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린선생 송환' 끝내 외면하는가

12일 편지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발신자는 통일부 이산가족과입니다. <겉봉에 민원서류재중, 본인외 개봉금지>라는 말이 고딕체로 써 있었습니다.
내가 민원(民願)을 보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의아한 마음으로 뜯어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 대통령 비서실에 제출하여 우리 기관으로 이송된 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알고보니 장기수 출신으로 지금 사경을 헤매는 박종린 선생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난 연말에 문재인 대통령께 저의 방북기 <평양남자 서울여자 길을묻다>를 보내드렸습니다. 책과 함께 박종린 선생님에 관한 글(아래 링크 참조)을 출력해서 넣었습니다. ‘꼭 좀 읽어주십사’하는 당부와 함께요.
“죽기전 북으로 보내주오” - 박종린선생 이대로 둘텐가요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wr_id=746
새해 들어서도 박종린 선생님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죽더라도 꼭 한번 고향에 돌아가 가족 품에서 죽고 싶다는 선생님의 안타까운 소망을 대통령께 호소하였습니다.
1993년 리인모선생을 김영삼정부가 조건없이 보냈듯이, 2000년 9월 송환된 장기수 63분에 자신도 모르게 배제(排除)된 박종린 선생님을 이제라도 보내 60년의 한(恨)을 풀어드리고, 그로 인해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 호소하는 마음으로 전한 내용이 어떤 연유로 통일부로 넘어가 민원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통령 비서실이 ‘관심은 표했구나’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외람되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을 요청한 것이지, 문의한 적도 없는 통일부 이산가족과장 전결의 회신을 기대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설마하니 비서실에서 대통령께 책과 저의 요청을 전하지 않고 통일부에 넘긴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대통령이 저의 요청문을 보셨다면 박종린 선생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직접 답장도 주시지 않았을까요. 천성이 어질고 친절한 대통령이시니까요.
통일부가 서신에서 박종린 선생님의 위독함을 안타까워하고 건강 회복을 기원해준 것은 고맙지만 “앞으로도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추진위원회 등 관련 단체와 지속적으로 소통을 추진하겠다”며 “귀하의 문의에 충분히 답변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한 것은 뜬금없고 실망스럽습니다.
사실 저같은 사람이 대통령에게 호소를 하기 전에 통일부가 먼저 나서서 박종린 선생님을 비롯한 열두분의 생존 장기수들부터 돌려보내고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강제 납치 피해자인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송환을 적극 추진하도록 대통령께 건의했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북측은 남측이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지키지 않는 한 일체 대화를 갖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기본 전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식량과 의료지원, 코로나19 방역공조 등의 제안을 아무리 해봐야 영혼없는 메아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장기수 선생들과 김련희씨, 류경식당 종업원들을 조건없이 돌려보낸다면 북측은 남측의 진정어린 몸짓에 고개를 끄덕이고 대화 재개의 따뜻한 화답(和答)을 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가 밝은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평양에선 향후 5년의 국가적 정책을 결정하는 8차 로동당대회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和解)와 교류협력의 길로 가게 될지, 앞이 안보이는 대결과 반목(反目)의 안개속에 빠질지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분일초가 급한 박종린 선생님을 오직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즉각 돌려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지난 2018년 박종린선생이 평양에 있는 딸과 손주들 사진을 보는 모습.
60여년전 3개월된 딸을 두고온 선생은 중국에 있는 조카를 통해 가족사진을 전달받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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