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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방해하는 것들

글쓴이 : 김기화 날짜 : 2013-04-12 (금) 10:17:49

  

우리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지며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藝術)을 하고 또 그것을 보아야 할 이유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냉정해진다. 사실,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따져 볼 이유도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술을 하는 아주 중요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백한 이유를 가지지 않고도 즐겁게 예술을 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러 환경적 여건들로 인하여 우리가 열망하는 삶이 억압을 받듯이, 많은 이유들로 인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예술과 함께 하는 인생 최대의 즐거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Photo by Pyeunghun Baik>

 

기준(基準).

 

이 시대의 우리는 생각해야할 기준이 너무나도 많다. 부모님, 형제, 선생님, 사회 등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푯대들은 큰 힘을 가지고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푯대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대학’과 ‘취업’. 그것도 남들에게 인정이 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성공적’인 기준이 맞추어져 있다.

 

성인에게도 마찬가지가 적용된다. 남들에게 인정 받을만한 ‘성공적인 사람’으로 비쳐지길 원한다. 우리는 중학교 때 배웠다. ‘난 사람’과 ‘된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된 사람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다수의 의견들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둘 중 하나가 옳은 것이라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은 ‘된 사람’에 많은 표를 던지고 있으리라 추측해 본다. 그러나 그 교실이라는 작은 울타리 속에서도 쉽게 잊혀지는 것은 ‘된 사람’이며, 사회가 원하는 사람은 ‘된 사람’이 아닌 ‘난 사람’이다.

 


 

<Photo by Pyeunghun Baik>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알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기준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그리고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생각들이 창조적인 사고로 거듭나야 하는 예술계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내가 추는 춤을 보고, 혹은 나의 연주를 듣고 혹시라도 어떤 기준에 맞추어 본적이 있는가? 내 아이의 그림을 보고, 내 아이의 춤을 보고, 혹은 내 아이의 연주를 듣고 어떤 기준에 맞추어 판단해 본 적이 있는가?

 

반면, 나와 내 아이가 다른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을 해 본적 있는가? 분명 전혀 해보지 않은 생각들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고 현명하여 많은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를 앞서가는 외국의 많은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느라 여전히 바빠 보인다. 대한민국 00시/동/읍에 살아가고 있는 ‘나는 왜’ 역사를 만들어가는 리더가 되지 못 할까? 나는 왜, 남을 쫓아가는데에 이렇게도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시간조차 허락 되지 않는 것인가. 사람들이 쳐놓은 ‘기준’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만 주어진 귀중한 재능은 무엇인지,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hoto by Pyeunghun Baik>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서 멀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예술계 안에서 시작된다. 악습(惡習)으로 되풀이 되는 고액의 예술교육비는 예술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레슨을 꼭 받아야 할 어떠한 좋은 근거도 마련해 주지 않는다. ‘과거에 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레슨을 받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가르칩니다.’ 라는 이기적이고 단순한 선생님들의 생각이 한국의 예술 꿈나무들을 예술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왜 예술은 그렇게 많은 레슨비를 주고 받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진정 사회적으로 생각되는 ‘좋은 대학’을 보내주는 것일까? 그 것만이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뛰어난 예술가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일까? 많은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그 방법만이 살길이라 말 할 것이다. 그렇게 훈련 되지 못하면 내 아이가‘수준 미달’의 카테고리에 분류 될 것이라 생각한다.

 


 

<Photo by Pyeunghun Baik>

 

고액레슨 뒤에 숨겨진 어른들의 또 다른 욕심은 고액으로 이미 보장된 ‘인간 복제’에 있다. 뜬금없이 과학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닮고 싶어 하는 욕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많은 인간 복제품을 만들어내기에 정신없는 한국에 비해, 다른 선진국가들은 개개인에 초첨을 맞추고 개인의 역량에 집중을 한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어떻게 다르고, 그 다른 점은 A라는 사람을 어떤면에서 더 돋보이게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A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수많은 칭찬과 격려가 뒤 따른다. 단편적으로 그들이 서로를 전혀 평가하지 않거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지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인식이 더욱 크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더이상 내가 혹은 나의 아이가 사회적으로 유명하신 ‘그’ 선생님을 완벽하게 모방(模倣)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능력과 노력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은, 그래서 그 선생님과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각자가 가진 이름이 고유명사이듯, 내가 타고나고 스스로 훈련 하여 얻어지는 것이 고유한 예술적 가치로 인정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그렇게 원하던 것을 가지고 나면 그 이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나의 것이 남는가 아니면 그 선생님의 명성이 남는가. 그저 고인 물에서 첨벙첨벙 주변만을 적시며 스스로를 끝없이 찬양(讚揚)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Photo by Pyeunghun Baik>

 

어른들은 Idol, 즉 우상을 세워 놓고 아이들이 그 것에 집중하여 달리도록 부추긴다. 옆을 돌아 볼 틈도 없이 정해진 틀에 맞추려 끙끙 대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 무작정 창작력을 요구 받는다. 창작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잘 해내지 못 하면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예술적 재능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어떤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그 길을 뒤 따라 올 사람을 위해 반드시 그 길을 닦아 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는 뒷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면 나의 앞으로의 여정도 보장 할 수 없다. ‘예술을 하면 생활이 힘들다’, ‘예술하는 아이들이 많이 줄었다’, ‘예술을 누가 보느냐’ 걱정과 책망(責望)만 하지 말고, 예술의 다양한 장점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로부터 ‘나(선생님)’를 찾으려 하지 말고, 아이들로부터 그들 나름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그 것을 잘 개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Photo by Pyeunghun Baik>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다. 학교와 선생님의 의미에 많은 의문이 드는 시대이다. 여전히 과거 세대에 머무르며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에 발 맞추어 가지 못하는 이 시대의 예술 선생님들이여, 자기 욕심을 조금만 버리자.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욕심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자.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만 하다가, 또는 누군가의 뒤만 쫓다가 뒤늦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도달하며 세상을 뒤로하는, 비극적이고도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이제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며 선생님의 권위를 거론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진짜 권력은 무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기싸움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학교 내에서 ‘권위(權威)’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잘못되었다. 아무리 거칠고 부족한 학생들도 결국 ‘사람’이다. 학생들의 ‘마음’에 이를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예술도 사람도 조금 더 자유롭지 않을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34:0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서성욱 2013-04-12 (금) 16:04:14
여러 모로 삶과 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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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목 2013-04-13 (토) 06:03:56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그 재능의 창조적인 면을 제대로 볼 줄아는 열린 시각을 가진 스승의 몫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서,  재능은 분명히 타고 났으면서도 여러가지 보편적인 이유로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거든요.  슬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예술가들의 땀과 그 에너지가 지친 현대인들에겐 달콤한 약수가  될 수 있으니, 부단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해 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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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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