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댓글: 천축국이란 국명이 없다는 것인가요?
천축국 시기의 나라 즉 인도에서는 석가가 있었다는 나라는 있고 석가도 현 인도에 있었다고는 주장하지요?
논평: 우선 질문이 명확하지 않지만, 천축국(天竺國)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약 198종 415권에 달하며 이들 문헌들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인도(印度: India)에는 천축국이 없었다.
또 인도(印度)의 역사서에서도 역시 천축국(天竺國)이란 나라가 인도에 있지 않았음도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설법(說法)을 했을 것이라는 개연성(蓋然性)은 영취산(靈鷲山)이란 산 때문이며, 영취산 때문에 인도에 천축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
<한한대자전>(2000) p.2228.에 “영취산(靈鷲山)은 불교 중인도(中印度)에 있는 산 이름. 석가여래가 설법(說法)한 곳. 산 모양이 독수리 같다는 데서, 또 일설에는 독수리가 많이 산다는 데서 지은 이름이라 함”에서 기인된다. 취(鷲)는 ‘독수리’라는 의미의 글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도에 있다는 영취산(Gridhakuta)이란 산 이름 때문에 인도에 천축국이 있었다고 알려진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영학파는 석가모니가 인도에 가서 설법을 했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 인도에 있다는 영취산은 네팔 동남 국경 지역으로 당시 천축국의 강역인 서장성 남부와 가까운 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절강성 항주시(杭州市) 영은산(靈隱山) 남쪽에 천축산(天竺山)이 있으며 영은산 가운데에 천축사(天竺寺)가 있음도 확인된다. 이곳 절강성의 영은산과 인도의 영취산 사이에 비밀이 있어 보인다. 영은산의 은(隱)은 “숨기다”, “감추다”란 의미이기 때문에 그렇다.
천축국의 위치는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제56부>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지금의 감숙성, 청해성, 사천성, 서장성 지역이다. <후한서>를 필두로 하여 <락서>, <양서>, <남사>, <후한서보일>, <양한박문>, <당회요>, <예문유취>, <태평어람>, <책부원구>, <어정연감류함>, <격치경원> 등에 “天竺國在月氏東南數千里亦名身毒國(천축국재월씨동남수천리역명신독국) 천축국은 월씨국(월지국)의 동남에 있는 수천리이고 역시 신독국이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월씨국(월지국)은 감숙성 돈황과 기연산 사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윌씨국 동남이란 감숙성, 청해성, 사천성, 그리고 서장성 일대를 지칭한다. 또 넓이가 3만리라면 지금의 중공 땅 전체에 해당하므로 절강성은 천축국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비록 허풍이기는 하나 “[천축국의] 넓이가 3만리인데 나누어 오천축국이라 한다(方三萬里中分爲五天竺國)”라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은 <태평환우기>, <당회요>, <예문유취>, <어정연감류함> 등이다. 따라서 김수로왕이 세운 가락국(가야국)이 있던 절강성의 영은산은 천축국과 관련된 산이 된다.
가락국(가야)이 불교의 나라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도의 허황옥 이야기”는 이러한 이유에서 각색된 것으로 허황옥은 인도 사람도 아니고 인도에서 오지 않았으며 천축국이 있던 서장성 아리지방(阿里地方: 아노착)의 아유타국에서 사천성 보주(普州: 안악)를 거쳐 절강성(浙江省)에 있던 가락국(가야)에 온 사람이다.
허황옥이 인도에서 ‘돌로 만든 배(石船)’를 타고 망망대해 인도양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 한반도 경상남도 김해(金海)에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을 했다고 믿고있는 사람들은 허구의 소설을 신봉(信奉)하는 부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인도에 천축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든지 검증(檢證)하고 고증(考證)할 수 있도록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하기 바란다. 역사는 사실(事實)로 말하는 학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학파(T.K.School)의 논문들과 저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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