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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Quentin Kim)의 음악
피아니스트, 작곡가. 쥴리아드 학교 음악예술박사. 1999년 그레이스 웰시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2004년 중앙 음악 콩쿠르 우승(피아노). 2009년 워싱톤 국제 작곡가 콩쿨 장려상 수상. 출시음반 <낭만 담화>, <쏘나타 앨범>. 뉴욕 연주예술가협회(NYCA) 회원.미국에서 15년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다 2011년 부산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피아노 교수로 위촉되어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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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공(公)이 보여준 삶 속의 예술

글쓴이 : 김정권 날짜 : 2013-08-26 (월) 23:16:12

일본 도쿄 도 시부야 구의 시부야 역에 ‘하치(八)공(公)’으로 불리는 충견(忠犬)의 동상이 있다. 여덟팔자 모양으로 앞다리를 늠름하게 벌리고 앉았던 모습을 본따 ‘하치’로 이름 지어졌던 이 개는 그 삶의 모습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후에 존경의 뜻으로 ‘공(公)’의 칭호를 붙여서 부르게 되었고 동상까지 세워지게 된다. 고우야마 세이지로(神山征二

郎) 감독의 1987년 영화 ‘하치 이야기’를 보면 하치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 교수 우에노 교수는 하치를 강아지 시절부터 키우며 정을 쌓아갔다. 하치는 우에노 교수의 사랑을 받으며 매일 시부야 역까지 교수를 배웅하고 교수가 돌아오는 시간에 개찰구 앞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귀가하며 살았다.


 

그러던 1925년 어느날 교수는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영문을 모르는 하치는 매일 시부야 역 앞에서 우에노 교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치는 그 후로도 10년간 매일 시부야 역을 찾아와서 주인을 기다렸는데 아사히 신문에 기사로 소개되어 유명해지고 충견으로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하치가 죽은 것은 1935년이었는데 밖에서 들개처럼 떠돌며 살았기 때문에 노쇠하고 야위고 병약해진 모습이었다. 이후 하치의 삶에 감동받은 일본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모금을 하여 하치의 동상을 시부야 역 앞에 세우게 되고, 하치는 영원히 사람들 마음속에 감동을 주며 남아있게 된다.



 

하치가 사람들을 감동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을 우에노 교수의 입장에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교감을 이루었던 누군가가 내가 떠난 후에도 그 교감을 영원히 지속한다는 것은 바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는 궁극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슈베르트가 그의 작품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듯이, 우에노 교수는 자신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하치의 모습을 통해서 영원히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치의 나머지 10년의 삶은 그 본인이 고통과 처절함을 가지고 한 가지 신념으로 일관되게 살아갔다는 점과 그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 죽기 얼마전의 하치공 모습

동물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얼마 전에 본 이야기가 있었다. 하치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한 할머니가 개 한 마리와 둘이서만 오랫동안 교감(交感)을 이루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에도 그 개가 할머니의 빈집에서 매일 지내며 마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개는 마을로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먹고 그러다가도 밤에는 할머니랑 살았던 집으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이야기가 하치의 상황과 달라지는데, 동네 사람들이 개가 불쌍하다고 신고를 하여서 동물 구조대에서 ‘구조’를 하여 다른 주인에게로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어찌보면 삶과 예술의 갈등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개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은 합리적 사고로 봤을 때는 개를 위험한 상태에 두는 것이기 때문에 ‘개 자신을 위하여’ 안전한 상태로 ‘구조’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판단대로 개를 구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동물 구조대원들이 와서 개를 억지로 그물로 잡고 차에 태워가는 것으로 그 이야기는 끝나는데, 동물보호 협회 관계자가 환하게 웃으며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자’고 개에게 말하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뭔가 처절한 감동이 일반적 흔한 이야기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어떤 것이 개의 입장에서 더 행복한 것인지 어떤 것이 더 개를 배려(配慮)한 것인지에 대한 정답을 내리기는 힘들듯하다. 하지만 그 개의 삶이 예술작품으로 승화(昇華)할 기회를 잃은 것은 사실이며, 예술은 역시 처절함과 잔혹함을 통해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다.



 

하치를 ‘충견’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그에게서 충성의 모습보다는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에게 주인이 아닌 사랑하는 부모같이 행동했고, 하치도 우에노 교수에게 똑같은 애정으로 보답했다. 이들 둘이 보여준 감동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과 개의 관계에서, 진심만으로 심지어 인간 간에도 보기 힘든 절실하고 처절한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하치 이야기’에서의 대사가 떠오른다. 시부야 역전 꼬치구이 가판대를 하고 있는 부부는 긴 세월에 걸친 하치의 기다림의 증인들이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애절해진단 말이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왜 기다리는 거야.” “그래도 하치는 기다리고 싶은 거예요.”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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