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스포츠팬들은 우울합니다. 꼭 스포츠팬이 아니더라도 뉴욕을 사랑하는 뉴요커라면 NFL 뉴욕 젯츠가 지난 23일 아메리칸컨퍼런스 결승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분패(憤敗), 수퍼볼 티켓을 놓친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수도’라는 별칭도 있다시피 뉴욕은 누구나 선망(羨望)하는 지구촌 최고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스포츠만큼은 이상하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월드시리즈를 27회나 제패한 전통의 명가 MLB 뉴욕 양키스라고 해야 할까요. 그나마 양키스도 천문학적인 연봉으로 스타선수들을 쓸어모은 것에 비하면 최근 성적이 그닥 좋지는 않습니다.
무려 42년만의 수퍼볼 정상을 꿈꾸던 뉴욕 젯츠는 결국 꿈의 무대를 밟기 일보 직전 분루(憤淚)를 삼켰습니다. 더불어 뉴요커들도 2월 6일 열리는 수퍼볼의 맥없는 구경꾼 신세가 되고 말았네요.
도대체 몸집은 골리앗같은 대도시가 정작 프랜차이즈 구단들의 성적은 별 볼일 없는 것이 뉴욕타임스도 짜증이 난 모양입니다.
‘뉴욕은 패배자의 동네인가(Is New York Loserville?)’이라는 자조적인 제목을 달았으니 말입니다.
뉴욕이란 이름을 달고 뛰는 메이저 스포츠는 NFL 뉴욕 젯츠와 뉴욕 자이언츠, MLB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 NBA 뉴욕 닉스, NHL 뉴욕 아일랜더스, 뉴욕 레인저스 등 4대 프로스포츠에 7개 팀이 있습니다.
사실 뉴욕을 연고로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닉스부터 살펴볼까요. 닉스의 전용 체육관은 맨해튼의 한복판 매디슨 스퀘어가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이기도 한 곳을 안방으로 쓴다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입니다.
그런데 닉스는 지난 64년의 NBA 역사에서 고작 두 번 우승했을 뿐입니다. 가장 최근 것이 1973년이니 벌써 38년전입니다. 열두살 아이때 우승을 목격한 소년이 나이 쉰살이 되도록 한번도 우승한 모습을 못본 셈이죠.
뉴욕 메츠는 어떤가요. 역시 두 차례 우승 경험이 있습니다만 그것도 어느새 사반세기, 25년전 일이 되버렸네요.
뉴욕 레인저스는 1994년 스탠리컵을 품에 안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54년의 장구한 세월이 걸렸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16년간 무관으로 남아 있고 올해는 연전연패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지요.
▲ 1932년 스탠리컵 우승당시 뉴욕 레인저스 www.wikipedia.com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 채널 2와 4에서 뉴욕의 스포츠 중계를 도맡은 베테랑 캐스터 렌 버먼은 “난 뉴욕을 한번도 챔피언의 도시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 여운을 남기네요. “하지만 우승의 씨까지 말라붙은 도시는 아니다”라구요.
실제로 뉴욕 자이언츠가 2008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물리치고 수퍼볼 우승의 감격을 안긴 기억이 선명합니다. 자이언츠는 45년의 수퍼볼 역사에서 3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총 86년의 구단 역사를 술회(述懷)하면 역시 좋은 성적은 아닙니다.
프로팀이 별 볼 일 없으니 대학스포츠라도 찾아보면 어떨까요. 포담과 컬럼비아, 세인트존스 등 뉴욕을 대표하는 큰 대학들을 비롯, 수많은 대학들이 있는만큼 NCAA 농구에서 우승한 기록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세상에~. 기억에도 까마득한 61년전의 일이네요. 한국전쟁이 발발(勃發)한 1950년 뉴욕시립대(CCNY)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워낙 부자도시라 전설적인 스타선수들을 많이 보유했습니다. 베이브 루스(Babe Ruth)를 비롯, 조 네이머스(Joe Namath), 레지 잭슨(Reggie Jackson), 마크 메시어(Mark Messier), 월트 프레이저(Walt Frazier), 톰 시버(Tom Seaver), 프랭크 기포드(Frank Gifford), 조 디마지오(Joe DiMaggio),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그리고 현재의 데릭 지터(Derek Jeter)까지.
물론 미키 맨틀(Mickey Mantle)처럼 우승을 여러번 경험한 스타도 있는 반면, 돈 매팅리(Don mattingly)나 농구의 패트릭 유잉(Patrick Ewing)처럼 우승 축배를 한번도 들이키지 못한 스타도 있습니다.
뉴욕 닉스가 오래전 두 차례 NBA 우승을 차지했을 때 센터로 활약한 윌리스 리드(Willis Reed)는 1973년 이후에도 우승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닉스가 최대어인 패트릭 유잉을 드래프트 선발했던 1985년 그는 크레이턴 대학의 감독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닉스가 유잉을 드래프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네브라스카에 있었다. 너무 기뻐서 점프하며 환호성을 질렀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그후 38년간 우승을 못했는지 참 믿어지지 않는다”고 탄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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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스로서 최대 우승찬스는 1994년 휴스턴 로케츠와의 챔피언결정전입니다. 유잉의 맹활약을 앞세워 5차전까지 시리즈 전적 3승2패. 20년 무관의 한을 떨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통한의 역전극을 허용하고 말았지요.
아마도 조 네이머스처럼 젯츠의 짧은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선수도 없을 것입니다. ‘브로드웨이 조’라는 별명의 그는 69년 쿼터백으로 젯츠의 수퍼볼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듬해도 우승후보였지만 젯츠는 ‘패배자의 사막’에 내던져졌습니다. 로우 홀츠와 릭 코티트같은 좋은 감독들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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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머스(사진)는 최근 인터뷰에서 “스틸러스나 샌프란시스코 뉴잉글랜드처럼 여러번 우승하는 팀들을 보면 이 팀들은 얼마나 특별하길래 그런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승은 실력말고도 운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런 찬스가 있었지만 부상 등 불운한 요소들이 그것을 방해했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한가지 궁금증이 남습니다. 레인저스가 우승한 이래 세 번이나 스탠리컵과 입맞춤한 뉴저지 데블스같은 팀도 범 뉴욕권이 아니냐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데블스는 아무리 많은 우승을 해도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승리의 퍼레이드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챔피언 없는 허전함을 달래고 싶은 뉴요커가 있다면 그들을 우승 리스트에 포함한다 해도 누(累)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