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결론

우리나라의 영토를 연구하는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를 살펴보았다. 정약용이 생존하여 『아방강역고』를 집필했던 당시의 이씨조선인 우리나라의 강역을 연구한 것이라면 정약용의 주장이 옳은 점도 없지 않겠으나 그가 인용한 문헌사료들을 조사해볼 때 한반도의 조선으로 한정짓는 것은 잘못으로 판단되었다.
허구인 기자조선을 신봉한 점으로 보아 그가 밝히려는 강역은 한반도 이씨조선 이전의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로부터의 역사영토였던 것이 분명하다. BC1046년경의 기자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나라 무제는 BC110년경 사람이다. 기원전 1046년경의 조선 땅이 어찌 한반도가 될 수 있으며 기원전 110년의 낙랑이 어떻게 한반도에 위치할 수 있단 말인가.
명·청·중화민국 이전의 1차사료 어디에도 조선, 낙랑, 임둔, 현도, 대방, 진한, 마한, 변한, 패수 등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아방강역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약용의 연구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증한 것이 아닌 정약용 자신의 추측과 억측 그리고 억단으로 연구된 하나의 허구임을 알 수 있었다.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하였다. 첫째, 그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주도한 역사 왜곡을 알지 못했고 둘째, 위서(僞書)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며 셋째, 고유명사(固有名詞)와 일반명사(一般名辭)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으며 넷째, 지리지명의 위치를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자기도취로 인한 추측과 억측으로 일관했고 다섯째, 사대주의적 역사관과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초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지리지명은 고유명사로 맨 처음에 지정된 오직 한 곳에만 위치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천연지형물인 강이나 산을 옮기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약용은 낙랑이 3곳이고 현도도 3곳이며 대방 역시 4곳이며 패수가 4곳이라 하였다. 정약용의 논문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주장을 먼저 설정해 놓고 주장과 전혀 관계가 없는 문헌사료들을 인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아닌가 한다’, ‘∼아닌가 싶다’, ‘∼것이 아닐까?’, ‘∼땅일 것이다’, ‘∼땅인 듯 싶다’, ‘∼한 듯하다’, ‘아마도∼삼은 듯하다’, ‘혹시∼아닌가 생각된다’ 등 비과학적인 추측과 희망 사항을 총동원하여 주장을 펴고 있다.
정약용은 상고사에 나오는 수많은 지명들을 모두 한반도로 끌어들여 강토를 엄청나게 축소시킨 역사반역행위를 저질렀다. 주장을 할 때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논거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약용은 시종일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억측(臆測)과 억설(臆說)과 억단(臆斷)으로 일관하였다.
정약용은 자주성이 없는 사대주의적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이다.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허구의 기자조선을 신봉했으며, 지나의 문헌사료는 편견없이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역사책은 불신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왜곡되어 만들어진 문헌사료들을 비판없이 받아들였고 고질적인 소중화(小中華)를 고집하면서 우리의 역사 강역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못난 작은 나라로 만든 전위대 역할을 한 사람이다.
따라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는 허구로 쓰여진 위서(僞書)라고 결론짓는다. 아울러 『아방강역고』가 문헌고증과 실증적인 지리역사서라고 극찬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학계의 무분별한 작태를 비판하면서 그 실상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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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00
근대조선 실학자들이 저지른 역사 왜곡을 정리하셔야겠네요.
Paul Kim
누군가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저자의 다음 논문을 소개하면 <신라의 강역 연구>(제18집), <고려의 강역 연구>(제19집), <가야의 영토 연구>(제20집), <매국노 이승만의 역사인식 비판>(제21집) 그 다음에 실학자들 개개인의 역사인식 비판을 해볼까 합니다.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00
18집 19집 20집 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구씨는 꾸준히 하고 있네요.
Paul Kim
금기 음식: 1. 설탕 2. 콜라 사이다 등의 음료수 3. 소고기를 포함한 육류 일체 4. 밀가루 음식 금하고, 함께 복용해야할 음식 1. 매일 아침 공복에 물한컵 정도 마신 후에 사과 한개를 잘 싯어서 껍질과 씨와함께 평생 복용하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살구씨를 약 3개월 복용후 3개월 단위로 검사해보세요. 내 주위에 같은 문제의 환자도 완쾌되었어요. 신선한 공기 잊지마세요. 암세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신선한 산소입니다. 산소공급이 모자라서 살겠다고 나타난 변이가 바로 암세포입니다.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제2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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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critique of Yakyong Jung‘s cognition of history
- Focusing on Abanggangyoukgo -
Kim, Taeyoung
One of the realistic scholars, called Yakyong Jung by the Korean Academic World, wrote a historical geography book titled 『Abanggangyoukgo』. We researched, examined, analyzed, and compared almost all the relevant primary and secondary sources to see whether or not his assertions were true. As a result, we verified that he made tremendous errors by confining, contrary to the historical facts, the important geographical names and locations, such as Chosun, Hansagun, Goguryoe, Baekjae, Shinra, Jolbonseong, Guknaeseong, Pyoungyangseong, and Paesu within the Korean peninsula.
Yakyong Jung did not show the critical primary sources and historical records as authorities of his argument, but merely made assertions by mobilizing unscientific assumptions and wishes such as ‘presume’, ‘presuppose’, ‘will be’, ‘might’, ‘seems’, ‘perhaps’, ‘likely’, ‘wonder’ etc. Unfortunately, his groundless conjectures made Byoungdo Lee a devotee of 『Abanggangyoukgo』 as well as provided scholars associated with Japanese colony and Chinese Dongbukgongjeong with the cause of evil, the distortion of Korean history, especially that of ancient history.
Mr. Jung was a truckler without historical cognition and autonomy. He denied Dangunchosun, believed in fictitious Gijachosun, and received historical records distorted by Myoung and Cheong dynasty without criticism. Furthermore, he insisted on being little-Chinese-like attitude, which is an inveterate disease. He played a role as vanguard by confining our historical territories in the Han peninsula, and thus made our great country a little stupid one after all.
Therefore, we concluded that 『Abanggangyoukgo』 is fiction and fabrication and that Mr. Jung is a person with a lack of historical cognition. In addition, we criticize the imprudent practices of Korean Academic World of History, which extol 『Abanggangyoukgo』 to the skies as a well-researched historical geography book, and reveal the facts as they are.
Key words: Chosun, Hansagun, Guknaeseong, Pyungyangseong, Paesu, Mahan, Hyundo, B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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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대한 답이다.
문: 대륙 회상으로는 나라 발전이 어렵다고 느낀 실학자들이 조선은 원래부터 반도인이었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답: 대답은 ‘볼 수 없다’이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학문으로 개인 생각이나 소망이나 정치나 사회현상을 적는 것과는 다르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 따라서 고려가 대륙에서 건국하여 대륙에서 망한 사실의 기록이 역사이다.
고려에 귀화한 이성계(李成桂)가 정도전(鄭道傳)과 결탁하여 멀정한 고려를 뒤엎고 광활한 대륙의 동서남북 6천리 영토를 모두 명나라를 세운 홍건적의 괴수 주원장에게 넘겨주면서 고려의 변방인 한반도에 정착하여 이씨조선을 세웠다.
1392년에 고려는 이성계에게 망하고 이씨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대략 1640년 경이다. 다시말하면 고려가 망하고 약 250년 후를 이씨조선 후기로 본다. 이들 이씨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250년 전의 민족사를 공부하지 않은 즉, 한마디로 무식한 자들로 문헌사료들을 읽지도 않았으며 명(明)과 청(淸)이 왜곡, 날조, 조작한 문헌들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던 자들이다.
한백겸(1552-1615)이라는 자는 그의 저서 <동국지리지>에서 “패수, 마자수를 각각 대동강, 압록강으로 추정(推定)하고 갈석산을 자비령으로 보아 수성(遂城)을 수안군(遂安郡) 일대로 추정”한 사람이다. 구양수가 지은 <신당서>만 자세히 읽었어도 패수가 대동강이고 마자수가 압록강이라는 헛소리는 하지않았을 것으로 본다. 하기야 <신당서>를 100번 읽은들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한백겸을 포함하여 안정복, 정극후, 유형원, 허목, 남구만, 정약용, 신경준, 이세구, 홍만종, 한진서, 홍석주, 이이영, 성해응, 한치윤, 홍경모, 이원익, 홍여하와 장지연까지 이들 19명은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왜곡 날조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 실학자들의 지리서는 모두 한결같이 “∼추정한다, ∼비정한다, ∼추측한다, ∼일 것이다, ∼아닌가 생각한다” 등을 남발한 것으로 “추정”, “추측”, “비정”, “∼일 것이다” 등으로 쓰여진 글은 역사(歷史)가 아닌 허구의 소설이다.
“대륙 회상으로는 나라발전이 어렵다”였으면 한반도 설정(設定)은 어떤 발전이 있었는가? 머리 좋은 사람이면 40분이면 이해할 수 있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사단칠정(四端七情), 이기일원(理氣一元), 이기이원(理氣二元), 호락(湖洛)의 논쟁이 400년 동안 당파싸움으로 이어진 것밖에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 이씨조선 500년의 역사는 단지 “당파싸움과 사화(士禍)와 귀양과 사약(死藥)”의 기록이다.
이조 500년 동안 신봉해온 성리학이란 이름의 유교(儒敎)는 거짓 학문으로 21세기인 오늘날까지 그 뿌리를 내려서 학문의 근본인 진리탐구가 아니라 집단이기주의 유지를 위한 편싸움의 도구가 되고 있음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 한 대학의 한국사(韓國史) 교수라는 자가 필자에게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 바 있었다. 때가 되면 이자(者)의 이름을 역사 속에 뚜렷이 밝힐 것이다.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의 강단사학계를 점거하고 있음이 오늘날 학계의 현실이며 이런 무식한 자들로부터 어떤 역사논문을 기대하는가?
답글의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무분별한 실학자들의 근거없는 엉터리 잡설로 인하여 동북공정이란 괴물이 탄생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공의 동북공정이란 이씨조선의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아방강역고>를 인용하여 중공의 김육불(金毓黻)이 지은 허구의 위서(僞書) <동북통사>를 저본(底本)으로 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왜곡하고, 변조하고, 말살하려는 책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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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홍00
한국의 역사학계는 통렬한 학문적 반성을 기초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봐요. 특히 한민족의 활동 무대를 한반도로 국한시키는 역사 왜곡에 단연코 반대합니다.
문00
권력자놈들의 욕망이 만든 허구 역사에 속고 산 중생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염라천자께서는 정신상태가 썩은 무리들을 어저 잡아가셔서 地獄에 가두어 주시기를....
0윤0
역사왜곡을 태종부터 ?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중공의 눈치를 보느라고?.신지비사를 태워버렸으니카.
단군왕검이 회계산에서 천제를 지낼때 70개 제후국 왕들이 100%참석 했다고.합니다.
회계산은 상해근처인 모양인데..
Paul Kim
아래 댓글 참고하세요.
Paul Kim
고려의 도읍지가 있던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 복양(濮陽)을 주원장에게 내어 주고 한반도로 쫒겨온 이성계로부터 반도사관의 역사왜곡은 시작되었고 사방 6천리의 강토를 명나라에 넘겨준 것은 세종 때까지이다. 세종 때에도 넓은 영토를 명나라에 할양했다. 이런 왕을 위대하다고 하니 한심한 역사관이 아닌가!
대륙에는 회계산(會稽山)이 두 곳에 위치한다. 한곳은 산동성이고 다른 한 곳은 절강성이다.
단군왕검의 고향은 산서성 남쪽에 있는 왕옥산 남부, 패수의 서쪽 그리고 황하북부인 단향(壇鄕)에 있었으니 천재를 지냈다면 절강성까지 갈 필요가 없다. 천자는 먼 곳까지 가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회계산을 고집한다면 산동성의 회계산이 옳다. 오늘날의 산동성 동쪽으로 해가 비친다는 의미의 일조(日照)인 일조현(日照縣) 북 40리에 위치한 산이다. 옛날에는 방산(防山)이라고도 칭했다.
왕검의 산인 왕옥산(王屋山)도 옛날에는 방산(房山)이라 했다.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다. 산서성의 방산과 산동성의 방산 우연인가? <산해경>에 기록된 내용이니 믿지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역사 조작의 냄새가 짙게 난다.
필자는 왕검단군의 산인 왕옥산(방산)이 후대에 회계산으로 왜곡되었다고 믿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산해경>에 “왕옥산은 산 위쪽에 금옥(金玉)이 있고 산 아래쪽에는 양석(陽石)이 있다”고 적고 있다. 공교롭게도 절강성의 회계산을 설명하고 있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는 “<산해경>에 의하면 산위에 많은 금옥(金玉)이 있고 산 아래는 많은 부석(砆石)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어 결국 왕옥산과 회계산이 같은 산임을 암시하고
둘째, 절강성의 회계산에서 작수(勺水)가 출원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작수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작량(勺梁)이란 지명이 나오는데 이 작량은 하북이라 하여 왕옥산이 있는 지역 즉,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를 나타내며 셋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동성에 있는 회계산인 방산과 왕옥산인 방산을 혼돈하도록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론은 단군왕검의 산인 왕옥산에서 후국들을 모아 놓고 천재를 지낸 것이며 이 왕옥산이 후대에 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회계산으로 둔갑한 것이라 주장한다.
아무튼 <한단고기>(1991), P.231.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 나온 임승국이 주해한 "회계산: 양자강 남쪽에 있는 산이다"란 잘못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학술논문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제15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2.을 www.coreanhistory.com 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