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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31~35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6-04-05 (일) 21:46:38


제가항. 평양성의 위치


예맥조선(濊貊朝鮮)이란 패수의 다른 이름인 예수(濊水) 때문에 불려진 이름으로 예읍(濊邑)은 예맥조선 즉,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예수(濊水)가 발원하는 왕옥산 서쪽, 하간부로 지금의 원곡(垣曲)에 있던 염산현 서북에 위치한 지역이다. 염산현(鹽山縣) 서북지역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시로 평양이란 땅이며 이곳을 예읍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의 평양성에 대해 “단군왕검은 당요(唐堯)가 즉위한 지 50[25]년이 되는 경인[무진]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평양성은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으로 태일(太一)인 왕검단군 자신이 거주하며 직접 다스리던 곳이며 후에 고구려의 평양성이고 대진(大震)의 서경이며 고려의 서경이 된 지역이다.

당나라 위징 등이 지은 <수서>에 “배구가 앞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를 봉(封)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 요동(遼東)을 통솔하였다”고 하여 고죽국인 산서성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똑같이 적고 있다. “한(漢)나라 이전에는 조선(朝鮮)이라 하였다”란 조선은 단군조선이며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이어받은 나라로 고구려가 평양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기록은 <명사>에 잘 나타나 있다.

<明史(명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朝鮮)은 기자(箕子)에게 봉(封)하여 준 나라이다. 한(漢)나라 이전에는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일찍이 연(燕)나라 사람 위만에게 점거되어 있었으나, 한무제가 이를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토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한(漢)나라 말[초]에 부여(扶餘)사람 고씨(高氏)가 그 땅을 차지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로 고쳤다. 혹은 고구려(高句麗)라고도 한다. 평양(平壤)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곧 낙랑(樂浪)의 땅이였다. 그 뒤, 당(唐)나라에 격파되어 동쪽으로 옮겨 갔다.

후당(後唐) 때 왕건(王建)이 고씨를 대신하여. 신라, 백제의 땅을 겸병하고 송악(松岳)으로 옮겨 동경(東京)이라 불렀고,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그 나라는 북으로 거란(契丹)과 인접하였고, 서쪽에는 여직(女直), 남쪽에는 일본이 있었다.

원(元)의 지원(至元) 연간(1335-1340)에 서경(西京)(平壤)이 내속(內屬)되자 동녕로총관부(東寧路總管府)를 설치하고 자령(慈嶺) 끝으로 경계를 삼았다.”

라고 하여 고죽국(孤竹國)이 있었던 산서성(山西省)을 고구려가 그 땅을 차지하였으며 평양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평양은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특정 지역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32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문헌을 검토해보자.

곽박(郭璞)이 지은 <산해경>에 “동해안 북해의 모퉁이(깊숙한 곳)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이다. 조선을 천독이라 하며 그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랑한다.”

동해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천연호수로 발해(渤海)라고도 부르던 곳을 뜻하고 북해(北海)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천연소금이 나오는 염지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북해 모퉁이 또는 깊숙한 곳이란 왕검단군이 직접 다스리던 진한의 도읍지가 있는 평양을 뜻한다. 평양성은 압록수 우측에 있다. 그래서 물 가까이 산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천독(天毒)이란 하늘의 독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천축국(天竺國)이며 도덕(道德)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문서(文書) 즉, 많은 역사와 글을 가지고 있으며 금, 은과 돈을 가지고 나라(단군조선) 가운데서 죽음을 무릎쓰고 떠나갔다”라고 곽박이 주해를 했다.

단군조선 제21대 소태(蘇台)단군 때인 BC1286년에 색불루(索弗婁)가 무력정변(武力政變)으로 정권을 잡자 단군왕검의 직계 손의 일부는 단군조선의 정통성이 없어진 것으로 믿고 당시의 서역인 경도 110도로 나누어진 황하를 건너 피난을 갔고 색불루가 제22대 단군이 된다.

그 후 약 1048년이 지나 단군조선의 진한(진조선)이 BC237년경에 흉노 모돈(冒頓)에게 망하고 변한(번조선)이 위만에게 BC194년경에 망하자 많은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다시 산서성에서 황하를 건너 서역인 신강성, 청해성, 감숙성, 서장성, [사천성] 일대로 가서 이곳에 5천축국을 세우게 된다.

조국을 떠난 이들 유민들이 BC57년경에 다시 선조들의 고향인 단군조선 진한이 있던 평양(平壤)에 와서 신라(금성)를 세워 살다가 고구려에 밀려 변한땅인 산서성 남부 원곡(垣曲)으로 옮겼으며 다시 강소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지나(支那)의 여러 문헌사료들에 “신라는 본래 진한의 후예다” 또는 “신라는 본시 변한의 후예다”로 기록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진번” 이란 이름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과 www.historyofcorea.com에서



 


평양부(平陽府), 평양현(平陽縣), 평양성(平陽城)이 설명되어 있다.

“평양부(平陽府)는 옛 요임금의 도읍지이고 삼국시 위나라가 평양군을 두었다. 옛 관할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현(臨汾縣) 서남쪽이다.

진(晉) 영가(永嘉: 서진, 307∼312) 유연(劉淵)의 도읍지가 되었다. 후위가 진주(晉州)를 설치했다. 수나라가 고쳐 임분군(臨汾郡)이라 했다. 다시 평양군이라 했다. 당나라가 다시 진주라 했으며 송나라가 진주평양군이라 했다. 승격하여 평양부라 했다.

원나라 초에 평양로라 했으며 고쳐 진녕로라 했다. 명나라가 다시 평양부라 하고 산서성에 속했다. 청나라는 그대로 따랐다. 민국이 폐지했다. 치소는 오늘날의 임분현이다.”라고 적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과 www.historyofcorea.com 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33부


단군조선의 중심 영토인 산서성 남부에는 진한, 마한, 변한이 있었고 이 지역을 옛날 인도사람들은 진단(震旦)이라 불렀으며, 진단지역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천연지형물이 오노산(봉)인데 오늘날의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왕검단군이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한 것은 <삼국유사>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나(支那)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도 단군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단군조선 시기의 평양은 한반도 평안남도의 평양이나 요녕성 요양시의 평양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평양(平壤)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들을 조사 분석해본 바 1차사료인 <주관집주>, <삼전절제/좌전절제>, <후한서>, <위서>, <주서>, <수서>, <북사>, <구당서>, <신당서> 등을 포함하여 242종, 1,036권에 달하는데

정작 반드시 평양(平壤)의 기록이 있어야 할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는 ‘平壤’이나 ‘壤’에 대한 기록이 없고 ‘땅이름양(壤)’ 대신 ‘볕양(陽)’으로 바뀐 평양부(平陽府), 평양현(平陽縣), 평양성(平陽城)이 설명되어 있다.

“평양부(平陽府)는 옛 요임금의 도읍지이고 삼국시 위나라가 평양군을 두었다. 옛 관할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현(臨汾縣) 서남쪽이다.

진(晉) 영가(永嘉: 서진, 307∼312) 유연(劉淵)의 도읍지가 되었다. 후위가 진주(晉州)를 설치했다. 수나라가 고쳐 임분군(臨汾郡)이라 했다. 다시 평양군이라 했다. 당나라가 다시 진주라 했으며 송나라가 진주평양군이라 했다. 승격하여 평양부라 했다.

원나라 초에 평양로라 했으며 고쳐 진녕로라 했다. 명나라가 다시 평양부라 하고 산서성에 속했다. 청나라는 그대로 따랐다. 민국이 폐지했다. 치소는 오늘날의 임분현이다.”라고 적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과 www.historyofcorea.com 에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34부


평양부가 요임금의 도읍지라고 왜곡을 시작으로 산서성 임분현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현은 옛 요임금의 도읍지이다. 시(詩)에 의하면 당국(唐國)이다. 춘추시기 진나라 양설씨의 읍(邑)이다. <좌전소공26년> 진(晉)나라가 양설씨의 땅을 나누어 3현으로 했다. 조(趙)조정을 평양대부라 했다.

<사기위표전>에 의하면 ‘한(漢)나라 원년 항우가 위(魏)나라 왕표를 하동으로 옮겼다. 도읍지는 평양이다. 한(漢)나라가 평양현을 두었다. 고성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현 남쪽이다. 수나라가 고쳐 임분이라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평양이 요임금의 도읍지라고 왜곡하며 ‘평양부’는 산서성 임분현 서남쪽에서 ‘평양현’은 산서성 임분현 남쪽이라 하고 그밖의 내용은 평양부의 기술과는 약간 다르게 각색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평양성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평양성은 춘추 노읍(魯邑)이다. 산동성 신태현(新泰縣) 서남에 있다. <춘추선공8년> ‘성(城)은 평양이다.’ 한(漢)나라가 동평양현을 설치했다.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하동(河東)에 평양이 있다. 옛날 여기가 동평양이며 후한(後漢)은 생략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평양성이 산동성 신태현 서남이라 하면서 응소가 말하길 하동(산서성)에 평양(성)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양(壤)과 양(陽)의 글자가 다를뿐 평양부, 평양현, 평양군, 평양성은 모두 산서성 임분에 위치하였음이 고증되었다.

그런데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는 약간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평양부는 송나라 정화(1111∼1117) 6년에 진주(晉州)를 고쳐 설치했으며 치소는 임분현(오늘날의 산서 임분시)에 있다. 원나라 초에 고쳐 평양로라 하고 대덕(1297∼1307) 9년에 고쳐 진녕로(晉寧路)라 하였다.

명나라 홍무(1368∼1398) 원년에 다시 고쳐 평양부라 하였다. 1912년에 폐지했다”라고 적고 있다. 요임금의 도읍지라는 말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신라의 강역 연구–신라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35부


평양현에 대해 살펴보자.

“평양현은 춘추시기 진(晉)나라가 두었다. 치소는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현 서남 금전(쇠로된 궁궐)이다. 왕망이 향평현(香平縣)이라 고쳤다. 동한은 평양후국이라 했으며 삼국시 위나라가 다시 현이라 했다. 북위 태평진군(440∼450) 6년에 폐지했으며 태화(477∼499) 11년에 다시 두었다. 수나라 개황(581∼600) 원년에 고쳐 평아현(平阿縣)이라 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산서성 임분현이라는 점은 같고 금전 즉, 쇠로 된 궁궐이란 신라의 금성(金城)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도 요임금의 도읍지였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 평양성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평양읍에 관한 설명이 보인다. “평양읍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시 서남에 있다. 전국초 한국도성(韓國都城)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도성이란 진한(辰韓)의 도읍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산서성 임분에 있는 평양(平壤)을 평양(平陽)으로 글자를 바꾸면서 역사적 사실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나인들은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할 때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글자를 바꾸면서 각색을 했으며 문헌사료들을 교차확인하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평양(平壤)인 임분시, 천연 염지인 북해, 삼한의 도성(都城)이 있던 조양진(朝陽鎭), 원곡(垣曲), 임분(臨汾), 진단(震旦)의 위치를 나타내는 오노산(봉), 왕검단군의 산인 왕옥산(王屋山)[불함산] 등의 위치를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 <그림 4>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과 www.historyofcorea.com 으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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