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눈부신 이즈음이지만 아직도 찬바람이 쌩쌩하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펴서 산하가 아롱이 다롱이처럼 보이려면 얼추 한 달은 더 지나야겠지만 3월이 시작되면서 잿빛 맨해튼에는 파스텔 같은 살구색, 연두색, 치자색, 진달래색, 하늘색, 연보라색이 물결친다. 경상도 사투리를 빌어 표현하자면 고운색으로 천지 빛깔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앙증맞고 귀여운 동물의 대명사격인 토끼나 병아리 같은 캐릭터들 일색이다.
일년 365일 중에서 한 동물의 캐릭터가 3주 정도 도심의 번화한 상점가를 독점하고 있기란 드문일이지만 예외가 딱 한번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종교적으로 전혀 무관하거나 도심의 행사에 무심한 이들조차도 ‘토끼(Bunny)와 달걀’ 형상의 상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부활절(Easter)이 가까이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뉴요커들이 겨울 내내 걸친 칙칙하고 무거운 색깔의 외투를 벗고 봄을 닮은 화사한 빛깔로 옷을 갈아입는 등 자연에 앞서 봄을 느끼게 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부활절 하면 형형색색의 삶은 달걀을 떠올렸던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토끼로 상징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뜬금없는 토끼의 등장은 언제부터였을까? 유래(由來)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대략 1600년 경 독일문헌에서 부활절에 토끼를 상징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토끼모양의 빵이나 과자 등을 만들어서 먹거나 거는 장식하는 풍습 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독일에서의 풍습이 미국으로 와서 정착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로 이민자들을 따라 들어와 미국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사람들은 부활절 토끼가 바구니에 달걀을 담아서 착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다닌다는 말을 믿고 있는데 우리네의 달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옥토끼’ 이야기처럼 조금은 허무맹랑하게도 들린다.
사실 토끼의 등장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다산(多産)의 상징이자 번창(繁昌)을 뜻하고 있는 토끼는 ‘부활의 의미’ 와 생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기때문이다. 십간십이지 중의 하나인 토끼는 우리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나 속담속에 많아서 그런지 친근한 동물이기도 하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용궁에 잡혀 가도 토끼는 살 방법이 있다’ 는 말은 곤란한 처지에 몰렸어도 지략으로 위험을 모면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토끼는 굴을 셋 판다’는 말은 위험을 대비해서 안전을 도모하는, 꾀가 있는 동물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호랑이가 떠난 산에서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 는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교만을 빗대고 ‘가는 토끼 잡으려다 잡은 토끼 놓친다’ 처럼 과욕을 부리면 본래 가지고 있는 것마저 놓치게 되니 욕심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성질 급한 토끼가 먼저 죽는다’는 표현도 있을 만큼 토끼의 기질이나 성격을 빗댄 이야기들이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런데, ‘Rabbit’ 대신 ‘바니’ 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물으니 사랑스런 표현의 일환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비유하면 ‘토깽이’ 쯤이 되지 않을까. ‘바니’ 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우리나라 70년대에 쌍둥이 자매가수 ‘바니걸즈’ 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바니 걸’ 하면 두 귀가 쫑긋한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엉덩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에 이따만한 하얀 방울을 붙이고 나오는 성인잡지 속의 육덕진 섹시한 모델들이 떠올려진다. 토끼라는 동물이 귀엽기도 하고 섹시(?)하다는 반영(反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장 한 귀퉁이에 있던 실습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하얀 털에 눈이 빨갛고 긴 귀를 토끼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 토끼를 관찰하는 수업이 그곳에서 더러 있었는데 제사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이 가는 것처럼 수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떻게 한번 더 토끼를 쓰다듬어 볼까 궁리하고 토끼장을 수시로 출입하며 배추 등 잎 채소를 거두어다 먹이는 토끼 당번이 여간 부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정작 토끼와 생활을 해본적도 없고 주변에서 자주 접해본 적이 없다보니 피상적으로 아는 지식이 빨간 눈을 가졌다는 것과 큰 앞니 두개가 있다는 것 그리고 초식동물이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보니 애완동물로 집에서 많이 기르는 동물 중의 하나가 토끼였고 10년 가까이 기르고 있는 친구도 있다보니 토끼가 퍽 실생활에 가깝게 느껴졌다.
어느 주를 막론하고 도심만 벗어나면 맞닥뜨린 게 토끼였다. 애리조나의 건조한 사막지역에서도 메인 주의 추운 들판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 원주민들이 하는 축제인 ‘파우 와우(Pow Wow)’ 행사 중의 하나로 열린 ‘토끼 선발 대회’ 였다. 30명 정도의 토끼와 주인인 꼬마들이 예선을 거치고 최종 심사에 열명 정도가 나왔는데 심사 도중 혹시나 달아날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 감싸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원주민들의 축제 파우 와우 'Pow Wow' 에서 만난 '토끼 심사 대회'에 나와 최종결선에 까지 오른 아이들과 토끼들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본 토끼와는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생김과 크기, 모양, 모질, 털의 색깔과 문양, 귀의 형태 등이 각양각색임을 보면서 사람만큼이나 토끼도 다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뜻밖의 수확은 눈이 전부 빨갛지 않고 검은색도 있고 파란 색 눈을 가진 신비한 ‘벽안(碧眼)’의 토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 'blue eye rabbit ' 파란 눈을 가진 토끼는 빨간 눈을 가진 토끼와 정말 다른 느낌이 난다. 몇백만 분의 1의 확률로 나온다는 파란색 바닷가재 만큼이나 희소한 토끼가 아닐까 싶다.
다양한 토끼들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친숙한 대상은 뭐니뭐니 해도 갈색의 자그마한 체구로 가깝게는 브롱스의 뉴욕 식물원에도 자주 보는 토끼다. 일몰 즈음해서 먹이를 찾아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야생토끼 가족 몇이 살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대책이 없다. 그림이나 만화에서는 늘 착한 역할이어서 너나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자연 학습 체험장’ 에서 만큼은 악역을 담당하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 토끼가 어린 새싹들을 먹기 위해 채마 밭에 몰래 숨어 들어올려고 몸을 바짝 낮춘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봄이나 가을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 한달 동안 온실(溫室)에서 자란 새순들을 밭에 옮겨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새순들을 남김없이 톡톡 따먹고 거의 초토화 시킨 밭을 볼라치면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그런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철망으로 높은 담을 치기도 하고 어느때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토끼를 쫒아가는 모습이 토끼몰이 하는 사냥견 마냥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 아이들 자연 학습장 안에 무단 침입한 토끼 가족 중의 하나. 맞딱드리자 속으로 '너 이녀석 잘 걸렸다' 싶었는데 토끼녀석도 놀란 나머지 도망가지 못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왼쪽) 뉴욕 식물원의 채마밭을 종횡무진 폭주(?) 해서 자원봉사자들을 골탕 먹이기 일쑤인 야생(산) 토끼.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똑딱이 카메라로 토끼 사진 찍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토끼와의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면서 배운 것은 그들이 엄청 빠르다는 것이다. ‘사자도 토끼 사냥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한다’는 말이 있는데 물론 아무리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지만 토끼가 그만큼 빠르기때문에 그런 비유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몸집이 작은 동물이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사자보다 더 한 동물이 와도 토끼사냥은 백날 헛탕치기 일쑤일 테니 말이다.

▲ 뉴욕의 브롱스에 있는 뉴욕 보태니컬 가든의 자연 학습 체험장에서 사는 애완토끼
어찌되었거나 이른 봄 토끼에 대해 사람들이 친근함을 갖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성탄절처럼 부활절에도 착하고 순진한 토끼 얼굴을 하고 ‘토끼 옷을 입힌 쵸콜렛’을 파는 상술을 펴는 상인들에겐 눈살이 찌푸려진다. 부활절이 달디 단 솜과자나, 눈처럼 하얀 머쉬맬로우, 형형색색의 캔디, 토끼모양의 쵸콜릿으로 아이들의 입맛을 길들이려는게 아닐까 경계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 음식을 많이 먹는 미국에서 이스터, 할로윈, 성탄절 즈음엔 캔디와 초콜릿으로 융단폭격을 해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동면(冬眠)하고 있던 벌레들이 움직이고 얼음속의 물고기들이 얼음밑을 다닌다는 입춘(立春), 비가 내리고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물이 생기는 우수(雨水), 개구리가 뛰어나온다는 경칩(驚蟄), 제비가 날아온다는 춘분(春分), 오동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는 청명(淸明), 못자리를 마련하고 농사를 시작하는 곡우(穀雨)가 있어서 봄을 맞는다.
하지만 미국에는 절기 대신 행진이나 행사들을 통해서 실감나게 계절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성 패트릭스 데이와 부활절을 맞으면서 초록의 화사한 봄을 예감하고, 현충일과 독립기념일을 통해서 여름의 더위를 실감하고, 추수감사절과 할로윈 축제를 통해서 가을의 맛을 만끽(滿喫)하며 그리고 성탄절과 전야제를 통해서는 겨울의 멋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나무 상자를 갉아 놓은 어린 토깽이. 토끼가 사랑스럽고 이쁘다는 말은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이스터 바니’ 라는 말 대신 ‘Spring Bunny’ 라고 널리 부르는 이유 역시도 이스터가 봄의 절기에 해당되는 만큼 본격적인 봄맞이 행사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친근한 토끼를 전령사로 등장시킴으로써 부활의 의미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품는 봄을 화사하게 맞고 싶은 바램으로도 보인다.
‘Spring Bunny’를 통해서 봄맞이도 제대로 하고 자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그래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고 배우는 그런 봄이었으면 좋겠다.

▲ 제목/ A Figure Croquis. 종이에 물감 2013. 설명/ 엷은 색색의 배합과 앉아있는 모델의 느낌에서 그리고 부활절 캐릭터 'Easter Bunny'가 연상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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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