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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39~44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09-29 (일) 17:25:54



<오월춘추>에는 왕검단군 시기와 동시대인 요•순 시대부터 춘추 시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단군조선의 강역을 추적하려면 반드시 이 문헌을 검토해야 한다.

 

월나라 이전 군주인 무여(無余)는 하우씨의 후예로 월땅에 봉해졌다. 우(禹)의 아비 곤(鯀)은 전욱(顓頊)의 후손이다. ...순(舜)은 순행길에 나서서 곤이 치수(治水)를 위해 9년 동안 애쓴 모양을 볼 수 없었다. 우산(羽山)에서 곤을 죽였다. ...

 

우는 아버지가 치수의 공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장강(長江)의 물줄기를 따르고, 황하(黃河)를 거슬러 오르며, 제수(濟水)를 오르내리고, 회수(淮水)를 살피며 노신초사(勞身焦思)하며 치수에 힘썼다. ... 7년동안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 않았고, 집앞을 지날 때도 집에 들르지 않았으며, 관을 벗어 걸어놓은채 돌아보지 않았고 신발을 벗어놓은 채 신지않고 뛰어다녔으나 치수의 공을 이루지 못해 숙연히 근심과 걱정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황제중경력(黃帝中經曆)>을 생각하고 이를 펼쳐보니 성인(聖人)의 기록에 이르기를 ‘구산(九山) 동남쪽에 천주(天柱)가 있는데 완위산(宛委山)이라 한다. 적제(赤帝)께서 계신 대궐의 바위 꼭대기에 문옥(文玉)으로 받치고 벽석(壁石)으로 덮어놓은 금간(金簡)이 있는데 청옥(靑玉)에 글씨를 새겼고 백금으로 엮었으며, 그 문자는 모두 록자(琭字)로 썼다’고 하였다.

 

우는 곧 동쪽으로 순행하여 형악(衡嶽)에 올라 백마의 피로써 제사를 지냈다. ...꿈속에서 오색 수를 놓은 비단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났다. 그는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하면서 말했다. ‘제(帝)[왕검]께서 문명(文命: 글로쓴 명령)을 이곳에 보내 사역(使役: 사람을 부려서 일을 시킴)하게 함을 듣고 그대의 형편을 살피노라 아직은 신서(神書)를 얻을 수 있는 때가 아니나 그대에게 그 기일을 일러줄 것이니, 이제 한숨을 쉬지말라, 후에 오늘을 잊지 말고 부부산(覆釜山)의 일을 노래하라.’

 

창수사자는 동쪽으로 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부루] 산에 있는 신서를 얻으려거든 황제산(黃帝山)[부루산] 바위 아래에서 몸을 재계(齋戒)한 후 3월 경자일(庚子日)에 산에 올라 돌을 빼어보면 금간지서(金簡之書)가 있을 것이다.’ 우는 공손히 물러나 산에서 내려왔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0부



 


인용문에서 “현이(玄夷) 창수사자 ... 제(帝)께서 문명(文命)을 이곳에 보내 ... 아직은 신서를 얻을 수 있는 때가 아니나 ... 후에 오늘을 잊지말고 부부산(覆釜山)의 산의 일을 노래하라. 경자일에 산에 올라 돌을 빼어내면 금간지서가 있을 것이다”에 주목하면서 주밀하게 분석해보자.

 

우선 ‘제(帝)’란 ‘임금’으로 단군왕검을 일컫는 말이며 ‘현이(玄夷)’란 황하의 북쪽에 살고 있는 동이족이라는 것이다. 현(玄)이란 글자는 ‘검다’의 뜻으로 북쪽 방향을 나타낸다. 부부산(覆釜山)이란 단군왕검의 고향인 단향(壇鄕)이 위치한 산서성 남부 왕옥산(王屋山)을 뜻하며 본 인용문에서는 부루산을 표현한 것으로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라를 세운 우(禹)는 단군조선의 왕검의 아들인 태자 부루에게서 금간옥첩을 직접받아 치수에 성공을 했으나 지나인들은 이적(夷狄)이라 하는 단군조선에서 우가 금간옥첩을 얻어 치수했다고 인정하기가 싫어 황제[헌원]를 등장시키고 꿈에 현이인 창해사자를 만났다고까지 각색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은 예수(濊水)이자 연수(沇水)이고 제수(濟水)이며 패수(浿水)가 발원한 왕옥산이 위치한 산서성에 있던 나라이며 창해(蒼海)란 왕옥산 남쪽 황하를 일컫는 말이다. 인용문에서 나온 부부산(覆釜山)은 황제산이 아니라 부루단군의 산임을 알 수 있다.

 

<산해경/대황북경>에 “동북인 황하밖에 거친 땅으로 황하와의 사이에 부우산(附禺之山)이 있다”라는 부우산과 같은 산으로 부루산, 부우산, 부부산, 부함산(불함산), 방산의 여러 이름을 가진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왕옥산이다.

 

황제는 BC2697년경 사람이고 부루단군은 BC2300년 인물이니 시간적으로 황제헌원이 될 수 없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은 공손(公孫)이라고도 하며 염제신농씨의 동생인 욱사(勖嗣) 소전국군(少典國君)의 제후로 그로 인하여 공손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후에 희성(姬)으로 개명한 사람이다. 희(姬)씨 성을 받은 사람은 첩의 소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황제헌원은 염제신농씨의 동생 욱사의 첩의 소생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원(공손)의 고향은 신정시(新鄭市) 서북으로 오늘날의 하남성 개봉을 뜻한다. 개봉은 황제헌원의 고향도 되지만 하나라를 세운 우(禹)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황제를 끌어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인용문에는 우가 7년 동안 치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관자>에는 5년, <묵자>에는 7년, <맹자>에는 8년, <사기>에는 13년으로 달리 기술하고 있다. <묵자>의 기록이 <오월춘추>의 기록과 일치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1부



 


우(禹)가 7년 동안 치수를 한 행적으로 “장강(長江)의 물줄기를 따르고, 황하(黃河)를 거슬러 오르며, 제수(濟水)를 오르내리고, 회수(淮水)를 살피며 노신초사(勞身焦思)하며 치수에 힘썼다”라는 대목의 일부에 대해 사료비판이 요구된다.

 

“장강의 물줄기를 따르고”의 장강은 일명 양자강이라 하며 6,300km의 대륙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사천성을 지나 중경시(重慶市), 호북성, 안휘성, 그리고 강소성을 경유하여 황해로 진입하는 강이다.

 

우가 장강을 치수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역사 왜곡이다. 호북성, 안휘성, 강소성은 단군조선인 변한의 강역으로 우가 치수할 필요가 없는 지역이다. 첫째, 우의 고향은 하남성 개봉(開封)이며 둘째, 구산(九山)은 절강성에 있는 회계산, 산동성에 있는 태산, 섬서성에 있는 태화(화산)와 기산 그리고 왕옥산, 수산, 태행산, 양장, 맹문산은 산서성과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위치한 산들로 “구산 동남쪽에 천주가 있는데 완위산이라 한다”는 말은 논리성이 없다.

 

회계산은 절강성 화음현 남쪽에 있는 산으로 회계산의 동남은 황해바다 이거나 아니면 대만을 일컫는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왜곡을 하다보니 이같은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우공이 치수(治水)한 하천은 4곳으로 이천(伊川: 伊水), 낙수(洛水), 영(瀛: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동해이자 발해), 간수(澗水) 모두 하남성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에 있는 4곳의 짧은 하천의 범람에도 골몰한 사람이 어찌 단군조선의 영토 안에 있는 장강의 큰 하천의 치수를 담당할 수 있겠는가. 가능성도 설득력도 그리고 합리성도 찾기 어렵다.

 

우의 고향인 하남성 개봉에서 황하(黃河)만 건너면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왕검단군의 태자 부루의 고향 단향(壇鄕)이 있고 부루산으로도 불린 왕옥산이 위치한다. 따라서 <오월춘추>가 기록한 ‘장강’, ‘황제중경’, ‘황제산’ 등은 역사 왜곡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2부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지금부터 산서성 남부에 예(濊)라는 지명이 위치했었는지 찾아보기로 하자.

<畿輔通志(기보통지)>에 “예하(濊河)는 평산현 북쪽에 있는데 방산(房山)에서 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호타(滹沱)로 들어간다. 방산은 평산현 서북에 있고 예수(濊水)가 나온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예(濊)라는 물이 방산에서 출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산(房山)에 대해 알아보자. “수도경에 이르기를 방산 산봉우리에 왕모사당이 있는데 세속에서 왕모산(王母山)이라 한다. ...예수(濊水)가 흘러나온다”라고 적고 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도 “방산(房山)이 왕모산(王母山)”이라 하였다. 왕모산에 있는 ‘골짜기’, ‘굴’, ‘동굴’의 의미인 왕모동(王母洞)에 관하여 “산서성 양성현에 있는 왕옥산(王屋山)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보면 예수(濊水: 예하)라는 하천이 산서성 남부에 있는 왕옥산에서 발원한다는 것이다. 천연지형물인 예수(濊水)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예(濊)라는 이름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왕옥산 부근이 왕검단군의 고향인 단향이 있었고 왕옥산에서 예수(연수, 제수, 패수)가 발원한다 하니 단군조선을 예맥조선이라 명명한 것은 당연하다. 역사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왕모사당, 왕모산, 왕모동이라 적고 있지만 ‘모’를 ‘검’으로 바꾸면 왕검사당, 왕검산, 왕검동이 되고 또 ‘모’를 ‘옥’으로 대체하면 왕옥사당, 왕옥산, 왕옥동이 되어 이해가 더욱 명확해짐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3부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예읍(濊邑) 즉, 예(예맥조선)의 도읍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고성(故城)은 지금의 하간부(河間府) 염산현(鹽山縣) 서북으로 옛 예읍(濊邑)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염산현의 기록을 보자. “춘추 제나라 무체읍(無棣邑)이다. 한나라가 고성현(高城縣)을 두었다. ...지금의 이름은 구성진(舊城鎭)이다. 수나라가 염산(鹽山)으로 바꾸었다”라 하였다.

일부가 왜곡되어 있다. 무체현은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계속해서 구성진에 관한 기록을 보자. “하북 고양현 동쪽에 있다. 즉 고양고성(高陽故城)이다. 당시의 저용하빈(猪龍河濱)이다”라 하고 있다.

 

다시 저용하를 찾아보자. “하남성에 있다. 즉 연수(沇水)이다. 연수조를 보라”고 적고 있다.

연수를 찾아보았다. “산서성에 있으며 수원(水源)이 두 곳이다. 동쪽 수원은 양성현 서북 간봉령(干峯嶺)이다. 서쪽 수원은 원곡현(垣曲縣) 동북 역산(歷山)이다. 두 물이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황하로 들어간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4부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山東通志(산동통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제수(濟水)는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한다. ...공안국(孔安國)의 주(注)에 이르기를 제수의 원천(源泉)은 연수(沇水)가 흘러가서 제수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맞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연수(沇水)는 회주(懷州) 왕옥현(王屋縣) 북쪽 왕옥산(王屋山) 정상 기슭의 바위샘이 고여서 흐르지 않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현(縣)의 북쪽 3리에 이르며 그 발원지는 여럿으로 흘러넘쳐 못에 이르며 동남쪽으로 흘러 사수(汜水)가 되었다고 하였다. ...

 

<수경주(水經注)>에 이르기를 제수(濟水)는 동원현(東垣縣)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하는데 첫 이름은 연수(沇水)라고 하며 온현(温縣)에 이르러서 비로소 제수(濟水)라 한다고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연수가 제수이며 왕옥산에서 발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용하, 연수, 제수, 패수, 추수, 격수 등은 모두 예수(濊水)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며 왕옥산에서 출원하는 하천으로 요약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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