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김선광): 선생님^^ 그렇다면 삼국이 대륙에 분포하던 시기 한반도엔 누가 어떻게 살고 있었나요??? 오랫동안 살펴본 후 여쭤봅니다. 고맙습니다.
논평(김태영학파T.K.School): 질문은 간단한 것 같지만 허구(虛構)의 소설이 아니고는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대답 자체가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여러 명의 공통된 질문으로 일일이 답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歷史)란 사실(事實)을 기록하고 문헌 기록에 의한 사실을 고증(考證)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사실이 기록된 문헌(文獻)의 존재가 필수 요건이다.
문헌(Documentary records)이란 문물제도의 전거(典據)가 되는 기록이나 문서를 뜻한 것으로 문헌이 기록이고 기록이 문헌이다. 따라서 역사는 기록이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이며 기록이 없는 것은 역사학자의 연구범위(硏究範圍)가 될 수 없다.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성(歷史性: The nature of history/Historicity)을 지녀야 하며 역사성이란 ⓵ 사건이 일어난 장소 ⓶ 사건의 주체인 사람 ⓷ 역사적 사건 그리고 ⓸ 기록(記錄)의 4가지 요건을 갖춘 것을 말한다. 이 들 중 사건이 일어난 장소(場所: Places)가 제일 중요하다. 따라서 ‘역사는 장소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의 삼국 시기 한반도에는 누가 살았을까? 하고 의구심은 갖는 것이 바로 장소 때문이다.
역사전수(歷史傳授) 방법에는 ⓵ 속적주의(屬籍主意: Lineage principle): ‘한 혈통 한 문중(門中)에 속하는 국적’ ⓶ 속지주의(屬地主義: Territorial principle): ‘부속되어 있는 땅으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땅’의 방법이 있다. 오늘날 중공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바로 속지주의를 취한 한 예이다.
그런데 동서양의 역사를 보면 속지주의가 보편적이지만 필자를 포함한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은 대체로 고려왕조까지는 속적주의와 속지주의를 함께 유지(維持)해 왔음이 확인된다. 1392년까지 같은 땅에서 거의 같은 혈통이 그 영토를 수천년 지켜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단군왕검이 우리의 조상이다. 한인의 한국(桓國)과 한웅의 배달국(倍達國) 시대가 있었다. 진한, 마한, 변한에서 발전된 것이 고구려, 백제, 신라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옛 강토를 모두 차지했다. 가야는 김수로왕이 세운 나라다.
김씨의 시조는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이고 김일제(金日磾)는 신라 김씨의 중시조다. 왕건이 세운 고려가 신라를 승계했다. 왕씨나 고씨는 모두 소호금천씨의 후예로 김씨이다. 금나라 시조인 김함보는 고려인으로 김씨다. 고려에 귀화(歸化)한 거란족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고 이씨왕조를 세웠으며 1394년 한반도 한양인 지금의 서울에 최초의 도읍지를 정했다. 등을 들 수 있다.

◆ 이제 질문에 대해 답할 차례다.
첫째,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과 가야 즉, 4국이 대륙에 실존할 시기인 대략 BC232년부터 AD927년 사이를 기록하고 있는 1차사료나 문헌자료 어디에도 한반도(韓半島)에 관한 기록이 없다. 문헌기록이 없으므로 당시 한반도에 누가 살았는지에 대한 확정적인 대답이 불가하다. 누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살았는지를 답할 수 있겠는가.
둘째, 대륙에 있던 동이배달한민족의 마지막 왕조는 고려(高麗)이며 고려가 망한 것은 왕명(王命)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한 귀화인(歸化人) 이성계(李成桂)가 왕위를 찬탈한 1392년이다. 이성계는 활(弓) 한번 당기지 않고 명나라 주원장(朱元璋)에게 사방 6천리의 광활한 고려강토를 바치고 한반도로 쫓겨와 1394년 지금의 서울인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했다.
셋째, 따라서 한반도의 역사는 1394년부터 문헌기록이 시작되었다. 이씨왕조의 문헌은 1413년 이방원의 <조선팔도 시행>을 시작으로 <동국여지승람>(1425), <세종실록지리지>(1432∼1452), <해동역사>(1823), 그리고 김수로왕 묘지 앞의 숭선전 비석(1884) 등으로 모두 1394년 이후의 기록들이다.
넷째, 문헌기록상 한반도를 최초로 평정한 사람은 금(金)나라 장수인 포선만노(蒲鮮萬奴)다. “동진국은 즉, 동방 여진(女眞)의 의미이다. 금나라의 말기이다.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오늘날의 길림성 연길도(延吉道)와 조선 함경도의 땅을 차지하였다.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동하(東夏)라고 했다. 역시 동진(東眞)이라 했다. 후에 몽고가 멸망시켰다.” <고려의 강역 연구>(2023), pp.294∼295.
동진국(東眞國)을 세운 포선만노는 금나라의 장수로 정우(貞祐: 금나라 연호이며 1213∼1216) 3년에 천왕(天王)에 즉위했다. 국호를 대진(大眞)이라 하고 연호를 천태(天泰)라 했으며 한반도를 평정했다.
다섯째, 포선만노가 한반도를 평정한 것은 이성계가 한반도에 도읍을 정한 1394년보다 약 179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한반도는 고려의 변방으로 정치•행정•군사적 영향이 미치지 못한 오지(奧地)였기에 포선만노의 한반도 평정이 가능했다. 고려의 도읍지는 오늘날의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의 복양(濮陽)이다.
만약 고려의 도읍지가 한반도에 있었더라면 동진국이 1213∼1216년 사이에 어떻게 한반도를 평정할 수 있으며 그 같은 평정 사실은 <고려사>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포선만노의 한반도 평정 같은 내용이 없다.
여섯째, 트로이 전쟁(Troy War: 1250∼1200BC)에 참전한 이니어스(Aeneas)가 전쟁 후 이탈리아반도로 유랑하여 그의 자손이 BC753년 4월 21일에 로마(Rome)를 건국하였으며 시조(始祖)는 롸무얼러스(Momulus)다. 로마는 이탈리아반도(Italian peninsula)에 위치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BC753년 이전에 이탈리아반도에 누가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자(評者)의 합리적 추정으로는 롸무얼러스의 혈통이 아닌 일종의 토착민 소수가 BC753년 이전에도 이탈리아반도에 살았을 것이라 본다. 현생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시기를 약 20만년 전이며 이탈리아반도 역시 지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에도 4국이 대륙에 실존할 시기에 극소수의 토착민들이 살았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한반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다.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모든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는 약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자.
2025년 11월 지금 한반도 산악지대에 사람이 살까? 몇 명이나 살까? 어떤 사람이 살까? 어떻게 살까? 길조차도 없는 산악지대에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을까? 도둑놈들은 왜 산악지대에 숨을까? 지리산 정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울 명동을 구경하려 올 때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까? 등을 함께 생각하면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역사는 사실(事實)로 말하고 철학은 논리(論理)로 말하며 정치는 술수(術數)로 말하고 종교는 맹신(盲信)으로 말한다. 고로 기록 즉, 문헌에 없는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며 역사가 이닌 이야기를 역사인 것처럼 구성하다 보면 허구(虛構)의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논문 열람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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