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를 사용하면 독도와 동해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뉴욕의 재야사학자 폴 김(65 김태영) 박사가 일제 잔재(殘滓)를 청산(淸算)하는 가장 근본적인 일은 국호를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폴 김 박사는 삼일절 아침 인터뷰에서 "한국 국호의 시원은 900년간 아시아 대륙을 지배한 '가우리'에서 비롯됐다. 가우리는 소리글로 배달국(BC3898)때 만들어진 뜻글자인 한자로 가(高)우(句)리(麗) 즉, 高句麗(고구려)가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우리는 중세 유럽의 각종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초의 한국 국호의 라틴어(로마어) 표기는 1255년 프랑스의 선교사 뤼브뤼키가 몽골의 칸(왕) 즉위식에 참석하고 루이 9세에게 바친 보고서에 "지나(중국)의 동쪽에 Caule(가우리)라는 나라가 있다"고 나옵니다.
1255년 당시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 시대로 뤼브뤼키는 중국인들이 우리를 Caule(가우리)로 칭하는 것을 듣고 이렇게 표기한 것입니다.
한편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원나라에서 17년간 머물다 1292년에 고향에 돌아와 출간한 '동방견문록'에도 우리나라는 Cauly(가우리)로 표기됐습니다.
이 Caule(Cauly)가 Corea의 시발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시리즈 1회에서도 소개해드렸습니다만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꼬레아, 코리아'의 저자 오인동 박사는 "라틴어에서는 고유명사에 접미사로 'a' 또는 'ia'가 붙으면 그 땅(land), 나라(nation) 또는 지역(region)을 의미한다. 고려가 하나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서양인들이 Core에 a를 붙여 Corea로 지칭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국호가 Corea(혹은 Coree)로 정착된 기록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1296년 이탈리아와 1513년 포르투갈은 물론, 1606년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 소년의 이름 Antonio Corea를 비롯해 1594년 네덜란드인 빼뜨로 프란치오의 세계지도, 1595년 포르투갈인 아놀드 랑글렌의 지도, 1705년 프랑스인 기욤드릴의 지도, 1720년 독일인 요한 호만의 세계지도, 1851년 영국인 죤 탤리스의 동아시아 지도 등이 모두 Corea 혹은 Coree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1876년 2월 27일 일제의 무력시위(武力示威)에 의해 강압으로 체결된 조일수호조약(강화조약) 후 한국(대한제국,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우리의 국호인 Corea를 Korea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김 박사는 "영국 출신의 친일 외교관 윌리암 조지 아스톤이 1878년 이후 일제의 날조 정책에 발 벗고 나섰고 남북 역사학자들에 주장에 의하면, 친일파로 알려진 미국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코리안 리포지터리' 1897년 12월호에 K는 읽을 때 '기억(Ki-ok)'으로 발음하는데 C는 '시억(Ci-oc)'으로 옮겨져 혼동(混同)하게 될 것이라며 C보다 K를 쓰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폈다"고 전했습니다.
일제가 한국의 국호를 C에서 K로 날조(捏造)한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국제 사회에서 라틴어 알파벳 순서로 Japan의 J가 Corea의 C보다 뒷 서열이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인 Corea가 앞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910년 8월22일 한일합방후 일제는 일사불란하게 Corea 대신 Korea로 사용합니다. 이와 함께 한국해(Sea of Cor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고지도들은 오래된 것일수록 '한국해' 표기가 많았고 Sea of Corea, 혹은 Gulf of Corea로 표기된 지도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일본해 논리의 보완을 위해 독도를 탈취하는 시나리오에 들어갑니다. 시마네현 어부 나까이 요사브로(中井養三郎)을 앞잡이로 내세워 연극을 시작한 것이지요. "1904년 9월29일 나까이 요사브로가 일본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아 독도를 시마네현에 소속시켜 일본의 영토로 선점 편입했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은 엉터리 연극을 합리화하기 위해 1905년 1월28일 일본내각이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란 명칭으로 바꿔 시마네현 관할로 지정 의결하고,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공포하여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해방 후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즉시 바로잡지 못한 결과 독도와 동쪽의 바다가 일본 것이라는 억지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일본인들은 말속에 신령한 힘이 있어 말한대로 이뤄진다는 '언령(言靈)'의 사상(思想)을 굳게 믿는 민족입니다. 그런 사상으로 무장한 일본인들이기에 다케시마와 일본해라고 집요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폴 김 박사는 지난 2012년 출간한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에서도 Corea 국호회복의 당위성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594쪽의 동이배달한민족사(소호출판사)는 그가 반평생을 걸쳐 연구하고 찾은 사서와 기록, 자료, 지도를 토대로 엮었습니다. 참고자료 목록만 한중일 역사서가 131권, 영어 등 기타외국 서적이 114권이나 됩니다.
김 박사는 "이 책은 현존하는 모든 역사자료들을 토대로 했고 지리지명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일본이 왜곡 날조 말살한 식민사학의 노예가 된 강단사학이 해방 70년이 지나도록 바른 민족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뜻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야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 박사는 "삼일절을 맞아 맞아 일제가 날조, 왜곡, 조작한 모든 역사, 정치, 제도, 언어, 문화, 생활 습관, 풍습의 잔재를 제자리로 돌리는 민족적인 운동이 전개되야 한다. 그 첫번째가 바로 한국의 로마자 국호 Korea를 Corea 되돌리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제가 모욕적인 뜻으로 부르던 '국민학교'도 '초등학교'로 슬기롭게 바꾸지 않았나. 1250년대부터 세계인들이 부르던 우리의 국호 Corea로 환원시키고, 동해(East Sea)도 한국해(Sea of Corea)로 부르자. 독도는 한국해(Sea of Corea) 안에 있는 우리의 고유한 영토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