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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쓰밸리 가는길 (下) 죽음의 계곡에서 맞은 9.11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1-09-23 (금) 03:38:12

‘왜 이렇게 고양이가 울어대나?’ 싶은지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붉은색 스웨터를 걸쳐 입은 얼추 육십을 바라보는, 머리빗질을 사흘은 안했음직한 퇴색한 금발의 여인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누가 나왔건. ‘그저 오늘 밤만 잘 수만 있다면’ 하는 심정이었으니까. 한밤중 들이닥친 내 얼굴을 마치 아시안은 처음 보는듯 한참을 바라보더니만 ‘묵을 수 있느냐?’ 물으니 이내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머리를 묶어 올리더니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언제였던가? 스물한 살 즈음이었다. 청량리에서 밤차를 잡아타고 내린 새벽녘 강원도의 어느 종착역에서 밤길을 헤매다 불 꺼진 여인숙 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자다 깬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기 누구왔수?’ 라며 대문을 열어주던 탄광촌의 허름한 여인숙 아주머니를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만난 반가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막 새로 단장을 끝낸 특실이 있는데 추가요금을 얹으면 잘 수 있다며 우릴 안내했다. 하지만 특실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 그곳은 탄광촌의 여인숙 방 이후로 처음 본 너무나 작은 방이었다. 

때가 꼬질꼬질하고 담뱃불 자국이 수없이 난 얇은 이불과 30촉짜리 침침한 전구 하나만 달랑 매달린 탄광촌의 그 방처럼 조잡한 레이스가 장식된 커튼하며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담요가 너무도 닮은 느낌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런 방에 들어가서 잘 일이 없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오히려 아늑함이 느껴지면서 정감마저 느껴졌다.

 

▲ 깊은 밤 데쓰밸리의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편의점 옆 간이 주유기

카드는 안되고 현금만 받는다는 말에도 불평 한마디 안 나왔고 허름한 시설에 비해 가격이 높다 싶어도 감지덕지(感之德之)였다. 숙박계도 써야 하니 사무실로 가자고 했다.  돈 받는 집주인은 따로 있으니 그곳에 가서 계산하자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주인 아저씨가 안채에 있나보다 했는데 아까 그 고양이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고양이는 밤에 그 사무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돈을 아주 좋아하니 숙박요금을 카운터 창가에 놓아 보라’고 했다.

정말 아주 잽싼 동작으로 고양이는 돈을 한 장도 떨어뜨리지 않고 다 낚아챘다. 그러고보니 카운터 바닥이 온통 긇힌 자국들 투성이 인것이 그 고양이의 발톱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모처럼 투숙객을 맞은 주인은 신이 나서 묻지도 않았건만 고양이의 엄지발가락을 들어 보였다. ‘다른 고양이에겐 없는 이 엄지발가락이 우리에게 행운(돈)을 가져다 주는 발’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굿 나잇’ 인사를 날린 뒤 우리도 나가지 않았건만 서둘러 불을 끄고 들어갔다.

조금은 황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잠잘 수 있는 방이 생겨서 감격스러웠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각 이곳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어디서 밤을 보냈을까 싶으니 아찔했다.

방에 꽉 찬 더블 침대 한 개, 작은 테이블과 의자, 삐걱대는 스프링, 푹 꺼진 쿠션, 때가 묻은 담요, 환기되지 않은 오래도록 닫아둔 방에서 나는 습한 기운과 눅눅한 공기…. 여러가지가 심난했지만 죽음처럼 깊은 잠에 이내 빠져 버렸다.

 

근래들어 그렇게 깊고 달콤한 잠을 자본적이 없었을 만큼 자고난 뒷맛이 말끔하고 개운했다. 몇날 며칠 시댁에서의 쉼 없이 한 노동에서 오는 피로감과 장거리 운전 그리고 긴장감이 봄 눈 처럼 녹아 없어진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트럭이 출발하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려 번쩍 잠이 깼다. 바깥으로 나가보니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 평화로운 자연 풍경이 병풍(屛風)처럼 펼쳐져 있었다. 황량함과 척박함은 읽혀졌지만 일출을 맞이하노라니 기분이 벅차기까지 했다.

 

전날 밤 깜깜함 속에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던 어둡던 세상에 있다가 환한 햇살 속에 주변을 보니 건조한 사막 한 가운데쯤으로 읽혀졌다. 달랑 도로변에 붙은 허름한 이 숙소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한 뼘 되는 도마뱀들, 번개처럼 움직이는 야생토끼, 그리고 다람쥐같은 동물들이 전부였던 것 같다.

 

  

언젠가 본 영화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é)’처럼 많은 것들이 닮아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이는 배경하며 주 도로를 따라 달리던 큰 트럭들, 고온의 뜨거운 사막 지역에서만 보이는 듬성듬성 나 있는 가시덤불들. 바그다드 카페에 흐르던 배경음악이 머리에 맴돌면서 한편의 영화 속에 뛰어든 느낌마저 주었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접근 금지’ ‘위험’ 등의 푯말들과 철조망들이었다. 숙소를 제외한 지역에 대대적으로 쳐져 있는 철조망들을 보노라니 우리나라의 어디처럼 낯익은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그 지역을 ‘China Lake’ 라고 부른다고 했다. 중국 호수라는 지명이 왜 뜬금없이 붙여졌는지는 모르나 철조망이 광범위하게 끝도 없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시설, 그것도 비밀군사 작전이나 어떤 모종의 실험을 하는 지역이 아닐까 그렇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가서 커피를 샀다. 아침 먹을거리는 손가락 굵기의 소시지가 6개 들은 통조림 한 개, 우유 한 팩, 시리얼 한 개, 바나나 하나, 비스킷 소량과 가지고 있던 치즈 한 덩어리가 전부였다.

   

격식 없는 초라한 밥상에도 소꿉장난 하듯 재미난 아침을 먹었다.

  

▲ 체크아웃 하면서 바라본 모텔의 주변 풍경 

체크아웃 하면서 보니 우리가 투숙한 뒤로도 예닐곱개 차량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처럼 길을 읽은 유럽 여행객들, 터프한 인상의 모터사이클 족도 보였다. 우리가 들어와 자는 내내 불이 켜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쉽게 띄인 모양이다. 밤새 꾸역꾸역 들어온 투숙객들로 그날 밤 모텔은 만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엄지발 고양이의 벌이가 꽤 짭짤했을게 틀림없다.

 

밥도 먹었고, 휘발유도 넣었고, 길을 잃을 염려(念慮)도 없으니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삭막한 곳이었지만 드문드문 선인장 류의 나무며 식물들도 보였고 띄엄띄엄 앉은 키 낮은 집들도 눈에 들어왔다.

 

대뜸,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느냐?’고 남편이 물었다. 무슨 특별한 날이냐고 되물었더니 ‘911’ 이라고 했다.

‘죽음의 계곡’ 에서 맞는 911은 묘한 느낌이었다. 수 만년의 셀 수 없는 세월을 거슬러 바람과 비 자연이 빚어낸 ‘죽음의 계곡’과 인간이 문명의 힘을 빌어 쌓아 올리고 인간이 파괴함으로서 일어난 ‘죽음의 계곡’을 떠올리려니 만감(萬感)이 교차(交叉)하였다.

 

▲ 'God Bless America' 라는 단어가 시선을 잡아끈다. 오늘은 911. ‘blues’가 느껴지는 쪽빛 하늘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이었다. 서럽도록 시린 느낌마저 들었다.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었으며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아주 오래도록 눈이 짓무르도록 하늘을 응시하였다. 시리도록 깊은 하늘빛 어딘가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그런 빛깔들도 같이 어우러져 보였다. 하늘은 말이 없다.

……

 

▲ 제목 : Multi Figures. 쪽빛하늘이라 해야 할까? 아님 푸른 잉크빛이라고 해야 할까? 종이에 잉크 2011

 

kimchikimn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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