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마친후 부처님이 성도후 다섯 비구(수행자)한테 첫 설법을 하신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를 참배했다. 인도에 와서 처음 이틀간은 간다라 문화와 무굴제국의 유적지를 보았으니 기실 이날이야말로 불교성지순례의 시작이었다.
입구에 있는 불교 최고의 박물관 녹야원 박물관에서 아쇼카왕의 4마리 사자상 석주(石柱)와 초전법륜상 등 옛 보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본 아쇼카 사자상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본래 사자상은 아쇼카 석주 꼭대기에 있었던 것이 파괴되어 떨어져 흙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해 박물관에 안치(安置)한 것이다.
내부에 위치한 초전법륜상은 경주 석굴암의 부처님을 보는 듯 경이로웠다.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에서 백제의 금동반가사유상도 떠올려졌다. 이곳은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돼 아쉽지만 역사의 귀한 자취들을 눈으로만 담아둘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초전법륜지로 들어가는데 가슴 한구석에서 알지 못할 흥분감이 일어난다. 부처님의 4대성지 중 한곳을 들어가는 기쁨때문이리라.
녹야원(鹿野園)은 인도말로 사르나트(Sarnath, Sarnātha)라고 불린다. 방금 전까지 심한 스모그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는데 녹야원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도 맑아지고 마치 딴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더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500여년전 첫 설법을 하신 녹야원은 정말 특별했다.
12~13세기 인도 북부를 침공한 이슬람세력에 의해 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파괴돼 옛 자취를 찾기는 어렵지만 부처님의 성지에서 전해지는 기운을 불자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49일간의 선정(禪定)에 들었다. 그리고 280km 거리를 걸어 이곳 사르나트에 당도하셨다. 그리고 다섯 비구에게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의 이치를 깨우쳐라. 중도에 이르려면 팔정도(八正道)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최초의 설법(초전법륜)을 하셨다. 이후 40년에 걸친 위대한 전법의 여정에 들어가셨다.
녹야원(鹿野苑)엔 적지 않은 순례객들이 있었다. 대부분 태국과 티벳, 미얀마 등 인근 국가에서 온 불자들과 오렌지색 가사차림의 스님들이었지만 유럽과 미주 등 서구의 불자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녹야원의 ‘녹’은 사슴을 뜻하는데 오늘날은 사슴 대신 인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몇 마리의 개들이 한가로이 볕을 쬐고 있을뿐이다.
아쇼카 석주가 있던 자리는 작은 유리관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저 돌조각이 남아 있을뿐이지만 부처님 열반후 200년이 지난 BC3세기경 아쇼카왕의 지극한 불심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경내 여기저기서 불자들은 자리잡고 명상에 잠겨 있거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뉴욕에서부터 챙겨온 찹쌀 등 공양미를 들고 다메크 대탑(Dhamekh Stupa)으로 향했다. 다섯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한 장소에 세운 다메크 대탑은 붉은 벽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것인데, 지름이 28.5m, 높이가 40.06m에 달했다.
마우리아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하단에는 화려한 연꽃문양 등이 새겨져 있고, 중간 중간에 8정도(팔정도)를 의미하는 8개의 감실이 있다. 8세기 초 이곳을 순례한 당나란 현장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하늘 높이 솟아있고, 그 주위에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에 황금불상과 부조가 있으며, 스님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서술해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지광스님과 불자들은 대답을 향해 자리를 잡고 향을 킨 후 간단한 예불을 올렸다. 나지막한 목탁소리에 맞춰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讀誦)하면서 2500여년전 부처님께서 걸으신 구도의 길을 더듬었다. 기도를 마친 후 지광스님은 “부처님께서 위 아래 없는 깨달음을 얻으시고 첫 설법을 하신 이곳에 오니 참으로 가슴 벅찬 심정입니다”라고 감회 어린 심경을 드러냈다.
다메크 대탑을 세 번 탑돌이 하는 것으로 녹야원과 작별했다. 대탑 둘레로 울타리가 쳐진 한켠엔 예닐곱의 빈민(貧民)이 동냥통을 내밀고 처연한 눈빛으로 구걸을 한다.
인도에 오니 사람도 동물도 어쩌면 그리도 불쌍한 이들이 많은지.. 우리가 문명국의 일원으로 누리는 풍요는 저들의 빈곤을 발판으로 얻어낸 것은 아닌지, 새삼 인생이란 무엇인지 착잡한 마음이 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