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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문화방송․경향신문 입사후 신문사 사회부장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편집인(상무)을 역임. 한국신문윤리위원, 언론중재위원,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및 언론위원회 위원장, 한국카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고 숙명여대 홍익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했다. 2007년부터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재직중이다. 최근 저서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인 피동형저널리즘을 날카롭게 파헤친<피동형기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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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휘어 돌아가는 물도리동

해우당일기
글쓴이 : 김지영 날짜 : 2017-07-13 (목) 01:20:29


학가산. 학교에서 해질무렵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눈에 들어왔다. 소백산, 일월산과 함께 북부 경북의 상징적인 산.역사의 고비고비를 넘어오며 많은 사연을 품고있다..jpg

 

고향에 온 뒤 나는 다시 청년이 되었다. 환갑(環甲)도 몇 해 지난 사람이 웬 청년? “턱도 없는 말,하지도 말라는 타박은 당연하겠다. 하지만 난 어엿한 무섬마을 청년회 회원이다.

 

오히려 내 나이면 무섬마을에서는 청년회 회원이 되기에 참으로 맞갖다. 청년회 회원 중에는 20대는 물론, 30·40대도 없다. 심지어 50대 조차 몇 명 되지 않는다. 회원 20(출향한 재외 회원 포함)중 대부분은 60. 이들이 청년회의 주축, 즉 실제적 청년이다.

 

청년회 현 회장님은 64세이며, 규정상 청년회에 가입할 수 있는 상한 연령은 70세나 된다. 정부가 정한 노인 기준, 이른바 지공거사’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노인)의 공식 나이가 만65세이니, 무섬마을의 연령 기준과는 너무나 격차가 크다.

 

하기야 65세부터 노인이라는 기준 자체가 요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이는 30년 전의 기준으로,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진 오늘날은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고들 한다. 가령 50세면 30년 전의 35, 60세면 42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이 이같은 현실을 반영해 2015년에 새로 발표한 생애주기를 보면 0세부터 17세까지는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세대이다.

 

이처럼 진보적인 생애주기도 그러나 앞서가는 무섬마을의 주기에는 못 미친다. 유엔의 청년기가 65세까지이지만 무섬 청년회원 자격은 70세까지이니 말이다.

 

무섬 마을 일각의 전경.jpg



지난해 무섬마을에서는 김씨 문중의 큰 고유제(告由祭) 행사가 있었다. 종택(宗宅)에서 열린 전통방식의 고유제에는 주한 외국대사들을 비롯한 200여명의 손님이 몰렸다. 고유제가 끝나고 점심 순서가 되자 사회를 보던 문중 어른이 마이크로 안내 말씀을 했다. “젊은 사람들은 앉아있지 말고 모두 일어나 빨리 손님들을 대접하라

 

말씀이 끝나자마자 이른바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음식을 나르러 나가는데, 보자 하니 그 모두가 60대였다.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해 350도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육지속의 섬. 50가구가 안되는 이 작은 마을은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 두 성씨만 대대로 살아왔다. 오늘날 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집성촌, 즉 혈족 공동체이다. 이곳 사람들의 하루 생활은 아직도 그 대부분이 이웃 사람들의 하루와 엮여서 돌아간다.

 

이같은 무섬마을에서는 시간도 물길처럼 휘어 돌아간다. 청년들이 전혀 없어 60대가 청년, ‘중년70, 그리고 노년이라면 90대는 돼야 한다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살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을 볼 수 없는 건 비단 무섬 뿐 아니라 우리의 많은 시골마을이 겪고 있는 우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이 국가지정 민속 문화재마을인 무섬의 미래에서도 심대한 걱정꺼리가 될 지는 잘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마을의 강물처럼, 휘어 돌아가는 무섬마을의 시간은 오히려 도시가 잃어버린 좋은 것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노인의 존재감이다.

 

도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노인들이 소외계층 취급을 받고 있다. 쓸모없는 존재, 거추장스러운 존재, 갈수록 불어나는 미래의 부담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부실한 사회복지체제 속에서 그나마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사촌 풍조마저 급격히 쇠퇴한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져 나오고, 노인학대와 고독사도 급증하고 있다. 노동력을 상실한데다 경제력과 건강마저 부실한 노인들은 사회 최하층민이다.

 

은퇴한 중산층 노인들마저 갈 곳이 없어 방황하면서 도시의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도시에서 가끔씩 들리는 어르신이란 존칭은 대개 영업 전략상 호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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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섬 마을에선 아직 노인들의 존엄(尊嚴)이 살아있다. 80세 전후면 어른으로 불리는 그들은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병풍처럼 뒤에서 두르고 있는 달미산의 낙락장송(落落長松)처럼, 또는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나 그 앞의 드넓은 모래밭처럼, 마을의 역사이며 전통 그 자체로 대우를 받는다. 박씨나 김씨나, 바깥어른이거나 안어른이거나 간에.

 

무섬의 어른들은 얼굴 표정이 밝고 여유가 있다. 그리고 대개는 장수를 누린다. 아랫 세대에게는 너그럽지만,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일에는 단호하다.

 

청년인 마을의 60대들은 이런 마을 어른들을 잘 받들고 그 앞에서 고분고분하다. 마치 진짜 20대 청년인 듯이. 그리고 다른 마을의 청년들처럼 대소사 간에 마을 일에는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다. 내 또래의 몇몇은 어떤 때는 스스로 어린이가 된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어른들 앞에서 어리게 행동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리게 된 것 같다는 말이다.

 

고향 마을에 살면서 서울을 오간지 1. 많은 서울 친구들이 훨씬 젊어졌다는 말들을 한다. 그게 덕담만은 아니라면, 나 역시 청년이 되어 어른들 앞에서 어리게 행동한 덕을 본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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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아주경제 711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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