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자고 있는데 아 글쎄 간밤에 쥐가 방에 들어 왔더라.”
-----“쥐가요? 방에? 창문 열어 놓으셨어요?”
“음, 하도 더워서 문을 열어놨더니 그 새 들어온 모양이다.”
----“언제요?”
“그러니까 내가 자다가 깼을때가 하마, 새벽 두시 반 쯤 됐을려나.”
----“에이 그럴리가. 방충망이 있는데 말도 안돼요. 쥐 들어올데가 어디 있다구......”
“내가 아무렴 거짓말을 하겠냐? 애미가 낮에 청소한다고 문을 열어놓고 하더니만 그 사이에 들어온거지.”
----“그런데 쥐를 어디서 보셨어요? 방 구석에서 아니면 침대에서요?”
“아니. 천정에 딱 붙어 있더라니까는~”
----“에이, 아무렴 쥐가 인기척에 도망가지도 않고 천정에 붙어 있다는게 말이 안되죠. 큰 매미가 들어온 것 아닐까요?”
“매미하고 쥐하고 분간을 못하겠냐? 내 손가락 딱 두마디 만한것이 새앙쥐 두마리였다니깐. 게다가 날 빤히 쳐다보기 까지 하더라.......”
----“새앙쥐가 엄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구요?”
“그래. 손가락 두어 마디쯤 되게 작은 놈들인데 글쎄 딱 붙어댕기더라니깐.”
----“어떻게 쥐가 붙어다녀요?”
“그러길래 말이다....... 이른 새벽이라서 자는 애들을 깨울 수도 없고 나도 아주 난감했다.”
----“엊그제 말고도 오늘 아침에도 보셨어요?”
“몰라, 어디로 갔는지. 나갔는지 안보인다. 어디 숨었다가 또 나오겠지.아무래도 안되겠다. 내일 좀 막내더러 잡아달라고 해야지.”
(이쯤되고 보니 빵~ 하니 웃음이 터질 수 밖에. 눈물이 나도록 한참을 웃어제끼다가 어느 한순간 웃음이 싸아~ 가시면서 할 말을 잊었다)
▲ 몇년 사이 당신이 쓰던 많은 물건들을 박물관에 기증도 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나눠주기도 하였다. 박물관에 기증된 엄마의 오래된 쌀 뒤주. 무궁화 꽃이 큼지막하게 핀 정면엔 음각으로 1949년 4월 23일이라는 결혼기념일이 새겨져 있다.
다섯해 전 아버지 돌아가신 이래 외출이 많이 줄어든 엄마는 2년 전부터는 거의 매일 여기저기 아프시다며 온 동네 병원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 다니셨다. 정기적으로 만나던 동창들과의 모임도 줄었고, 매달 막내딸인 내게 보내던 편지도 3년 보내고 끊겨졌으며, 그렇게 즐겨가시던 동네 노래교실도 어느날부터 발을 끊으셨다. 외출이래봤자 가족들과 가는 외식 아니면 매주 일요일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 작년에 한 동창의 병문안을 끝으로 이 모임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갈수록 꼭 필요한 존재가 '말동무'인 친구들이 아닐까! 노인성 우울증의 시작은 외로움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간과해서는 안될것 같다.
내가 서울에 가서 엄마랑 같이 놀아주는 경우 아니고는 엄마는 거의 늘 혼자였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하루 왼종일 말 한마디 나눌 상대 없이 덩그마니 아파트에서 섬처럼 지내시던 엄마는 두 해전 사는것 자체가 괴롭다고 토로하실 정도로 되었고 체중도 7kg이나 급감하였으며 말수도 현격히 줄어드는 변화를 보였다.
▲ 사범학교 때 놓았다는 67년 된 두루미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손 수. 수예 솜씨는 예전부터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얼추 70년이 지나서 복지관에서 하는 솜씨자랑 시간에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종합진찰 결과 ‘노인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이후 정기적인 진찰과 꾸준한 약 복용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작년에 구에서 운영하는 ‘데이 케어 센터(Day Care Center)’에 나가시도록 했다. 만 1년이 넘어서면서 엄마는 평상시의 리듬으로 돌아왔으며 말수도 다시 늘었고, 고음의 웃음소리도 찾았다. 무엇보다도 당신 스스로 자긍심과 자존감을 회복해가고 있음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 데이케어 센터 입구에 붙여진 이 포스터에는 '99세 까지 88하게 살자'는 염원이 담겨있다.
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아 최고의 우등생으로 자리매김하고 주변의 칭송을 받으면서부터는 80중반에서 사범학교 재학 시절의 모범생으로 돌아가신듯 예의 명랑한 모습도 찾았다. 처음엔 하루종일 낯선 곳에서 모르는 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고단해하고 탐탁치 않아 했지만 당신 스스로 일찍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만큼 그 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이쯤되자 엄마의 우울증에 대한 걱정에서 차츰 놓여나면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새앙쥐 이야기를 듣고보니 단잠을 자고 있다가 느닷없이 찬물이 확 끼얹어진 그런 느낌이었다.

▲ 노인이 된다는것은 해가 반짝이는 날보다 비오고 구름낀 날들이 더 많아지는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8월의 폭염이 힘들게 했을까? 어쩌면 ‘더위를 먹은 탓’이려니 여기기로 했다. 한 50년 전 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서 허름한 집에 살야야 했던 시절 ‘쥐들이 들끓었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어서 당시의 고생이 ‘흉몽(凶夢)’으로 재현되면서 현실로 착각한것이 아닐까 싶어 에둘러 더위 탓에 나쁜 꿈을 꾼 것이겠거니 빨리 잊자고 다독여 드렸다.
▲ 데이케어센터를 통해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사람들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일이고 끊임없이 손을 계속 쓰게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다. 신체적인것 뿐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상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누구를 만든 것이냐 여쭈니 “그야, 우리 예쁜 사위지”라고 ㅋㅋ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며칠간 반복되었고 급기야 아들과 며느리에게 ‘쥐를 잡아 달라’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이게 마냥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막상 이야기를 들을땐 손사래까지 쳐가며 웃어제꼈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철렁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쉽사리 ‘치매증상’이라는 말이 나올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 했는데 새앙쥐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 누구하나 예외랄것 없이 침묵속에서 ‘노인성 치매’로 받아 들이고 있었고 나아가 ‘이젠 현실을 직시하자’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치매’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올리는 식구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행여, 엄마 귀에 그런 염려가 들어갈까봐 전전긍긍 하였다. 설령,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해도 그렇게 빨리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일인데 한 술 더 떠서 이젠 엄마의 통장도 정리할 싯점이 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보니 섭섭함을 감출길이 없었다. 대부분의 많은 노인들에게 그렇듯이 엄마에게도 예금 통장은 ‘당신을 지켜주는 힘’이었기에 그리고 은행에 가는 즐거움과 불어나는 저금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을 진즉 알았기에 가장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 평생을 꼬불거린 머리로 살아서 그런지 엄마를 떠올릴때마다 드는 첫 이미지는 파마머리가 아닌가 싶다.
서울 다녀온지 불과 채 두달도 안된 싯점에 엄마는 서너차례 응급실 출입을 했으며 길고 짧은 입퇴원을 반복하였다. 날씨의 변덕처럼 맑음과 흐림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는 것과 같이 인지가 흐린 날도 있었고 또렷한 날도 있었다. 환청(幻聽)으로 새벽녁에 자는 식구를 깨워 현관문을 누가 두드린다며 확인하게도 했으며, 환시(幻視)로 해서 텅 빈 벽을 가리키며 저기 걸린 옷이 누구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어느날은 큰 딸을 보고도 누구냐고 물었고 어느 이른 아침엔 시간 개념이 없이 외출준비를 하고 복지관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니 일련의 사건들로 보건대 충분히 치매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엊저녁 일은 물론이고, 일주일, 한 달 전, 해가 지난 일들까지 시시콜콜 빼먹지 않고 기억해내는 엄마더러 치매라니? 자식들 번호 누구하나 단축키 쓰지 않고 일일이 기억해서 전화를 거는 엄마가 치매라고 단정을 하다니? 숫자개념이나 돈 계산 어느 것 하나 녹슬지 않고 틀림없이 정확하게 계산하는데 치매로 믿으라고? 좋아하는 가요들 가사 빼먹지 않고 칠갑산 부터 내리 몇 곡은 다 기억해서 아직도 부를 수 있는데도?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무려 18명의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도 빠짐없이 기억해내고 은행에 가서 입금까지 해가며 축하선물을 챙겨보내고 있는 엄마를 두고 치매증상을 보인다고? 평소 깔끔하게 목욕도 자주 하시고 옷도 번갈아 갈아입으며 용모에 신경쓰는 엄마인데 한웅큼이나 되는 처방전 약들도 빠짐없이 순서에 맞게 찾아서 복용하는 우리 엄마가 노인성 치매에 걸렸으니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말을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팔십 중반이라고 믿기지 않을정도의 건강한 모습. 사진 찍을때마다 항상 V자 포즈를 잡는 특징이 있다. 아무쪼록 엄마의 삶도 승리의 V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으면.....
그 혼란의 와중(渦中)에서도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기다림’이었다. ‘언제 오냐?’는 말과 ‘빨리 오라’는 말을 절대 잊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너를 보지 않고서는 내가 먼곳으로 떠날 수가 없다’ 라는 말까지 나오고보니 식구들로부터 ‘치매를 부정하는 네 마음은 알겠는데 노인들 치매가 다 그렇게 시작하는것이지. 어떻게 하겠니? 노인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법인데~ 이젠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엄마의 인지(認知)가 그나마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와서 뵙고 가는게 좋을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갈께요! 엄마는 절대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니까 자신감을 가지세요. 아셨죠! 저를 믿으세요!”

▲ 크로키 제목/ A Figure Croquis. 2013 잉크에 펜 설명/모델의 포즈가 마치 어딘가를 급히 가기 위해 황급히 손을 들고 택시를 잡으려는 모양새 같다. 두 달 전 'Wait! Wait a Minute!' 라고 소리치던 내 심정을 이 수묵화 느낌의 크로키를 통해서 전달될 수 있을지........
<中편 계속>
kimchimimnyc@gmail.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