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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입사후 신문사 사회부장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편집인(상무)을 역임. 한국신문윤리위원, 언론중재위원,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및 언론위원회 위원장, 한국카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고 숙명여대 홍익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했다. 2007년부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재직중이다. 최근 저서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인 피동형저널리즘을 날카롭게 파헤친<피동형기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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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사내라도..새 생활 정착기

글쓴이 : 김지영 날짜 : 2012-05-17 (목) 06:26:37

나는 1년전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왔다. 다가구주택과 단독주택이 혼재한 동네, 다가구주택중 한 곳인 처가에 입주했다.

이사하고 보니 동네 환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결혼후 평생을 살았던 아파트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선, 주택건물에 상주 경비원이 없었다. 건물 안팎 곳곳에 C.C. TV 카메라와 보안등이 있다지만 밤이면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범죄’ ‘치안’···이런 개념부터 내 머리를 지배했다.

딸아이들이 늦은 밤 귀가할 때면 과연 안전할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택배수령은 어떻게 할지···. 건물 내부는 매일 청소하는 분이 있지만, 골목에 널린 담배꽁초·휴지 등 소소한 쓰레기들은 그냥 보면서 살아야하나.


더 큰 문제. 집 안팎에 손봐야 할 일이라도 생긴다면? 배수관, 전기시설, 보일러 손질 등은 감히 엄두도 못내거니와 간단한 생활시설이나 집기·용품에 고장이라도 나면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평생 그런 일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고, 결국 답답해진 아내가 팔을 걷어 붙이거나 아니면 수리센터에 연락하곤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는 어느새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못박는, ‘일엔 젬병’이 돼 버린걸.

이젠 어떻게 하나. 신체 멀쩡한 ‘주인집 남자’로서 최소한 체면치레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전문가들이 손봐야 할 일은 응당 그들을 부르겠지만 사소한 문제에 일일이 돈을 쓸 수도 없다. 나의 정체는 여지없이 탄로나고 권위는 물론 존재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할 판이다. 동네 환경에 대한 이질감에, 존재론적 고뇌까지 겹치다보니 암담했다.


그렇게 난감한 처지를 곱씹다가 새삼 박경리 선생의 문학에 경탄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시 ‘일 잘하는 사내’ 중)

예전에 이 시를 처음 대했을 때만 해도 나는 혼자 이랬다. “일 잘하는 사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박경리 선생이 저토록 같이 살고 싶다며 노래를 하나···?”

그러나 이제 나는 다시 이렇게 되뇌었다. ‘아, 역시 절창(絶唱)이구나’. 그러면서 시를 재해석했다. ‘떠벌리지도, 잘난척도 하지 않는 사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이런 저런 일꺼리를 솜씨있게 척척 처리해내는 사내. 체격은 건장하고 마음은 너그러운, 그런 사내가 가끔 빙그레 웃기만 한다.

자, 그런데 나는 어떤가. 신문기자랍시고, 또는 신문제작 책임자랍시고 평생 세상 일에 시비를 가리고 말이 많았다. 집안에서는 못하나 제대로 박지 못했고 가족을 편하게 해주지도 못했다. 너그럽지 못했으며, 순리를 따르지도 못했다.’

이렇게 시를 재해석하면서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용기-용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오기-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솟았다. 곧 마음을 정리했다. “일 재주가 없으면 일단 몸으로 부딪쳐보자, 그러다보면 내 몸과 이 동네가 동화하고,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뒤 1년간 이어온 나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 6시 기상, 한강 고수부지까지 왕복 걷기와 근력운동 80분, 돌아와 집주변 골목·공터 쓰레기 줍기, 건물내 꽃 배치 및 관리, 세수하고 식사 후 출근. 그리고 옥상 터밭 가꾸기···

    

▲ 잠원동 오솔길을 따라가면 한강고수부지가 나온다. 


걷기는 비나 눈이 오면 포기하지만, 겨울의 추운 날씨같은 건 상관이 없다. 1주일에 한번쯤은 돌아오는 길에 고속터미널 3층 꽃시장으로 향한다. 꽃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형형색색의 꽃과 향기, 환한 분위기에 아찔해진다. 마치 설산을 헤매다 샹그리라에 떨어진 기분이다.

  

나는 천천히 꽃 사이를 거닐며 감상한다. 모양과 색깔은 달라도 하나같이 내 마음을 뺏는다. 하지만 ‘소유는 하루 한가지’가 원칙이다. 장미·백합·튤립 등··· 아무리 아름다운 꽃(절화)일지라도 2천원~5천원이면 한다발(10송이)이 내것이다.

꽃시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거리. 혹한의 아침, 붉은 장미 또는 샛노란 튤립을 한아름 안고 떠오르는 해를 마주보고 걸을 때 나는 아무도 구속하지 않으며,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평화와 기쁨 뿐이다. 이럴 때 꽃은 의미가 된다.


걷는 길에서는 또 다른 소득이 있다. 서울이라는 24시간 체제의 거대한 엔진이 가장 조용한 시간, 잔잔한 호수같은 새벽길에서는 상념의 그물을 던지기도 좋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가지 이상의 사유(思惟)를 어획한다. 그건 새로운 착상일 때도 있고, 한 구절의 시적 비유일 때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비닐봉지와 길다란 집게를 들고 골목청소를 할 차례. 이 시간이면 매일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이들이 있다. 먼저 우리 건물내 복도를 청소하는 젊은이. “안녕하세요?” 큰 몸집만큼 목소리도 우렁차고 믿음직하다. 사업실패로 모진 어려움을 겪다 새벽 청소 일도 하게 됐다고 들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이는 야쿠르트 수레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다. 그리고 폐지 수집 리어카를 모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인사는 굳은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띄는 정도다.

이럴 때면, 때때로 ‘거대한’ 청소차가 들이닥친다. 우리는 잠시 골목 한켠으로 비켜선다. 연두색 형광 유니폼과 헬멧차림으로 중무장한 환경미화원들은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 봉투들을 순식간에 포획해서는 사라진다. 이들은 마치 골목 쓰레기의 포식자와 같다. ‘포식자’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각자 자기 할 일을 계속 한다. “그들이 포식자라면 담배꽁초·야쿠르트·폐지 등 쪼잔한 것들을 챙기는 우리는 악어새?”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웃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우리는 같은 악어새가 아니다. 나는 잠깐동안, 겉모습뿐인 유사 악어새이지만 청소 젊은이와 야쿠르트 아주머니, 폐지 할아버지는 이 도시의 먹이사슬, 그 끝에서 절박하게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악어새들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 슬그머니 ‘악어새’라는 나 혼자만의 비유도 민망해진다.

권력도 돈도 없는 악어새들은, 그러나 다른 미덕이 많다. 무엇보다 그들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 왜 권력과 돈이 많은 이들은 대체로 교만하고 겸손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이들은 대체로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한지... 그들 ‘악어새’도 권력이나 돈이 많다면, 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교만하긴 마찬가지일까. “가진 것의 크기와 교만·겸손의 함수관계가 이토록 깊구나···”

 


골목 청소를 할 때면 우리건물과 인근 건물에 세든 젊은이들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그들이 꽁초를 버릴 때까지 아무말 없이 가만히 기다린다. 무심코 흡연을 즐기던 젊은이들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게로 꽁초를 줍던 중년사내가 ‘지극히 낮은 자세’로 자신의 꽁초를 기다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소 긴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거나 근처 휴지통을 찾아 버린다.

골목 청소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생태(生態) 하나. 사람들은 쓰레기가 있는 곳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점이다. 꽁초나 휴지 등이 압도적으로 줄어들자 사람들은 꽁초나 쓰레기를 거의 버리지 않았다. 나는, 마치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맹자의 성선설을 확인하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았다. 청소를 마치고 4층의 집으로 올라올 때 나는 각층 복도에 놓아둔 화병이나 화분을 갈거나 물을 준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성탄전야,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내로부터 “건물내 어디서인지 모르겠지만 수돗물이 새서 1층은 온통 물바다”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긴장했다. “비상사태이긴 한데, 나는 무얼 해야하나···”

곧 전문가를 불렀다. 그런데 전문가도 물이 새는 곳을 찾아내느라 건물내 각 방을 다 뒤지면서 이틀을 골몰하는 것이었다. 웬지 나는 조금 안심이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나섰다.

양동이, 쓰레받기, 세수대야, 걸레를 동원해 장모님·아내와 함께 1층 바닥에 고이는 물을 밤새 퍼내고 또 퍼냈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고, 하느님 제가 바칠 수 있는거라곤 그저···기술이 없으니 이 땀방울이나 아픈 허리라도····”

옥상 농사는 뒤늦게 시작한 새 일이다. 나는 이사오기 전부터 장모님이 건물옆의 넓지 않은 터밭에 고추니 오이·호박을 기르는 것을 보아왔던 터였다. 그러다 “농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왔다.

지난해 여름, 아이들이 수박을 먹다 “이것도 심으면 수박이 열리려나?” 하고 뱉어놓은 수박씨들을 옥상으로 갖고 가서는 흙이 담긴 스치로품 상자에 심었다. 그런데 며칠후 짙푸른 수박새싹이 돋아나고 오래지않아 수박열매들이 열린 것이다!! 우리집 식구는 모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수박열매들은 탁구공 크기만큼 커졌을 때 옥상 바닥물에 썩어버렸지만 나는 이때 “옥상 농사를 해야겠구나”하고 결심하게 됐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스치로폼 상자들을 하나둘씩 구해, 흙과 거름을 채우고는 가을철이 되자 쪽파, 부추, 시금치, 배추 같은 것들을 심었다. 처음 해보는 농사였다.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고, 불안한 내 마음은 “과연 제대로 싹이 나와서 자랄까, 뭐, 어디까지나 첫 시험이니까···”하고 미리 실패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위대했다.’ 부추를 제외하고는 그 모든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늦가을 과 겨우내 우리 식탁을 신선하고도 풍성하게 만들었다.

 


올해는 옥상 농사를 더 크게 해서 우리도 먹고 나누어주기도 해야지. 그동안 차근차근 흙과 거름을 담아놓은 스치로폼 상자도 40개가 넘었으니··· 이정도면 옥상 대농? 이번 주말에는 양재동 화훼시장에 나가 채소·꽃의 모종과 씨들을 사와야겠다.

 

* 이 글은 천주교 주교회의 발행, 경향잡지 4월호 게재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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