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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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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日人위장 이토사살?" NYT동영상삽화<안중근순국104주기>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4-03-11 (화) 12:17:09


 

“저격장면 촬영 동영상 재판 활용”..1910년 NYT 특집 보도


 


 

안중근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에서 사살할 당시 일본인으로 위장 잠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저격 순간을 촬영한 동영상 자료가 안중근 의사의 재판에 채택된 사실이 당시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뉴욕타임스는 1910년 8월 14일자에 깜짝놀랄 특집기사를 실었다. ‘스릴넘치는 순간을 포착한 희귀한 사진들(Unusal Snapshots Taken at Thrilling Moments)’의 제목으로 한 면 전체를 채운 것이었다.


 

 


 

프랑스잠수함 조난, 러시아광산 폭발 등 20세기초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포착한 것으로 대한의군 안중근 참모중장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순간 등 8대 사건이 사진과 함께 게재됐다. 그중에서도 신문의 정중앙에 위치해 ‘세기의 사건’으로 대접받은 안중근의사의 저격 순간은 유일하게 삽화로 소개됐다.


 


 

그런데 이 삽화엔 특이한 것이 두가지 있었다. 이토를 사살하는 안중근 의사의 복장이 일본 기모노 차림이었고 이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람이 존재했기때문이다. 기사내용을 보지 않는다면 영화 촬영장을 묘사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삽화 설명문에 ‘이토백작을 저격하는 장면은 활동사진(moving picture)으로 촬영됐고 재판에서 상영된 후 일본정부가 압수했다’고 표기했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와 샌프란시스코 콜, 로스앤젤레스헤럴드 등 미국의 주요 미디어들은 1909년 12월 9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발 기사로 일제히 동영상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늘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입항한 일본의 증기여객선 가가마루호가 가져온 소식에 따르면 하얼빈에서 이토백작이 저격될 때 러시아 촬영기사가 저격순간을 촬영했다”면서 “이 동영상은 한국인 저격자의 재판때 활용된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일본관리들은 비극의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500피트(약 10분 분량)의 동영상 필름을 입수, 재판때 활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또다른 필름 한세트도 일본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덧붙여 촬영된 필름이 두세트임을 시사했다.


 


 

이 동영상은 이듬해 2월 일본에서 일반에 공개 상영됐고 이후 미국에서도 상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12월 25일 미니애폴리스의 ‘더 벨맨’ 지는 “사망한 이토 대신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백작이 한국 통감으로 임명됐다”면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로 권력을 번갈아 행사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촬영기사가 촬영한 이토의 피격장면이 내년 재판때 활용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동영상 저격 등 모든 장면 촬영”


 


 

뉴욕타임스는 1910년 8월 14일 특집기사에서 “이토가 코콥포프를 만날 때 이례적으로 동영상 촬영이 된 것은 유럽의 영화제작자 한 사람이 촬영기사를 현지에 보냈기때문”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필름은 빠르게 돌아가며 열차에서 내린 이토 일행이 플랫폼을 건너 코콥초프 장관을 향해가는 장면을 담았다. 그때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군중속에서 한 한국인이 나와 리볼버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세발이 이토에게 명중했고 나머지 세발은 비서 등 수행원들이 맞았다. 활동사진은 계속 돌아갔고 모든 장면들이 촬영됐다. 군중들이 공포에 빠진 장면들이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이토 백작의 저격에 관한 필름 두 개가 미국에 도착했지만 널리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동영상으로 우연히 촬영된 필름은 정말 가치있는 실제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동영상의 첫 번째 필름은 카메라속의 저격자를 조사하는 과정을 담았지만 부서졌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러시아 촬영기사가 이토 도착직전부터 저격 순간, 안중근 의사 등이 체포되고 현장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호송되기까지의 전 장면이 촬영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날 게재된 애니메이션은 동영상을 확인하고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저격상황의 그림은 이토의 옷차림과 수행원의 위치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모노 차림의 일본여성 두명이 환영의 인사를 하는듯한 포즈도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안중근 의사의 일본옷차림이다. 이는 현장의 삼엄한 경비를 고려해 일본인으로 위장했을 개연성을 말해준다. 뉴욕타임스가 저격 직후 송고한 기사에 따르면 플랫폼엔 이토를 환영하려는 일본인들이 운집했다고 돼 있다. 만일 안중근의사가 현재 남아있는 자료사진처럼 허름한 중국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면 러시아 경찰이 수상쩍게 봤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의 삽화자료를 처음 발굴한 재미언론인 문기성 씨는 “뉴욕타임스가 동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삽화를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릴 수가 없다. 당시 장면들은 사진 촬영된 것도 없고 우연히 찍힌 이 동영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일본인 위장이 사실이라면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지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안중근의사 저격동영상 1910년 미국서도 상영


 


 

역사에 남을 세기의 동영상은 그러나 이후 종적을 감췄고 세인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난 1995년 일본 NHK방송이 방영한 다큐물에서 안중근 저격 동영상의 일부가 방영됐다.


 


 

이토가 타고온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과 이토 일행이 환영객의 영접속에 플랫폼에서 걸어오는 장면, 안중근 의사 등이 포박돼 호송되는 흐릿한 장면 등 30초 분량이었다. 그러나 저격 순간이 촬영된 가장 중요한 장면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KBS 역사스페셜팀은 동영상 원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NHK 다큐물이 1941년 아사히신문이 제작한 ‘약진의 흔적’이라는 영화필름을 활용한 것임을 알게 됐다.


 

 

 

<이하 사진 KBS 역사스페셜>


 

동영상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저격 일주일만인 1909년 11월 3일 경성신문의 보도였고 일본정부가 동영상을 현재 가치로 2억원에 해당되는 거금 1만5천원을 주고 구입한 사실도 밝혀졌다. 안중근의사의 재판이 열리기 직전인 이듬해 2월1일부터 6일까지 도쿄 국기관에서 공개상영되는 일도 있었다.


 

 

 


 

저격 동영상이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통해 미국에서도 상영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지만 이 동영상이 사본인지, 원본을 임대한후 다시 돌려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일 사본이라면 미국에서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로선 뉴욕타임스의 삽화 자료가 안중근의사가 감행한 ‘세기의 저격’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현존하는 최고의 자료인 셈이다.


 

 

 


 

다음은 1910년 8월 14일 뉴욕타임스 특집기사중 이토저격 부분.


 


 

<지난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진은 주목할만하다. 일본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한국통감인 이토 백작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이토 일행을 일본인들이 플랫폼까지 나와 환영하기 위해 공식적인 경호의 벽이 완화된 상태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례적으로 활동사진(moving picture)으로 촬영됐다. 유럽의 영화제작자 한 사람이 촬영기사를 현지에 보내 촬영토록 한 것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카메라 필름은 이토 일행이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건너 코콥초프 장관을 만나기 위해 플랫폼을 건너가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때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군중속에서 한 한국인이 나와 리볼버 권총을 꺼내 발사했다. 세발이 이토에게 명중했고 나머지 세발은 비서 등 수행원들이 맞았다. 활동사진은 곟속 돌아갔고 모든 상세한 장면들이 촬영됐다. 군중들이 공포에 빠진 모습이 이어졌다.


 


 

현장을 촬영한 필름이 현상됐을 때 내용은 물론, 반응도 깜짝놀랄만한 것이었다. 유럽의 관료집단은 이것이 공개되면 비슷한 폭력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한 태도는 최근 미국 회사가 코네티컷의 폭발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유럽의 딜러들에 판매하려고 했을때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한 남성은 그것을 러시아로 가져가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폭력이나 범죄의 장면을 보여주는 동영상에 대한 편견은 국가검열위원회(National Board of Censors)의 영향에 따라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토 백작의 저격에 관한 필름 두 개가 미국에 도착했지만 널리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동영상으로 우연히 촬영된 필름은 정말 가치있는 “실제상황”이다. 동영상의 첫 번째 필름은 카메라속의 저격자를 조사하는 과정을 담았지만 파괴됐다. 동영상은 소방차용말들이 멀리서 다가오고 그중 하나를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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