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단군조선 위치에 관한 국내학술 논문 72편을 모두 확인해본 바 이들 학술논문들은 한결같이 한국역사학계의 통설이라고 하는 요동중심설, 대동강중심설, 이동설, 요서중심설의 범주를 넘지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학위논문 12편과 학술논문 72편 총 84편의 논문들이 주장, 비정, 추정하고 있는 단군조선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하북성 창려 동쪽에서 요녕성 요하의 서쪽인 요서와 동쪽인 요동 그리고 한반도 대동강과 평양에 이르는 지역으로 기술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발표된 단군조선의 위치에 대한 국내학위논문과 국내학술논문의 주장들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잡설(雜說)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단군조선의 강역을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양 최초의 사서이자 지리서인 <尙書(상서)/우공>을 시작으로 <여씨춘추/유시람>과 <회남자/지형훈>, 그리고 <주례/직방씨>를 검토해야 한다.
이들 네 문헌사료를 통하여 구주(九州)가 어디이며 기주(冀州), 유주(幽州), 그리고 동북(東北)의 위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고죽국(孤竹國)의 위치와 함께 요동, 요서(군) 그리고 단군조선의 핵심 하천인 패수(浿水)의 위치를 밝히는 순서로 이어진다.
지금부터 단군조선의 핵심영토는 산서성(山西省)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河南省) 하내(河內)였음과 단군조선의 강역은 섬서성 서안과 하남성 일부를 제외한 아시아 전 지역이 ‘삼한의 땅’인 한지(韓地)가 아닌 곳이 없었음을 문헌사료들에 근거하여 함께 고증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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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1부
II. 동북의 위치
1. 동북과 동북삼성의 차이점
동북삼성은 원래 동삼성(東三省) 또는 관동삼성(關東三省)이라 부르던 곳으로 청나라 말 북양정부(北洋政府) 시기인 1912년에서 1928년 사이에 산해관 밖의 봉천성, 길림성, 흑룡강성 삼성을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동북삼성의 동북은 단군조선 시기의 동북이 아니다.
단군조선과 함께 있던 서주(西周: 1046-771BC) 시기 주나라의 도읍지인 섬서성 호경(서안)을 기준으로 하여 동쪽은 청주, 서쪽은 옹주, 남쪽은 형주, 북쪽은 병주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황하가 굴곡하는 경도 110도와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의 북부 즉, 산서성(山西省)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를 동북(東北)이라 하였다.

동북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를 제시하면서 후술하겠지만 우선 <그림 1>에서 동북지역의 위치를 가늠해 보도록 하자. 오늘날의 동북삼성으로 알려진 봉천성, 길림성, 흑룡강성인 동북이 아님을 극명하게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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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2부
II. 동북의 위치
2. 동북에 기주와 유주가 위치
상고시대에 나타난 구주설(九州說)은 <尙書(상서)/禹貢(우공)>, <呂氏春秋(여씨춘추)/有始覽(유시람)>, 그리고 <淮南子(회남자)/墬形訓(지형훈)>이다. 동양 최초의 사서이자 지리서인 <상서/우공>의 구주는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량주(梁州), 옹주(雍州)이다.

<상서>에서 ‘기주(冀州)’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禹)는 땅을 나누고 산에 이르러 나무를 베고 높은 산과 큰 강에 제사지냈다. 기주는 호구산(壺口山)에서 시작하여 양산(梁山)과 기산(岐山)까지 다스렸고, 태원(太原)땅을 닦고 악산(岳山) 남쪽 기슭에 이르렀으며 담회(覃懷)땅의 일을 마치고 장수(漳水)가 가로지르는 곳에까지 이르렀다.
그곳 흙은 희고 부드러웠고 부세(賦稅)는 일 이등이 섞였고 밭은 오등 정도였다. 항수(恒水)와 위수(衛水)가 잘 다스려지자 대륙 호숫가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섬나라 오랑캐들은 여러 가지 옷을 바쳐왔다. 그들은 갈석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黃河)로 들어왔다.[가까운 우갈석산에 있는 가죽옷을 입은 도이가 황하에서 들어왔다.]”
라고 말하고 있다. <상서/우공>의 기주에 나타난 지명들인 태원, 호구산, 양산, 장수, 악산, 항수, 갈석산 등은 산서성에 있는 지명들이고, 기산은 섬서성과 산서성에 있는 지명이며, 담회와 위수는 황하북부 하남성 일명 하내(河內)에 있는, 산서성과의 경계에 있는 지명이다.
이들 모든 지명들은 황하의 동쪽인 하동(河東)으로 황하 근처라는 것이다. 또한 당(唐)나라의 지리서인 <元和郡縣圖志(원화군현도지)>에서도 ‘하동지방이 기주’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인용문에 나타난 지명들의 위치 분포로 볼 때 기주는 하동인 산서성과 황하북부 하남성 즉 하내(河內)일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하북, 요녕, 길림, 흑룡강성은 기주가 될 수 없다. 이들 지역은 황하변이 아니기 때문이며 산서성과 하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주는 반드시 황하변이여야 한다. <상서/우공>과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기록하고 있는 기주 지역과 황하의 위치를 다음 <그림 2>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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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3부
II. 동북의 위치
기주의 위치가 산서성 남부와 하내임을 밝혔으니 또 다른 문헌사료를 통하여 기주의 위치가 산서성이 확실한지 재검토하면서 유주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해보자. 전국시기인 BC239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여씨춘추/유시람>의 구주에서 기주와 유주를 살펴보겠다.
“황하와 한수(漢水) 사이로 예주(豫州)이며 주(周)국이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冀州)이며 진(晉)국이다. 황하와 제수(濟水) 사이로 연주(兗州)이며 위(衛)국이다. 동쪽으로 청주(靑州)이며 제(齊)국이다. 사수(泗水)가로 서주(徐州)이며 노(魯)국이다. 동남으로 양주(揚州)이며 월(越)국이다. 남방으로 형주(荊州)이며 초(楚)국이다. 서방으로 옹주(雍州)이며 진(秦)국이다. 북방으로 유주(幽州)이며 연(燕)국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섬서성 서안이나 하남성 낙양에서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구주를 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용문에서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란 경도 110도와 위도 35도에서 황하가 꺾이는 지점으로 세로로 흐르는 황하 우측과 가로로 흐르는 황하 위쪽인 산서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산서성이 ‘ㄴ’ 자처럼 황하로 둘러싸여 황하의 양쪽 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황하의 양쪽 사이가 기주라고 기술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禹貢指南(우공지남)>을 비롯하여 무려 27종에 다른다. 따라서 기주는 황하 사이로 오늘날의 산서성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산서성이 황하의 동쪽인 하동지방이며 앞의 <원화군현도지>의 기록대로 ‘하동지방이 기주’임으로 결국 기주가 산서성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요약하면 <여씨춘추/유시람>에서 말하는 기주 역시 <상서/우공>이 기록하고 있는 기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역으로 산서성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황하의 양쪽 사이로 기주의 위치를 다음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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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4부
II. 동북의 위치
<회남자/지형훈>에는 구주를 신주(神州), 차주(次州), 융주(戎州), 엄주(弇州), 기주(冀州), 태주(台州), 제주(泲州), 박주(薄州), 양주(陽州)로 나누고 있다. <회남자>에도 기주는 중앙(中央)이라 방위를 정하고 있다. 중앙은 황하가 ‘ㄴ’자처럼 꺾이는 곳의 섬서, 산서, 하남성을 뜻한다.
이렇게 1차사료라고 하는 <상서>, <여씨춘추>, <회남자>는 구주(九州)의 위치 표현이 사료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기주는 황하를 중심으로 산서성 지역이라는 데는 이들 세 사료가 일치하고 있다.
9주를 기록하고 있는 이들 세 문헌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9주 중 공통된 주는 기주와 양주뿐이고 나머지 7주는 각각 달리 서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주의 위치가 산서성 남부와 하내임을 분명하게 밝혔으므로 이제 유주의 위치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런데 <여씨춘추/유시람>에서 유주가 처음 나타남으로 유주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주례/직방씨>가 언급하고 있는 구주를 검토해 보자.
“동남은 양주(揚州), 남쪽은 형주(荊州), 황하의 남쪽은 예주(豫州), 동쪽은 청주(靑州), 황하의 동쪽은 연주(兗州), 서쪽은 옹주(雍州), 동북은 유주(幽州), 하내는 기주(冀州), 북쪽은 병주(幷州)라 부른다.”
라고 하여 동북방향을 유주라 부르고 있다.
<직방씨」> ‘천하의 지도(地圖)를 관리하는 곳’으로 주나라 당시 서주(西周)의 도읍지인 섬서성 호경(서안)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나타낸 것이다.
<주례/직방씨>에 의하면 <상서/우공>과 <여씨춘추/유시람>에서 언급한 기주인 산서성 남부와 하내의 일부가 유주가 되고 하내(河內)의 일부는 그대로 기주임을 알 수 있다. 유주의 위치를 지도로 표시하면 다음 <그림 4>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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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5부
II. 동북의 위치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유주는 황하와 인접한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 하내 일부를 일컫는 것으로 요약된다.
<주례/직방씨>에서 “그 명산은 의무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주라고 하는 산서성 남부와 하내에 의무려산이 위치한다면 이곳을 동북이라 했음을 재차 증명하게 되며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 될 것이다.
장황(章潢)이 지은 <圖書編(도서편)>에 의무려 지역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요동은 우공의 청주 기주 지역으로 순이 기주인 동북(의무려 지역)을 나누어 유주로 하였는데 즉, 오늘날의 광녕(廣寧)의 서쪽 지역이다. 청주의 동북을 영주로 하였는데 즉, 광녕의 동쪽 지역이다”라고 적고 있다.
요순시절의 순임금이 기주인 동북 즉, 산서성 남부와 하내의 지역을 나누어 유주로 하였는데 오늘날의 광녕(廣寧)의 서쪽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광녕이 어디인지 위치를 찾아보자.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광녕은 오늘날의 하남성 수무현(修武縣) 동남”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남성 수무현 동남”에 주목하기 바란다. 수무현은 황하 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위치한 지명으로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칠 때 나타난 지명이며 대륙에는 오직 이곳에만 수무란 지명이 존재한다. 지도상에 수무와 광녕의 위치를 나타내면 다음 <그림 5>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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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16부
II. 동북의 위치
광녕은 기주지역이었는데 광녕을 기준하여 광녕의 서쪽은 유주라 하고 광녕의 동쪽은 영주라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광녕의 서쪽인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하내 일부 지역으로 기주이고 유주이며 동북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광녕의 서쪽 지역인 유주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 6>과 같다.

명산인 의무려가 있는 동북지역이 유주라고 기록한 문헌사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書蔡氏傳旁通(서채씨전방통)>, <通典(통전)>, <五禮通考(오례통고)>, <禮書綱目(예서강목)>, <周官集注(주관집주)>, <周禮纂訓(주례찬훈)>, <周禮述註(주례술주)>, <欽定周官義疏(흠정주관의소)>,
<周禮註疏刪翼(주례주소산익)>, <周禮全經釋原(주례전경석원)>, <周禮傳(주례전)>, <周禮集說(주례집설)>, <周禮訂義(주례정의)>, <周官總義(주관총의)>, <周禮詳解(주례상해)>, <周官新義(주관신의)>, <周禮註疏(주례주소)>, <禹貢錐指(우공추지)>, <禹貢長箋(우공장전)>, <陳氏尙書詳解(진씨상서상해)>,
<尙史(상사)>, <逸周書(일주서)>, <遼史(요사)>, <晉書(진서)>, <前漢書(전한서)>, <山東通志(산동통지)>, <畿輔通志(기보통지)>,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 <圖書編(도서편)>, <玉海(옥해)>, <群書考索(군서고색)>, <藝文類聚(예문유취)>, <玉芝堂談薈(옥지당담회)>,
<春明夢餘錄(춘명몽여록)>, <唐開元占經(당개원점경)>, <欽定授時通考(흠정수시통고)>, <讀書劄記(독서차기)>, <元朝典故編年考(원조전고편년고)>, <歷代帝王宅京記(역대제왕택경기)>, <春秋分記(춘추분기)>, <皇王大紀(황왕대기)>, <經稗(경패)>,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 <十一經問對(십일경문대)>, <書纂言(서찬언)> 등
모두 46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문헌사료들이 동북인 유주 즉, 산서성 남부와 하내에, 그 땅의 명산인 의무려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내에 있는 이 의무려산은 일명 광녕산 혹은 운태산이라고 했으며 당나라 시기에는 천문산이라 불렀다.
광녕은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비정하거나 추정한 하북성 천진 부근도 아니고 의무려산 역시 하북성이나 요녕성에 있지 않았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읽지않고 교차확인 없이 명•청 시기 왜곡된 일부 위서(僞書)에 근거 위치를 추적한 중대한 오류 때문이다. 역사왜곡을 위한 후대의 날조로 하북성이나 요녕성 지역은 동북도, 기주도, 유주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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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