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장왕 18년(659) 겨울 11월에 “당나라의 우령군 중랑장 설인귀 등이 우리 장수 온사문(溫沙門)과 횡산(橫山)에서 싸워 이를 부쉈다” 온사문 장군이 설인귀를 맞아 싸운 횡산은 앞에서 살펴본 <그림 9>, <그림 11>과 같이 섬서성 북부에 위치한 일명 회원진으로 산서성에 있던 고구려의 졸본성(졸본부여)과 위도가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황하를 건너 횡산을 공략한 기록을 보면 수많은 당나라 군사들이 횡산(회원진)에 주둔하여 고구려의 측면과 후방을 침공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 돌궐, 당의 연합군이 고구려를 침략한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고구려는 더욱 적극적인 전쟁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당의 침공 기록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돌궐 계민가한의 장막, 돌궐의 힐리가한과 당(唐)과의 밀착관계, 돌궐의 중심 거주지인 악이다사좌익후기, 유림, 횡산(회원진), 길란태염지, 탁군, 요수, 황하(바다), 유주, 마수산(화염산), 주필산, 통정진, 유성, 요택 200리, 패수, 북부여, 졸본성(졸본부여) 등은 모두 산서성, 섬서성, 하남성, 내몽고 지역에 위치한 지명들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임을 알 수 있다로 요약된다.
고구려는 경도 110도에서 세로로 나뉘는 천연지형의 황하로 돌궐과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고구려의 북부는 황하와 같은 자연 하천이 없기 때문에 돌궐과 수•당의 협공을 막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북쪽에 천리에 달하는 장성을 구축해야만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남사>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을 <그림 7>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의 남쪽으로는 조선•예맥이 있고 북으로는 [북]부여와 인접해 있다” 하여 고구려의 핵심 강역인 산서성 북부지역이 북부여 영토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천리장성의 기점인 부여성(장북)이 북부여 영토안에 있었던 지명이라는 자연스러운 논리가 성립된다. 따라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구려의 천리장성을 지도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15>, <그림 16>과 같다. 지도 작성에 어려움이 많아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한 것이니 두 그림을 함께 자세히 비교해주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 연구> - 제38부
2. 한국학계의 설

앞 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한국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고구려의 천리장성의 위치를 비교, 검토, 분석해 보겠다. 먼저 인터넽(Internet)에서 구할 수 있고 학계의 통설이라 믿어지는 천리장성 지도를 <그림 17>로 제시한다.
이 지도에는 당태종의 1차, 2차, 당고종의 1차 침입 경로와 격전지를 표시하고 있으나 필자는 경로와 격전지는 생략하고 요수와 요하의 관계, 황하로 진입하는 요수(압록수),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의 위치 비교, 유주의 위치, 유성의 위치, 부여성의 위치를 중점적으로 다루겠다. 또한 통정진의 실체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그림 17>의 천리장성 지도를 살펴본바 문헌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허구의 설(說)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반드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허구인 설은 문헌사료로 고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요녕반도의 고구려 천리장성은 근거없는 설로 허구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고구려의 요수(遼水)를 이루는 수원(水源)은 마자수, 대요수, 염난수, 소요수 모두 4개로 그 중 한 개의 수원인 마자수(馬訾水) 일명 압록수(鴨綠水)를 지금의 요녕성에 위치한 요하(遼河)로 설정한 큰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하는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세운 거란국을 나중에 요(遼)나라로 개칭하고 요나라 회동원년인 938년에 나타난 최초의 하천 이름이며 고구려가 패망하고 270년 후에 요나라가 만든 지명으로 고구려의 요수(압록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주 제57항과 제67항에서 고증하였다.
둘째, 요수인 압록수는 산서성 북부에서 남하하다가 곡옥에서 서쪽으로 물줄기가 바뀌면서 당시 바다(海)라고 불리던 황하(黃河)로 진입한다. 요녕성의 요하는 황하(黃河)로 들어가지 않고 황해(黃海)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황하를 바다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사기/하본기> 제2를 근거하여 각주 제58항으로 고증하였으며 압록수는 산서성에 위치한 하천으로 <신당서>, <통전>, <수경주>를 인용하여 각주 제59항, 제61항, 제62항에서 고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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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댓글 : 전에 진시황의 진이 마한의 진과 같다고 했었는데, 마한 땅이 고구려 당시면 백제땅인 것 같네요. 신라와 당도 지도에 같이 나타내어 주셨으면 금상첨화인 것 같습니다. 주제넓다고는 생각지 마시길 바랍니다. 몇군데 공유해 보겠습니다.
논평: 마한지역에는 모두 54[55]개의 나라가 있었으며 백제는 그중 하나이다. 백제는 산서성 남부에서 개국하여 진(晉)나라 시기 황하를 건너 요서진평이군(遼西晉平二郡)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섬서성과 하남성 사이에 있던 고마성(하남위례성)에서 도읍한다.
하(河)는 황하를 일컫는 말이며 황하의 남쪽에 도읍을 정했다고 해서 황하의 남쪽에 있는 위례성 즉,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 한 것이다. 한반도 지금의 한강(漢江)을 하(河)라고 불렀다는 기록은 동양사뿐만 아니라 지구 인류의 역사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의 팽창에 밀려 하남위례성(고마성)에서 산동성 한성(漢城: 제령)으로 2차 천도했으나 다시금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웅진(호북성 무한)으로 3번째 천도한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는 사비성으로 오늘날의 안휘성 청양(靑陽)으로 옮기지만 결국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게 패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한 55개국 중에서 역사에 남은 나라는 크게 셋으로 주(周), 진(秦), 그리고 백제(百濟)로 봄이 타당하며 함께 살펴본 바와같이 백제는 황하 근처인 마한지역에서 대륙 동남쪽으로 이미 천도한 것이니 섬서성 함양에 도읍한 진시황의 진(秦)과는 같은 강역이 될 수 없다.
당시 신라의 도읍지는 강소성 금성으로 오늘날의 강녕(江寧)이며 신라의 계림(鷄林)은 강소성 오현(吳縣) 서남쪽의 계산(鷄山)을 일컫는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백제의 영토 연구>(제16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2; 김태영, <신라의 강역 연구>(제18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3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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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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