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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Quentin Kim)의 음악
피아니스트, 작곡가. 쥴리아드 학교 음악예술박사. 1999년 그레이스 웰시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2004년 중앙 음악 콩쿠르 우승(피아노). 2009년 워싱톤 국제 작곡가 콩쿨 장려상 수상. 출시음반 <낭만 담화>, <쏘나타 앨범>. 뉴욕 연주예술가협회(NYCA) 회원.미국에서 15년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다 2011년 부산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피아노 교수로 위촉되어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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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머니

글쓴이 : 김정권 날짜 : 2013-11-28 (목) 09:41:42



 



올해로 98세를 맞이하신 우리 할머니께서 치매로 누우신지는 벌써 18년이 되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48세의 나이셨다. 내가 미국 유학을 떠난 바로 그 시기이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모든 수발은 어머니와 첫째동생이 맡았다. 그들의 노고를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할머니께서 나이 여든에 처음 쓰러지셔서 병원에 갔을 당시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의 생을 사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의 삶은 흔히 말하는 ‘기적’적인 삶일 것이다. 그 기적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인간이 만든 기적’이란 표현은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기적’의 뒤에는 인간의 진짜 희생이 있었다. 그 희생은 화려하지도 않고 합리성의 시각에서 본다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희생이었나 싶기도 하다. 심지어 그 희생은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신 것은 좋은데, 그 일을 직접 내 손으로 할 만한 용기를 지니지는 못한 못난 손자의 자기푸념이라 생각하니, 부끄럽고 마음이 아프다.



 


 

 

▲ 1976년 필자가 백일이었을때 할머니와 어머니



유학시절 어쩌다 잠깐씩 귀국해서 본 할머니의 모습에서 힘을 얻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는 추억(追憶)이 많다. 배운 것이 없고 일생 고생만 많이 하신 우리 할머니, 6.25전쟁 통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함경도에서 내려와 서울에 정착하셨다. 당신께서 노년에 열심이셨던 곳은 성당이었는데, 그래서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 집을 종종 방문하여 하룻밤 자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 당신 낙이셨다.





우리 어린 삼형제는 할머니가 집에 계신 것이 좋아, 하룻밤 머물겠다고 외출하신 할머니를 따라가 다시 모셔오는 것을 하나의 놀이처럼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 친구 댁에 두 동생과 우르르 몰려가 “할머니 우리 집에 가요”하고 팔을 끌던 광경이 얼마나 할머니께는 폐를 끼치는 행동이었나 싶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그렇게 다시 할머니를 모셔왔을 때 뿌듯함을 느끼고 우애를 다지곤 했다.





피아노 연습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자꾸 피아노 아래서 책을 보곤 했던 어린 내게, 할머니는 연습하라고 항상 채찍질하고 북돋워주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였다. 그런 할머니께서 이제는 말씀도 못하시고 누워서 거의 하루 종일 주무시며 무표정으로 계신다. 하지만 당시 유학중 잠시 방문한 한국에서, 때때로 보이는 할머니 얼굴의 의미 모를 미소가, 작은 손 움직임이, 내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했을 때, 할머니는 나무가 시들어가듯 서서히 몸은 야위고 표정은 더욱 무표정하게 되셨지만 여전히 잘 계셨다. 십수년의 세월동안 어머니와 동생은 할머니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할머니는 집의 방 한 칸의 주인으로써 집의 일부로 잘 모셔지고 있었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는 이제 어찌 보면 가족의 일원이지만 한편으로는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듯한 무형적 존재라고 한다.


 


 

 

▲ 1998년 여름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그의 설명에 의하면, 할머니가 더 이상 의사표시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 조건만을 충족하며 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실체를 지닌 존재처럼 주관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동시에 당신께서 가족의 삶에서 차지하는 시공(時空)을 통해서 가족 속에 상징적으로 계속 그 존재를 알리는 존재라는 말이었다. 이런 인간성 말살의 시대에서 이렇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놀랍다.






하지만 그 희생이란! 과연 그것을 어찌 추측해 볼 수조차 있을까. 어머니의 삶의 후반부는 당신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를 돌보고 가장의 삶을 보좌하고 세 아들을 뒷바라지하였다. 어머니란 이런 존재인가 생각해 보지만 가슴이 아프다. 긴 세월의 희생은 처음엔 하늘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고 나중엔 자기 자신의 심성(心性)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함의 굴레는 인간을 옥죄어 결국 그 선함의 댓가에 벌을 주는 것인가. 하지만 어머니는 삶을 원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들들이 그 복을 대신 받기를 기원하였다.






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한다. 내가 작곡한 선율에서 삶의 아름다움이 녹아있길 염원하고 내 연주에서 그것이 표출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염원이 만약 인간의 슬픔과 희생에서 나온 ‘진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아름다움에만 귀속(歸屬)된다면 그것은 나의 추구가 깊지 못하다는 증거로 결국 나를 도태(淘汰)시킬 것이다. 예술의 길을 간다는 미명하에 어머니와 동생에게 모든 희생을 강요했던 삶을 돌아보면서,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인간 누구에게나 나의 삶을 받쳐주는 희생자가 있다. 누군가는 내가 현재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발판이 되어 나를 받쳐주고 있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으며 친구일 수도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유령처럼 떠도는 인간들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평생에 걸쳐 은혜를 갚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한 진실이다. 내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면 그 과정에서 내 삶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2009년 할머니와 어머니


 



어떻게 그 긴 세월동안 할머니를 돌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어머니가 답하셨다. “삶이 다 그렇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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