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00):
중국의 실제 역사기록이 단군 조선 이후로부터 시작이 되어 춘추필법에 의한 조작에 의해 지명대사전 같은 곳에 기록이 없는 것 아닙니까? 중국의 역사도 그렇게 단군조선을 왜곡한 것이 아닐까요?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우선 답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적는다. 지명대사전에 기록이 없는 것은 특히 명나라 시기 역사를 왜곡한 때문이다. 청나라와 손문(孫文)의 중화민국을 거치면서 각종 지명대사전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고의로 누락(漏落)시킨 것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같은 중국의 각종 공정은 손문부터 시작되었다.
역사를 왜곡한 최초의 인물은 노(魯)나라 출신인 공자(공구: 552∼479BC)다. 공자는 <춘추>를 지은 적이 없다.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맹자(孟子: 372∼289BC)로 공자가 사망한지 180년이 지난 후이다. <사고전서> 79,337권 어디에도 공자가 지은 <춘추>는 없다. 본래의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를 바탕으로 불리한 내용은 모두 삭제하고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 공자의 <춘추>라 한다.
공자가 찬했다는 지금의 <춘추>에는 단군조선인 회이(淮夷) 즉, 예맥(濊貊)이 노나라를 토벌(討伐)한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나라의 신하가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내용들도 모두 삭제하였다. 그런 까닭에 공구(孔丘)는 역사왜곡의 창시자가 되었다. 공구의 필법은 ‘자국의 수치는 감추고 지나(支那)는 높이고 동이(東夷)는 깎아내리며 지나의 역사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남의 역사는 간략하게 하면서 모두 조공(朝貢)했다는 식’이며 이런 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한다.
청말(淸末)의 개화사상가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위작(僞作)하여 사가(史家)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이 악습은 공자의 춘추필법에서 나와 2천년 동안 ...그 악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공자를 비판한 사람은 이탁오, 홍수전, 강유위, 오우, 임표 그리고 역사학자 김태영 등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X판이 된 원인은 다름 아닌 이성계, 이방원, 이도(세종대왕), 율곡 이이, 그리고 실학자라는 한백겸, 안정복, 정약용 등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학계 역시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한다는 학문’은 멀리하고 교수자리를 지키기 위한 카르텔(Cartel)을 만들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한 위선자가 되었으며 이 같은 위선적 고질(痼疾)은 유교와 성리학의 원조인 공구(孔丘)에서 시작되었다.
역사란 사실을 기록하고 문헌기록에 의한 사실을 고증(考證)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성(歷史性)을 갖추어야 한다. 역사성이란 사건이 일어난 장소, 사건의 주체인 사람, 역사적 사건, 그리고 기록의 4가지 요건을 갖춘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는 역사가 아닌 만담(漫談)이고 잡담(雜談)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근경 I>(2021)과 <사근경 II>(2024)를 참고하기 바라며
김태영학파(T.K.School)의 논문은 www.coreanhistory.com 또는 www.historyofcorea.com에서.
댓글(이00):
선생님 이런 것도 질문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한반도에는 이성계가 도망 온 것이라면 려몽항쟁기에 제주에서 말을 먹였다고 하고, 현재의 일본에 처들어 갔다고 해서 신풍이라는 것이 생겼다는데 이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전에 임성태자가 대만으로 가서 무리를 이끌고 일본까지 갔다고 기억을 합니다만 고려와 몽고가 쳐들어 간 곳이 현재의 일본입니까? 아니면 대만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황하의 어떤 섬입니까? 제주에는 조랑말만 있는데, 준마는 키울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까?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이성계가 한반도에 들어간 것은 1394년이고 고려와 몽고가 대륙에서 싸운 시기는 1231∼1270년 사이이다. 그러므로 한반도(韓半島) 제주도 이야기는 고•몽 전쟁이 끝난 125년 후이다. 10년이면 강산(江山)이 변한다고 했으니 강산이 12번 반이 변한 후(後)라는 말이다.
고려와 몽고가 서로 싸운 곳은 지금의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당시의 제주는 지금의 한반도 제주도가 아니라 고려 시기의 탐라인 오늘날의 대륙 남쪽 바다에 있는 해남성(海南省)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의 일본에 처들어 갔다고 해서 신풍이라는 것이 생겼다는데 이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의 대답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문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역사학자 김태영은 문헌사료에 근거없는 헛소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몽골의 일본원정은 1274년 1차 그리고 1281년 2차 모두 2차례에 시도한 원정이지만 출발은 모두 대륙이고 왜(왜노/일본)가 남아있던 대만과 일본열도의 가장 서남쪽에 위치한 구주(九州: 큐슈)에 대한 원정이었다. 한반도에서 출정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만에 있던 왜국(倭國)의 잔당들이 대만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열도로 들어간 때는 덕천가강(德川家康: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기인 1605년경이다. 다시 말하면 1604년까지도 오늘날의 대만섬(臺灣島)에 왜(왜노)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다.
말(馬)은 본래 대륙에서 자생하는 동물로 대륙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수천리 한반도 남부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할 필요도 없다. 설사(設使) 지금의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했다고 가정하자. 제주도에서 대륙까지 직선거리 약 1,250리 길을 살아있는 수많은 말들을 배에 싣고 어떻게 바다를 건너 대륙으로 가져갈 수 있겠는가. 논리적, 합리적,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이 신묘년(391)에 백잔(百殘)과 왜노(倭奴)와 신라(新羅)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을 때 5만의 보병과 기병을 보낸적이 있다. 이때 기병들이 탄 말은 준마(駿馬)다. 조랑말을 타고 어찌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몽고와 고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준마를 타고 전투를 한 것이지 한반도 제주도의 조랑말을 타고 싸움한 적이 없다.
한반도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않은 한 반도사관(半島史觀)에서 헤어날 수 없으며 반도사관은 문헌사료에 기록된 역사가 아닌 잡담이고 만담이며 허구의 소설이다. 역사의 사실(事實)과 소설의 허구(虛構)를 구분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웹싸이트를 방문하여 게재된 논문들 중 특히 <고려의 강역 연구>(제19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며 금년에 출간될 <임나일본부의 허구 연구>(제23집) 논문을 참고하면 역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태영학파(T.K.School)의 논문은 www.coreanhistory.com 또는 www.historyofcorea.com에서
*독해력의 문제점*
대체로 짧든 길든 글은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이루어져 있다. 기는 시작, 승은 발전, 전은 전환, 그리고 결은 끝을 의미한다.
기(起)란 ‘시작’으로 본문에서는 “손(飧)은 저녁석(夕)변에 밥식(食)이 붙어 있는 글자다. 저녁에 먹는 밥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가 기에 해당되고
“1823년에 밀가루를 생산하는 밀가루 생산 산업이 미국 미너쏘우러(Minnesota)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으며 1890년 캔써스(Kansas)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밀가루를 소비시키기 위해 하루 세끼의 식사를 조장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승(承) 즉, ‘발전’에 해당된다.
결(結)은 “옹손(饔飧) 즉,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란 글자가 뜻글자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선조들은 아침과 저녁 하루 두끼의 식사를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다.
“중국의 선사 중의 한 사람이 선이 높은 선사를 찾아 가다가 떡파는 어떤 노파를 만났는데 그날 점심을 못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의 “선사”의 한자가 어떤 것인지 밝히지 않아 단정지을 수 없으나 신선선(仙)의 선사(仙士) 또는 선사(仙師)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선사(仙士)니 법사(法師)니 도사(道士)니 하는 자들은 모두 돌대가리 뗑중으로 선(仙), 법(法), 도(道)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주접떨고 다니는 무리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선(仙)이란 글자는 ‘산에 사는 사람으로 신선’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산에서 신선(神仙)이 되어 불로장생(不老長生)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그 시원(始原)은 단군왕검씨(壇君王儉氏: BC2333)이다. 신선이 되려면 필수 조건이 소식(小食)이다. 먹지 않고도 살수 있는 비법(秘法)을 터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물며 세끼를 꼬박꼬박 먹고 어찌 선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옛날 왕검시절에 산에는 먹을 것이 없어 세끼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
선교(仙敎), 도교(道敎), 불교(佛敎), 신교(神敎)는 모두 뿌리가 같으나 각각의 의미를 알지못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선교에는 9단이 있다. 물론 도(道)를 통하는 것도 9단이다.
불교의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테베트(Tibet: 지금의 서장성) 중(僧)들은 하루 아홉끼의 식사를 한다. 많이 먹으면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자고로 소식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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