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첫 방북이후 1년간 4차례나 방북을 했다고 말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들은 한번 가기도 힘든 북녘 땅을 그것도 먼 미국 땅에서 석달에 한번 간 꼴이니 말입니다.
제가 북녘에 친지 등 연고(緣故)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다못해 시간이나 돈이 많다면 여행 삼아 갈 수 있다지만 몸이 서너개라도 모자를만큼 바쁘고 재정 사정도 빠듯한데 왜 그렇게 무리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실제 방북은 4회지만 경유지인 중국까지 날아갔다 그냥 돌아온게 세번이나 되니까요. 물론 제가 너무 욕심낸 탓도 있었지만 단독으로 북녘 취재를 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기 힘든 프로젝트인게 사실입니다.
세 차례 불발한 기회 중 가장 아쉬웠던 것은 올해 김일성광장에서 예정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놓친 것입니다. 지난 해 12월 30일 북경에 도착해 당일 비자를 받고 다음날 평양행 고려항공을 탈 예정이었는데 비자 발급이 하루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새해 행사 취재가 무산된데다 평양행 고려항공이 1월 3일에나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마음을 잡고 북녘의 설날 풍경은 어떨까 싶어서 1월말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는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때이후로 북은 모든 하늘길 땅길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죠.
제가 북녘을 열심히 가려는 이유는 단 한가지, 기자로서의 의무감 때문입니다. 첫 방북에서 평양 시민들이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다’고 하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석달여뒤 평양에 날아갔습니다.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없던 건물이 생겨난 것은 기본이요, 새로운 정책과 제도가 시행되고 시민들의 놀라운 유행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동강변 산책중 애완견을 만났다
‘내가 다시 평양에 안왔다면 지금도 첫 방북에서 본것을 현재 모습으로 생각했겠구나’ 하는 자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계절에 한번 취재하지 않으면 북의 놀라운 변화를 따라잡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더구나 미국 시민권자들의 북녘여행이 계속 금지된 상황에서 기자 신분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같은 사람이라도 부지런히 다녀와서 북녘 현실을 취재하고 그곳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세상에 알리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노력이 오랜 세월 단절된 남과 북의 겨레가 이해하고 화합하는 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보람과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지난 2년간 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오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는 제가 ‘통일기러기’라는 별명을 갖고 통일운동가의 새 삶을 걷고 있는 까닭입니다.
방북을 계기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알리는 일입니다. 1차 방북이후 시간이 날때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강연을 하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분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혀있는 고정관념(固定觀念)과 편견(偏見), 몰이해(沒理解)를 개선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동안 진보 분들은 물론이고 중도와 보수, 심지어 태극기부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물론 강연을 하기엔 북에 대해 관심이 있고 비교적 열려 있는 진보 그룹이 편하겠지만 저는 일부러 중도분들과 보수 분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화합하기 위해선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가진 분들을 설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통일운동 역시 ‘그들만의 리그’로 남게 되니까요.
지난달 서울에 돌아온 후 몇 차례 심포지엄 발표와 강연을 했는데 11월 18일과 19일 제주에서 가진 특강은 대단히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선 기자들의 최대 조직인 한국기자협회(회장 김동훈) 주최로 열린 2020사건기자 세미나에 ‘방북 특강’ 강사로 참여한 것입니다.
‘장마당부터 대중탕까지 – 북한속으로’라는 제목의 강연은 그간 들려드린 것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청중이 현재 언론 일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뛰고 있는 젊은 기자들이라는 점에서 흥분감을 안고 제주로 날아왔습니다.
솔직히 젊은 기자들이 방북강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交叉)했습니다. 제주 칼 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세미나는 전국 주요 언론사에서 한명씩 선정된 70여명의 기자들이 모였고, 두 개 그룹으로 나눠 이틀간 진행됐습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모두 한곳에 모여 한번 강연으로 끝냈겠지만 안전한 방역을 위해 적정 인원을 유지하도록 일정을 조정한 것입니다. 덕분에 팔자에 없이 같은 강연을 이틀 연속 하게 되었죠
젊은 기자들, 그것도 일터 환경이 가장 억세고 힘겨운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은 지라 평소 북한이나 통일에 관심을 가진 기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세미나의 중심 의제인 ‘자살보도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제 강연은 필경 그들에게 뜬금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강연 서두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세미나에서 진행된 강연 주제들은 사회부 기자인 여러분의 일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지만 저의 방북 특강은 여러분을 포함해 우리 민족 전체와 관련이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앞선 시간이 무거운 주제였다면 하루종일 카메라 3대를 들고 북녘 땅을 있는 그대로 취재한 사진과 영상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와주시기 바랍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특강 분위기는 비교적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간 제가 한 방북강연중 가장 반응이 저조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다른 강연회에선 거의 예외없이 박수와 감탄사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고 감동의 박수도 나왔지만 이날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속에 진행되었으니까요. ^^
왜 그랬을까. 한번 복기(復棋)를 해봤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해 관심 자체가 떨어지고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주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성 세대의 경우 대학 시절 독재정권과 항쟁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하고 민족, 통일문제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곤 했지만 민주화를 이룬 90년대이후엔 소위 이념서클들도 퇴화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취업도 힘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북한’과 ‘통일’은 그만큼 멀어지게 되었겠지요.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은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읽지 않고 ‘우리가 한민족인데 통일은 무조건해야 한다’고 접근한다면 꼰대소리 듣기 십상일 것입니다. 하물며 일선에서 활약하는 엘리트 기자들 앞에서 가진 강연에서 나름 선방을 했으니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일간 만찬을 함께 하면서 여러 기자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들도 저의 강연을 통해 북에 가졌던 고정관념들이 너무나 많았고 편견을 씻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다른 것에 눈돌리기 어려운 바쁜 기자생활이지만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는줄 미처 몰랐고 앞으로 관심을 갖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한 방송사의 20대 기자는 “오늘 강연을 보고 북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은 통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도 통일을 하지 않고 같은 민족으로 교류 협력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의 말에서 젊은이들이 통일이 가져올 엄청난 이익을 생각지 못하고 막연히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의 복지비용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이 통일하면 경제력이 훨씬 떨어지는 북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저는 더 큰 희망이 생겼습니다. 만일 이 친구들에게 저렴한 임금과 숙련된 노동력, 엄청난 지하자원에 더하여 첨단 과학기술력까지 보유한 북의 잠재력을 조목조목 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비용보다 수십 수백배의 이익이 돌아와 일자리 걱정도 없고 경제적으로 대박이 터진다면 그래도 거부감이 들까? 물리적 통일 없이 한민족 경제공동체만 이뤄도 얼마나 많은 기회와 이익이 돌아오는지 젊은들이 수긍하고 남북 겨레가 같이 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통일의 길 아닐까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합리적입니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강연’을 통해 북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와 막연한 우려를 씻고 위대한 한민족 ‘원 코리아’로 가는 길을 설계해 나갈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비록 현재의 정세는 안개처럼 뿌옇게 보이지만 남북미 관계는 결국 바른 길을 찾아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2021년 신축년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 서광(曙光)이 비치는 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차 특강을 마치고
2차 특강을 마치고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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