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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첼시? 플러싱에서 만난 작은 기쁨

글쓴이 : 김기화 날짜 : 2011-12-26 (월) 06:57:59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미뤄왔던 뮤지엄 방문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다짐을 한 날이었다. 롱아일랜드 시티에 위치한 MOMA PS1 컨템포러리 뮤지엄 방문을 위해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아침부터 소소한 일들이 생겨나고 점차 일정이 늦춰지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대로 폐관시간 2시간 전에 그 곳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 앞에 도착하였다. 미뤄왔던 계획을 어떻게 해서라도 실행시킬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 또 다시 다음으로 미룰 것인가? 고민이 따랐다. 오랜만에 가는 뮤지엄인만큼 신중한 감상을 하리라 다짐 했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달에 한 번 정도 갈까 말까 하는 집 근처의 갤러리, ‘퀸즈 크로싱 아트’로 향했다.

   


7 트레인의 메인 스트릿 역에 가깝게 위치한 퀸즈 크로싱 아트(Queens Crossing Art)는 중국인과 한인 등 아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이 중점적으로 전시되며, 그 이유에서 이 갤러리가 소호나 첼시 지역에 위치하지 않고 플러싱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큰 길을 따라 촘촘히 들어선 크고 작은 마켓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플러싱의 메인 스트릿이다. 정신 없이 울려대는 자동차의 경적(警笛) 소리와 좁은 보도를 꽉 메운 인파(人波)에 이리저리 휩쓸리다보면, 과연 이런 지역에 예술이 어울리기나 할까?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편견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메인 스트릿 한 복판에 위치한 퀸즈 도서관에는 다양한 주제와 함께 강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공연과 전시회가 넘쳐난다.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보태니컬 가든에서도 지역성을 살린 문화교육을 시행하고 있고 공연 및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재즈 공연, 한국 무용과 발레, 클래식과 국악, 크로스 오버 등 지역 사회 문화 전파를 위한 전시, 공연 문화 공간들이 플러싱 곳곳에 많이 숨어있다.

 

크로싱 아트 갤러리로 들어서자 기분 좋게 맞아 주는 한 남자분이 있었다. 퀸즈 크로싱 아트의 디렉터였다. 내가 첫 번째 작품 앞에 서자 그 디렉터는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세개 이상의 얼굴과 여러 몸이 겹쳐져 한 사람을 이루고 있던 첫 번째 작품을 보며 ‘참 어두워 보인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작품이 좀 무거워 보이지만 재미있지 않아요?’하고 디렉터가 말을 건네왔다. 그 사이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 들었고 나는 조용히 두번째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입구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다. 두 선생님의 인솔하에 15명 남짓 보이는 아이들이 갤러리로 들어왔다. 순간, ‘아, 내가 오늘 날을 잘못 잡았구나!’ 하는 당혹스러운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곧 디렉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뮤지엄과 갤러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요?” 디렉터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아이가 손을 들자 발언권이 주어졌다.

호기심이 일었다. 그 아이가 무슨 대답을 하는지 듣고 싶었지만, 제대로 듣기에는 거리가 가깝지 않았다. 나는 그 무리의 주변으로 다가가서 대화를 듣기로 했다. 이윽고, 디렉터의 대답이 이어졌다. “뮤지엄에 전시된 작품들은 살 수 없지만,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살 수 있어요.” 간단하고도 명료한 대답이었다.

 

▲ 사진 출처 www.crossingart.com


그러나 그날 전시된 작품들은 '큐레이트 뉴욕시티 Curate NYC' 라는 행사의 일부로서 ‘전시를 위한’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온 아이들을 위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흥미로웠다. 한 몸에 여러 사람을 붙여놓은 작품, 대형의 사람 다리 조각품, 유리창에 붙은 파리를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영상물, 울고있는 얼굴을 찍은 사진 등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작품들이었다.

 

▲ 사진 출처 www.crossingart.com


무용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아이들의 반응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잡은 나의 감상모드는 접어두고 아예 갤러리 한 가운데 마련된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큐레이터들의 작품 설명도 듣고, 살아있는 교육현장도 살펴보고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첫번째 작품 앞에서 아이들은 이미 흥분되어 있었다. 아마도 미술시간에 자신들이 그렸던 사람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큐레이터와 선생님은 작품앞에서 설명을 먼저 해 주지 않았다.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보이는가? 왜 이것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이들은 대답을 하기 위해 손을 들기 바빴다. 한 손, 두 손… 들어 올리는 곳에서 들려오는 대답들은 다양했다.

 

시간이 갈수록 작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져 갔다. 또한, 선생님과 큐레이터들의 역할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관찰했다. 최근, 이라 쇼어(Ira Shor)와 파울로 프라리(Paulo Freire)가 쓴 교육학 책을 관심 있게 읽었는데,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학생 중심(Student Centered) 교육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갤러리에서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나 기뻤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 내의 유명한 박물관들을 자주 돌아 다녔다. 그러나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광경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현재는 상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미술과 체육, 음악 교과 과정을 없애려고 학부모까지 나서서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예술교육에 대한 태도는 으레 짐작 가능하다.

 

가장 우려했던 작품 앞에 아이들이 다다랐다. 파란색의 사진. 익명(匿名)의 여인의 울고 있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작품이었다. ‘사진 속 여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든것에 즐거워 할 아이들이 이런 슬픔이라는 감정과 교류할 수 있을까?’ 이미 그 다음에 보여질 작품 앞에서 미리 말할 것을 준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동안 마음 속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터의 말소리에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사진이 파란색이네요. 왜 작가가 파란색을 썼을까요?” 울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큐레이터는 아이들의 대답에 설명을 더했다. 파란색은 차가운 색이며, 또 슬픈 것을 표현 할 때 많이 쓰인다고 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감성(感性)이 풍부하게 묻어나는 그 사진 앞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손을 들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대답을 언급하고 싶다. “저 눈물은 행복한 눈물이에요.” 갤러리 큐레이터는 사진 속의 여인은 슬프기 때문에 울고 있고 그래서 파란색을 썼다라고,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여인의 얼굴에서 ‘행복’을 찾았던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만을 보았던 어른들에게 그 속에 밝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해 준 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알고 나면 단순한 진리가 알기 전에는 발견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 다음 일정으로 인해 갤러리 투어의 마지막 순간을 참관하지는 못 했지만, 무용 교육가로서 예술교육의 희망을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두 명의 중국 선생님과 90 퍼센트의 중국 어린이들 그리고 10퍼센트의 스페인 어린이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어쩌면 자신들의 아름다운 미래까지 상상해 보며 돌아갔을지 모른다.

예술에 값을 정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갤러리 방문을 멀리 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마도 갤러리의 역할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작품들이 예술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갤러리를 통해서 우리의 삶 속으로까지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계획과는 달리 일정이 늦춰져 퀸즈 크로싱 아트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 하다.

 

예술이 옛날에 비해 삶 속에서 많이 부딪히고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기대했던 예술의 보편화와 예술교육에의 발전과 기대는 의외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역으로 뛰었던 무용수가 후배들을 가르치고 제자들을 길러내던 폭 좁은 예술교육에서 벗어나 정말로 배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 사람이 예술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사람이 생각하는 무용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교육하는 것과 무작정 춤부터 가르치는 것은 혹은 그림,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결과를 두고 보았을 때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교육은 선생님이 또는 어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가이드의 역할이 되어 주기 위해 있는가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선생님은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선생님이 보유한 수많은 정보를 아이들의 머릿속에 입력시켜 주는 것을 벗어나, 어떻게 가르쳐야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인가에 대해 더욱 고민해 볼 문제다.


한동신 2011-12-26 (월) 07:15:12
지당하고 지당하신 말씀이 담긴 글입니다.
예, 저도 이제부터는 '그림의 떡'에 연연하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참 지혜로 열심히 사는 사람, 우리는 언제나 김기화선생이 사는 모습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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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범 2011-12-27 (화) 05:05:19
우리 사무실에서 2분 거리에 저런 곳이 있었군요..
퀸즈 클로싱엔 사무실과 소상인 업체들만 있는줄 알았는데..
한 번 가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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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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