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찾는 곳은 두 개가 있었지만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늘 많은 승객들로 정신없는 공항만 다니다 한가로운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그런데 승객수에 비해 짐이 훨씬 많았다. 승객은 적지만, 부치는 화물 짐들이 많은 것에 사람은 못가도 물건이라도 부치는가 싶어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짐 찾는 곳 한쪽 벽에 초대형 세계 지도 장식물이 붙어 있는데 뉴욕 등 주요 도시에 아날로그 시계 형태로 시간을 안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시아에선 평양외에 싱가포르가 표시됐는데 원래 그랬는지, 지난 6월 싱가포르 회담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첫 번째 인증샷이었다. 공항내 부대시설은 원칙적으로 촬영이 금지됐지만 가벼운 기념사진 정도는 허용하는 융통성이 있었다.
짐을 찾고나서 세관 통관에 들어갔다. 사전에 통관서류에 카메라 노트북 등의 숫자와 소지한 현금을 기재하도록 했고 책과 같은 출판물과 갖고 온 카메라나 휴대폰 등에 문제가 되는 사진들이 있는지도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철저히 검사하는 것은 아니었고 케이스바이케이스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입국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에 나가니 7박8일의 방북기간을 함께 할 ‘안내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북에서 공식 호칭은 ‘안내’다.) 50대 김선생이었다. 그는 25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현역기자가 포함된 우리 일행을 누가 안내하느냐가 쉽지 않은 문제였던 모양이다.
첫 만남부터 숙소문제를 비롯하여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었다. 그의 불끈 기질과 나의 기자 근성 때문에 몇차례의 긴장(?)도 조성됐지만 헤어질때는 포옹을 하며 아쉬움을 달랠만큼 정도 든게 사실이다.
북에 가면 인원수에 맞는 차량과 함께 기본적으로 ‘안내’와 운전사가 한명씩 나온다. 달랑 네사람이니 미니밴 정도면 충분했지만 넉넉하게 15인승 미니버스를 배차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북에선 전세차량(미니버스이하) 운행비로 평양시에선 하루 25달러, 시외로 갈때는 km당 1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시외로 갈때는 금액이 꽤 나오지만 일행이 나눠내면 되니 큰 부담은 아니다.
7박8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내겐 알토란 같은 시간이었다. 자는 시간빼고는 보고 듣는 매 순간이 취재였기때문이다. 직업이 각각인 일행은 감사하게도 기자인 나를 배려(配慮)해 전적으로 일정을 맞춰 주었다. 덕분에 사전에 준비한 일정을 30% 정도 변경해 남북연석회의의 역사가 담긴 쑥섬의 과학기술전당 등 내가 원하는 곳들을 갈 수 있었다.
향산군에 있는 묘향산을 선택한 것도 잘 한 일이었다. 덕분에 청천강의 계단식 발전소를 지나고 자강도 향산군의 전원 풍경에 더하여 묘향산 계곡에서 잊지 못할 추억까지 남길 수 있었다.
북한을 다녀온 후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발길 닿는 하나하나가 모두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지만 두 개만 꼽는다면 개성의 박연폭포와 판문각을 들고 싶다.
박연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3대 명폭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보니 왜 ‘송도삼절(松都三絶)’의 명성을 자랑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높이(37m)에 비해 협소한 너비(1.5m)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3겹에서 5겹으로 흩어져 각각의 다른 속도로 떨어지는 장면은 가히 예술이었다. 황진이(黃眞伊)가 남긴 싯구가 용바위에 새겨지는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한결같이 비경에 넋을 잃을만 했다.
(4편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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