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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아의 NY 다이어리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해 올해로 10년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수원 출신으로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더 큰 꿈을 향해 2009년 뉴욕에 와 CF, 실험영화,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출연한 ‘Boundary’가 최고실험영화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안았다. 뉴욕에서의 일상부터 연기활동을 하면서 겪은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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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일본공연의 추억

글쓴이 : 김성아 날짜 : 2011-09-13 (화) 13:31:14


 

타임 스퀘어를 거닐다 “라이온 킹” 포스터를 볼 때면 사노선생님 그리고 일본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공연했던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내 나이 스물 다섯즈음이었다. ‘통일 익스프레스’ 란 작품으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오태영 극작가 선생님의 ‘수레바퀴’ 란 작품이 문예진흥원 지원에 당선이 되어 주연으로 캐스팅되었을때 연세대 출신 김태수연출님(연습때 엄하기로 소문난^^)께 작품속에서 많이 깨져 속앓이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대학로 소극장의 정재진 대표님으로부터 일본 NHK에서 ‘한국 연극의 거리 대학로’란 타이틀로 젊은 남녀 연극배우 2명과 연극과 교수님을 메인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촬영팀이 왔는데 출연했음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대선배님께서 추천해주신거라 얼떨결에 출연하게 되었고 국민가요 ‘아침이슬’을 작사,작곡한 김민기 연출님의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남자 주연배우(이 역할은 영화배우 설경구씨와 조승우씨, 황정민씨가 초연때 멤버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성균관 대학교 공연영상학부의 교수님 이렇게 나를 포함한 2분이 출연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리얼 다큐멘터리였다. 한창 연출선생님께 연습 때 많이 깨져서 한 맺힐 정도로 눈물이 가득 고여있을 때 NHK 촬영팀은 쥐도새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와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것이 아닌가.

‘이거 방송나가서..부모님이 보시면…속상해 하실텐데…’

어느날은 성북동에 혼자 자취하고 있는 집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면서 공연포스터와 선배들의 조언들로 벽을 도배하다싶이 했던 단촐한 내 방 구석구석을 다 찍기도 했다.

“혹시 자연스럽게 엄마랑 통화하실수 있나요? (지금은 기본적인 일본어는 할 수 있지만 그때는 통역관까지 동원했었다.)

“네? …뭐, 어려운거 아니니…걸어볼께요. 통화가 가능하시려나…”

‘엄마? 어…(즉석에서 권유하고 건 상황이라 엄마는 방송촬영중인줄 모르고 받으셨다.) 나…지금 연습하는 공연..주인공이다..근데..어제 그제…연기가 잘 안되서 연출님께 엄청 깨지고…속상해서 혼자 베란다 나가서 울었어…아…아부지 생신인줄도 몰랐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인터뷰를 하는데 갑자기 부모님 생각에 울컥하는걸 참느라 애먹었던 기억이난다. 보충촬영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혼자 연습하는 걸 더 찍고 마지막 날

NHK관계자였던 호리이케씨, 통역관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호리이케씨가 “손에 왜 아무것도 없어요?” 물었다.

“음…반지는 애인이 없어서 없구요, 시계는 공연하면서 포스터 붙이고, 소품이랑 이것저것 챙기려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안샀는데요? ”

내 대답이 재미있으셨던지 씨익 웃으시더니 NHK로고가 새겨진 나이키 ^^;; (그 당시엔 꽤 고가였던 것 같았다.^^;;) 시계를 선물로 주셨다.

 

호리이케씨는 명함을 주시면서 원래 오시기로 했던 사노 료이치란 분이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인데 한국 오기 전날 갑자기 하반신 마비로 장애가 오셔서 올 수 없었다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그분의 부탁을 받고 대신 오셨단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대학로의 닭갈비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함께 하고 NHK 촬영팀은 일본으로 다시 떠났다.

그리고 1년 후, 호리이케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본에서 세계평화를 주제로 한 8개국 참여 일본어 낭독극(朗讀劇)을 하는데 연출은 “라이온킹”으로 유명한 극단 사계에 있는 나카무라씨란 분이 할 것이고, 주연으로 출연을 해줬음 하는 제의였다.

  

이런 날이 올줄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걸까? 그들이 간 일년동안 틈틈히 일어공부를 하면서 마침 일본어능력시험에서 2급레벨의 자격이 주어진 때였다.

설레이는 맘으로 일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셨던 분이 1년전 하반신마비로 쓰러져 한국에 못오셨었던 사노 료이치 선생님이셨다. 휠체어에 의존해 꽃다발을 안고 오신 선생님은 그야말로 신사(紳士)였다.

 

나를 위해 한글이 가득 적혀있는 한국연극 ‘의형제’의 기념셔츠를 입고 일본어로 인사하려는 나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건네시는게 아닌가?

“선생님…어쩌면 한국말을 그렇게 잘하세요?”

“성아씨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장애가 오기전 한국에서 김민기씨의 ‘지하철 1호선’ 이란 연극을 20번도 더 넘게 봤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어학당에서 1년간 참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었어요.”

나중에 선생님께서 일본 아사히 신문기자분과 함께 댁으로 초대를 해주었을 때 더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김치전부터 열무김치에 된장찌개까지, 심지어는 사기그릇까지 모두 한국식으로 그것도 휠체어를 타고 왼쪽 팔만 쓰실 수 있는 불편한 몸으로 손수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걸 모두 선생님이 다 요리한신거에요? ? 한국요리는 언제 다 배우신거에요?”

“한국에 있을때 드라마 ‘대장금’ 에 나온 음식들의 요리전문가 선생님께 궁중음식부터 다양한 한국요리를 전수 받았어요. 내가 몸이 불편해서 자주 못나가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이 오면 오키나와 전통음식으로, 오사카사람이 오면 오사카식으로, 성아씨처럼 한국사람이 오면 한국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내 기쁨입니다.”

내가 한창 엄격했던 나카무라 연출님께 일본식 발음과 어휘, 감정들을 지도 받으며 외국인들과 연습하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일본에서 한국의 전통 가야금, 해금 등의 연주가 있을때면 공연까지 미리 예약하고 보여주곤 하셨다.

“선생님, 어떻게 한국문화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세요? ”

“사실, 아주 오래전에 배우 추상미씨의 아버지 연극배우 추성웅씨가 명동 창고극장에서 초연한 이후로 일본에서 ‘빨간 피터의 고백’ 이란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환경이 아주 많이 열악해서 내가 조명이며, 프로듀서며, 공연장이며 다 알아보고 도왔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선생님은 한국문화를 빛낸 “ 10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라는 책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셨다.

 

“세계평화”를 주제로 8개국이 참여했던 공연팀은 히로시마도 직접 방문해 피폭자(被曝者)들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 때 우리나라도 일제침략을 받아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 많은 죽음과 피해을 입었던 사례를 나카무라 사토미라는 일본 여성작가가 사실적으로 써서 한국인인 나로서는 숨기지 않고 일본관객에게 그대로 전할수 있음에 적잖이 고마웠다.

 

나의 역할은 이 나레이션과 토모야 쓰씨라는 실존 일본 피폭자였다. 토모야쓰씨가 돌아가시기 전 실제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참, 가슴이 아팠다.

딸인 야치오씨가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있던 날 화상을 크게 입어 피부가 다 벗겨지고, 살이 부어올라 물이 너무 먹고 싶다는 딸에게 ‘물을 마시면 죽는다’ 라며 9시간을 자신의 무릎에 않힌채 자신은 그저 죽어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며 딸이 죽은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물이 너무 먹고싶어…” 라는 딸의 목소리가 떠나지 안는다고 한다.

아들 노부마상씨 역시 여동생의 죽음의 충격으로 철도자살을 했다면서 자식들의 죽음이 모두 자기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자신도 죽고 싶다, 히로시마 폭탄이 너무 싫다…는 내용이었다.

피폭을 받아본 적도, 자식을 잃은 부모된 마음을 경험해 본적도 없는 나에게 그것도 외국어로 깊은 감정을 진실되게 표현한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그 당시 한국배우가 나 혼자였기에 무대에서 내 자리를 절대적으로 책임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연습실에서 모니터해가며 연습하다가 날이 밝았다. NHK에서 힘내라고 보내준 로고새가 겨진 쿠키.

토모야쓰씨의 실제 인터뷰영상과 대본을 몇백번 반복해서 보면서 조금씩 한 맺힌 이분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공연으로 남아 절실하게 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연출님과 많은 스탭들의 도움으로 일본관객들에게 토모야쓰씨를 향한 나의 마음이 전해졌고, 공연을 관람했던 많은 일본관객들 또한 피폭자들의 슬픔으로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NHK '백만인의 투표'에서 일본여배우 1위인 109편의 영화를 찍고, 23개의 연기상을 거머쥔 대배우이자 일본의 국민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씨로부터 격려의 메세지도 전해지는 등 내 평생 잊지못할 공연이 되었다.

 

이 공연을 마치고 운좋게 일본 ‘히로시마의 날’ 요시나가 사유리씨가 낭독했던 한 대목을 단독으로 낭독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고, 그 소식을 접한 사노선생님께선 나보다 더 기뻐하시며 나에게 예쁜 유카타를 선물로 주셔서 그것을 입고 도쿄에서 일본어 낭독극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기 한달전 공연팀들과 함께 후지산 정상에도 오르고, 지금의 라면천국 회장님의 추천으로 SCI(국제 봉사단체)와 연계해 외국인 봉사자들과 함께 보름간 도치기켄의 어느 가난한 농부를 위해 농장에서 야채도 심고(심지어는 비오는 날까지 우비를 입고 ^^), 계란도 팔아 주고, 닭장도 청소하는 등 조금은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봉사활동도 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후지산정상을 향해,일본농장서 봉사활동때 돌보았던 병아리들

한국에 돌아와 일본에서의 추억에 한껏 젖어 있을 때 사노선생님의 장인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그 당시 사노선생님은 일본에서 매달 2만부씩 발행되는 NHK의 ‘안녕하십니까?’ 란 책자에서 여전히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일본작가였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들사이에서 이 책이 꽤 인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일본에서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성아씨, 내가 이번에 한국 ‘명동 창고극장’에서의 추억을 성아씨 인터뷰와 함께 이번 달 책자에 소개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극장을 직접 가보는게 좋겠어요. 한국에 나갈 때 성아씨가 가이드 좀 해주실래요?”

‘세상에…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자료가 다 뜰텐데…. 불편하신 몸으로 책에 글 쓰시겠다고 일본서 집접 한국까지 오시겠단 말인가…?

일본의 기자분과 몇몇 선생님 친구분들을 동원해 함께 한국을 방문하신 선생님의 장인정신에 감동한 난 열심히 대학로 명동 창고극장과 함께 근처 맛집들을 가이드 해드렸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김민기 연출선생님을 찾아뵙고 20번도 넘게 보셨다는 대학로에서 연극 ‘지하철 1호선’ 을 다시 관람하셨고, 관광하는 동안 드라마 ‘대장금’ 속 궁중음식들의 주인공이셨던 그 전문가 요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른 모든 일정을 취소하시고 장례식장까지 참석하셨다.

 

내가 먼저 연락드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나에게 먼저 이메일로 또는 해마다 국제엽서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내주셨던 사노선생님…. 이번엔 내가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편지를 드렸는데 처음으로 답장이 없으셨다. 걱정된 나머지 전화를 드렸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있는 거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에 앞장서시는 존경하는 사노선생님!
저에게 연락 안주셔도 괜찮으니깐요, 어디 계시든지..꼭…건강하셔야 해요…!


한동신 2011-09-13 (화) 19:03:53
언제나 밝은 미소로 꿋꿋하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김성아선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김성아선생을 통해 실감합니다.
자신의 길도 충실하게 걸으며, 그리고 남을 위해서도 한결같이 열린 마음으로 사는 우리 김성아선생의 앞 길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함께 기도합니다.
 + God bless you!  Love, Dong-Sin Ver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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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훈 2011-09-17 (토) 02:30:41
멋진 성아씨...외면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내면의 세계는 더 아름다운 여배우...
거기에 봉사활동까지...늘 지켜보고 있답니다.
원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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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국 2011-11-08 (화) 00:17:59
윗집에 새로 이사 온 황선국입니다. 그냥 필진을 다 둘러볼 순 없고 해서, 아랫집과 윗집만이라도 떡을 돌리는 심정으로 들렀습니다. 평안하시길,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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