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만이 목회가 아니다
최근에 한 대학가에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떴다. 온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 자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마치 한풀이 마당이 되듯이 "안녕치 못하다"는 답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덩달아 한국교회도 안녕치 못한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사회적, 종교적인 면에서 말도 많고 의혹도 많았던 사랑의 교회가 수많은 문제점을 남긴 채 최근에 드디어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사랑의 교회는 그동안 역경과 고난을 이겨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셨다.’로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렸다. 그 영광을 드높이고자 유명 인사들과 세계에서 모인 초청 축하객들의 축사도 그럴 듯했다. 웅장한 성전을 향해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다.’는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과연 이들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분명 솔로몬은 그 시대에 성전건축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 건축으로 인해 백성은 곤고했고 결국 나라는 둘로 쪼개지는 아픈 역사가 시작 되었다. 무리한 성전건축으로 인한 후유증이 결국 파국을 초래했지만, 오늘날 성전건축에 혈안이 된 목사들은 성서의 역사적 사실을 묵인해 버린다.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행 7:47-50)
그동안 교회 건축을 반대해 온 교갱신(사랑의 교회 안수집사회)과 교회개혁연대에서는 건축 반대를 주장했다. 매 주 서초동3번 출구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찬과 반으로 나뉘어져 외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지만, 과연 누가 다윗이고 골리앗인지는 후세에 답이 나올 것이다.

말 잘하는 목사의 특징
오정현 목사는 연기를 잘하는 목사다. 감독, 연출, 작가 역할까지 혼자서 능히 다 감당해 내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이다. 그의 연기력이 하도 탁월해서 당연히 한국교계의 주연급이다. 논문 표절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그는 확신 있게 외쳤다. “논문 표절이 사실일 경우 사임하겠다.”고... 그 후 박사학위 논문표절이 사실로 확인 되었을 때, 그는 강대상에서 울었다. 아주 슬프게 울었다. 결국, 수많은 성도들은 그 눈물에 감동 받아 용서했다. 이렇게 목회자의 눈물은 약효가 있다.
그러나 새 예배당 기도문을 보면 오목사의 귀족목회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 예배당은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들어오는 예배당이 되게...’라고 하는 부분에서 실소가 나왔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나가야 한다.”외치는 소리가 어불성설(語不成說)로 들린다.
아골 골짝은 거대 웅장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구간과 같은 곳이다. 단 한번이라도 마구간 목회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서초동 지역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사랑의 교회’건물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미쳤지, 세상에 무슨 교회건물을 저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는단 말인가. 건물에 눌려 웬만한 사람은 들어가기도 어렵겠구먼.”
드높게 솟아오른 유리벽 건물은 이미 주위 모든 건물들 까지 압도해 버렸다. 근거리에 우뚝 솟아오른 대법원 건물까지 빛이 반사되어 불편을 호소 하는 지경이다. 어찌 이런 건물을 지어놓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망설임 없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하는지, 귀족목회의 절정을 스스로 보여주는 격이다. 진정 오목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을 아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렇게 초대형교회를 세우는 데는 세 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 달변의 막장 설교를 잘해야 한다. 둘째, 감정 폭이 큰 연기를 잘해야 한다. 셋째, 비즈니스(정교유착)를 잘해야 한다.
이것 또한 달란트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달란트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고자 하는 곳에 쓰는 것이 아니다. 달란트는 하늘이 거저주신 것이기에 그냥 주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남기거나 사욕이 들어가면 이것은 달란트가 아니라 탐욕이다.
누군가 ‘하나님이 다하셨다.’는 글 옆에 ‘하나님이 당하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 말이 맞다. 언제 하나님이 ‘내 집이 좁으니 큰 집 지어다오’라고 부탁하였겠는가. 분명 하나님은 제자훈련 시켜서 내 집 지으라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도 인간의 야망에서 나온 헛되고 헛된 일이다. 분명 한국교회가 길을 잘못 가고 있다.

연기 잘하는 목사의 특징
한국교회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목사는 조용기 목사일 것이다. 이렇게 초대형교회를 이루다보니 순복음 공화국을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과 더불어 헌금이 쌓여 문어발식 확장은 끝없이 뻗어갔다. 물질이 쌓이다보니 온 가족은 돈이 되는 곳마다 깊이 손을 뻗쳐 재산 싸움까지 터졌다. 급기야 부전자전으로 여자문제까지 겹쳐 ‘빠리의 나비부인’이 나팔 불며 수필집을 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 누구도 쉽게 살 수가 없다. 독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어느 한 곳에서 블랙홀처럼 흡입해 버리기 때문이다.
조다윗 목사는 급기야 마지막 수단을 택했다. 주일 설교 중 성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설교했다. 대형교회 당회장 목사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설교하면 대부분 모든 죄는 사해진다. 그 용서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 후 그의 모든 죄는 잠시 감추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 법정에서 투쟁하며 불편한 진실게임은 끝이 없다.
드디어 12월 17일 MBC PD수첩에서 조용기 목사 관련 의혹을 방영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듣고 한 배를 타고 가는 선장들이 반대 피켓을 들고 MBC방송 앞에서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미 한배를 타고 항해중이니 중간에서 내릴 수도 없다. 일단 배에 물이 들어오니 급하게 퍼낼 수밖에.
한기총 회장(홍재철 목사)과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기하성여의도 총회가 ‘평화 기도회’를 하고 있다. 평화란, 인권 억압과 핍박이 있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해 얻는 값진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한 ‘평화 기도회’인지 묻고 싶다. 어느 누구도 조목사를 억압하고 핍박한 적이 없기에 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1,200만 성도의 이름으로 맞서겠다.”한다. 한심하다. 지금 개신교 성도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하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뜬구름 잡는 숫자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현재 개신교인들이 저들과 함께 하겠다는 서약도 없었는데 감히 숫자를 앞세워 MBC를 협박하고 있다.
개신교를 비하하는 ‘개독교’라는 비아냥거림이 이유 없이 나올 수가 없다. 빛과 소금의 사역을 떠난 종교는 불이익을 남기는 장사꾼보다 못한 악덕 기업으로 전락한다. 종교의 선과 거룩을 앞세워 선민의 피를 빠는 짓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짓이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리 앞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는 교만일 뿐이다.
하나님은 참 회개하는 자의 진실 된 눈물과 뜨거운 가슴은 받아주실 것이다. 그러나 “죄 없다.”거짓을 연기하는 자의 행위는 외면하신다. 성서에서 답을 찾고 구하라 싶다.
‘죄 많은 다윗이 왜 택함을 받았는지’를......,
분명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은 “선포하라, 치유하라, 사랑하라”이다. 그러나 자칫 성서에서 길을 잃으면 “건축하라, 축적(蓄積)하라, 연기하라”로 변질된다.
요즘 하나님도 안녕치 못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