소개가 끝이 없다. 얼핏 봐서는 김치를 파는 시식회(試食會) 풍경을 연상시키지만 이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내 전시회의 리셉션 풍경에 다름 아니다.
전시회 리셉션에서 김치를 내놓았다고? 그렇다. 집에서 담은 새콤달콤한 물김치, 한국에서 가져온 깊은 숙성된 맛을 보이는 김장김치, 하얀 무우 생채, 오이 소박이, 그리고 협찬 받은 샘플 김치 까지 다섯개 정도가 넘는 김치를 선 보였다. 그뿐이랴? 김치 김밥도 내놓았다. 한마디로, 김치로 상을 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림 전시입니까? 김치 전시 입니까? 아, 그림을 팔 생각을 해야지요’ 난 그 말 뜻은 작품을 선보이고 설명하고 손님을 맞는 일로 바쁜 작가가 오히려 김치를 맛 보이고 설명하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서 같은 한국인에 대한 대견함을, 기특함을 그리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을 파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김치라는 이미지를 또, 맛을 파는 것은 영원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김치의 맛에 길들여지면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입 소문이 나서 자연스레 소개되지 않겠는가? 그럼 미국 땅 어느 슈퍼마켓에서도 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 전시를 계기로 더불어 김치를 만들어 소개하는 자리는 그림 이상의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kimchikim, 이번엔 김치를 정말 성공적으로 담은 것 같으니 다시 와서 맛 좀 봐달라’는 데이비드 라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수년 전 내 전시의 리셉션에 와서 김치를 처음 맛보았는데 입맛에 맞는다며 김치를 마치 샐러드 처럼 맨 입으로 몇 접시를 먹어 치워서 주위를 놀래킨 적이 있다. 그 뒤 김치 만드는 법을 물었고 나름대로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첫 작품을 보여주겠다며 그의 작업실로 날 초대했다.
첫 작품이란 바로 ‘김치’였다. 건조한 상태로 손가락 굵기의 이탈리안 멸치(엔초비)가 멀뚱멀뚱 배추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생경한 풍경을 빼면 겉 모양은 분명 김치였다. 그러나 맛은 한마디로 기묘했다. 일단 무지막지 하게 짰다. 김치 담글 때 대부분 염장된 멸치를 쓴다는 말을 해줬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굵은 소금으로 하얗게 옷을 입은 멸치를 통째로 사서 넣어도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배추를 절이는 과정이 생략된 채 멸치를 양껏 넣었는지 배추는 펄펄 살아있고 통 멸치는 겉돌고 있었다. 그래도 한 조각 조차 삼키기 힘든 짠 익지조차 않은 배추를 연거푸 물을 마셔가면서 맛있게 먹어주었고 그 실험정신을 높이 사주었다. 무엇을 더 넣고 무엇을 덜 넣어야 하는지도 말해주면서 조금만 더 시도 해보면 틀림없이 제대로 된 김치를 만들 것 이라고 추켜 세워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들에게 김치를 소개하면서 늘 느끼는 게 있다. 다른 어느 음식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김치는 젓갈, 마늘과 더불어 특유의 발효 냄새가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아예 맛도 보기 전에 외면하려 든다.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그릇에 담아, 어느 음식과 더불어서,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그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고 싶은 욕구를 결정짓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더러, 김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대체적으로 김치와의 첫 대면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첫 입맞춤을 오래 기억하듯이 깔끔하고 맛깔스런 김치와의 첫 만남도 오래간다. 우리는 김치를 알리면서 그냥 염장 발효 시킨 채소로만 소개하지 않고 김치가 우리 한국인의 맛이자 문화를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개인전을 마무리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전시 빈도가 더 많을수록 김치를 더 많이 이 미국 주류사회(主流社會)에 알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작업을 열심히 하는 일이 나로선 애국하는 길 임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