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종로 한복판을 줄지어 가던 장갑차와 완전무장 군인들. 시민들 앞에서 무력시위(武力示威)라도 하듯 이동하던 그들의 목적지가 전방이 아니라 저 남녘땅 광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뒤의 일이었습니다.
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서울의 봄’은 끝이 났습니다. 전두환신군부는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12.12사태로 군부를 장악한 그들이었지만 꼭두각시 대통령권한대행을 밀어내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지요.
반란을 진압하는 ‘애국군인’이 되야 했습니다. 광주는 모반의 거점으로 낙점됐습니다. 5월 18일 7공수여단 병력이 전남대에 진입, 학생들의 출입을 막으며 대치상황이 조성됐고 공수부대원들은 쇠심이 박힌 곤봉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진압으로 폭력의 전주곡(前奏曲)을 울렸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노인과 여성, 심지어 장애인에 무차별 구타를 가하자 시민들은 “너희가 국민의 군대냐?”고 분노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은 소요사태 진압을 핑계로 도심까지 휘저으며 학생, 시민들을 체포하고 살인적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의 잔혹함에 광주시민들은 분노했지요. 시민들의 무장폭동을 유도한 것입니다. 광주를 완전히 봉쇄해 놓고 불순세력에 의해 점거된 상황을 연출해 살인진압극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www.en.wikipedia.org
80년 5월 대한민국 군대는 죽었습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들을 학살하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긴 것입니다. 5.18 광주민주항쟁 33주년을 맞은 지금 광주항쟁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어이없는 모략극이 일부 네티즌들과 미디어에 의해 퍼져가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두손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지,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 사실을 조작하려들다니요. 차라리 무자비한 공수부대원이 위장한 북한특수부대원이었다고 주장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80년 봄 민주화와 전두환신구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학가 시위에선 맨 마지막에 외치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오판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위사태로 인한 남한의 혼란을 북한이 악용할 것을 우려한 구호였습니다.
심지어 모 대학에서는 ‘쳐부수자 공산당’ 등의 관제 구호까지 외치고 내려오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어떡하든 시위사태를 북한과 결부지으려는 전두환 신군부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있었기때문입니다.
이미 80년 2월부터 군부대에서는 충정훈련이라는 가혹한 데모진압훈련을 계속하며 시기를 엿봤고 언론과 정보기관은 전두환의 수하에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이 제약을 받는 준계엄상황에서 북한이 들어와 장난질을 친다구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럴만한 쥐꼬랑지만한 낌새라도 있었다면 신군부가 얼싸 좋다며 ‘북풍한설’을 떠들어대지 않았겠습니까.
오월의 광주가 있었기에 6.29선언도 나올 수 있었고 직선제 개헌과 완전한 민주주의 회복도 가능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80년 광주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익명의 그늘에서 거짓을 퍼뜨리며 증오와 대립을 부추기는 ‘일베’ 따위의 극우보수사이트의 방종조차 광주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박근혜정부 들어 5.18기념식에서 굳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대신 합창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대놓고 뺄 수는 없지만 거부감은 확실히 표명한 셈입니다.
5.18 광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바로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다름아닌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그런 신성한 노래가 이명박정권때부터 조금씩 배제되더니 올해는 국가보훈처가 새로운 기념곡을 만들겠다고 해서 큰 반발이 초래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해봐야 진정성이 의심될수밖에 없습니다. 보훈처의 뜻이 대통령의 심중 아니던가요? 말로는 국민통합이지만 걸음은 국민분열의 행보입니다. 안그래도 요즘 국민과 해외동포들은 고개를 못들 지경입니다. 새누리당조차 반대한 인물을 발탁하는 ‘오기인사’가 청와대대변인의 성추행이라는 건국이래 최악의 국격 훼손(毁損)을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강건너 불보듯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니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기나 하는건지 정말 한길 사람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박정희는 4.19를 의거로 칭하고 5.16을 혁명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4.19를 혁명이요, 5.16을 쿠데타로 정의합니다. 12.12와 5.17 반란의 수괴(首魁) 전두환과 노태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들이 재창출한 정권에 의해 법적 심판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초법적 권력자도 후세 사가들의 평가를 앞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광주의 진실에 대한 터무니없는 날조가 왜 박근혜정부에 들어 준동하는 것일까요. 희대의 성추문은 단지 개인의 실수에 불과한 것일까요. 박근혜정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냉정히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7:5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