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506)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7)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51)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476)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4)
·훈이네의 미국살이 (117)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총 게시물 476건, 최근 0 건 안내
이전글  다음글  목록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제45~50부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4-10-13 (일) 23:03:14

단군조선 강역연구 45부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예(濊) 역시 조선땅이다”라고 <太平寰宇記(태평환우기)>와 <通典(통전)>이 기록해주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기보통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경주집석정와>, <산동통지>, <태평환우기>, <통전> 등의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濊)는 예수(濊水: 예하)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예수를 연수(沇水)라고 하였는데 방산(房山)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하며 황하로 들어가는 강이다.

 

예의 도읍지인 예읍(濊邑)은 예수가 출원하는 왕옥산 서쪽, 즉 하간부였던 지금의 원곡(垣曲)에 있었던 염산현 서북에 있는 지역이다.

 

지나인들은 역사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문헌사료의 곳곳마다 기록을 왜곡 날조하고 있지만,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면 옛 지리지명을 찾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필자는 예읍이 단군조선 및 고구려의 평양성이 있던 지금의 산서성 임분(臨汾)이라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예맥(濊貊)과 관련된 지리지명은 오늘날의 산서성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들 지명들을 지도에 표시하면 다음 <그림 15>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6부

 

나. 예맥조선은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라는 하천으로 인하여 예맥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동쪽 요새인 원곡(垣曲)을 돌아 예맥조선에 이르렀으며 이곳은 소위 북쪽경계로 융적(戎狄)이 있는 곳이다”라 하여 원곡과 예수 사이를 예맥조선이라 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곡을 돌아 예맥조선에 이르렀다”는 기록의 문헌사료는 많다.

 

예맥의 예(濊)자는 ‘물이 맑고 깊다’는 의미이고, 맥(貊)은 ‘북방 민족’이란 의미이며 지나인들은 맥(貉)이란 글자를 함께 병용하였다.

 

앞의 ‘나항’의 인용문에서 알아보았듯이 “연수[예수]는 ... 왕옥산 정상 기슭의 바위샘이 고여서 흐르지 않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라고 하여 예라는 글자의 뜻처럼 ‘물이 맑고 깊음’을 알 수 있고, 가로로 흐르는 황하 이북을 북방(동북)이라 하였으니 이곳에 사는 민족을 맥족이라 하였음은 타당하다. 그리고 맥족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약 89종에 이른다.

 

BC2333년에 단군왕검이 조선이란 나라를 세우고 구이(九夷)라고 알려진 9형제를 규합하여 연방국을 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예(濊)에서 예맥, 예맥조선이 나타나고 조선에서 주신(州愼), 숙신肅愼), 식신(息愼), 직신(稷愼) 등의 이름이 생겼다.

 

<吳越春秋(오월춘추)>의 기록을 보면 조선을 주신(州愼)이라고 하였고 숙신이란 이름은 주(周)나라 초기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당요(唐堯)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나서 당요가 하우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게 했다. 우(禹)가 8년 동안이나 치수를 하지 못하고 걱정하여, 남악(南嶽)•형산(衡山)에 가서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들여 성공하기를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하는 사람이 우에게 말하기를, ‘구산(九山) 동남쪽의 도산(塗山)에 신서(神書)가 있으니 석달 동안 재계(齋戒)하고 그것을 꺼내보라’ 하므로 우가 그 말대로 금간옥첩(金簡玉牒)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五行通水)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려 성공하고,

 

이에 주신(州愼)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井田)을 제정하고 율도량형(律度量衡)의 제도를 세웠다”고 하였다.

 

주나라 초기에 나타난 숙신(肅愼)에 대해서 알아보자. “숙신국이 동북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尙書句解(상서구해)>, <尙書精義(상서정의)>, <春秋分記(춘추분기)>, <書傳(서전)>, <胡氏尙書詳解(호씨상서상해)> 등으로 주나라가 있던 섬서성 호경(서안)에서 본 동북(東北)에 숙신국이 있었다고 적고 있어 단군조선을 숙신(국)이라 했음을 입증(立證)해주고 있다.

 

한국역사학계에서는 숙신국이 흑룡강성이나 길림성 장백산 부근이나 길림성 백두산 부근으로 주장, 비정, 추정해오고 있다. 그러나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숙신국은 동북이라 하는 황하북부 산서성 남부와 하내에 위치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7부

 

다. 공자가 살고 싶어 한 단군조선

 

<漢書(한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도(道)가 행해지지 않음을 슬퍼하여 황하에 배를 띄워 구이가 살고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 대해 안사고(顏師古)는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황하)에 뜰까하니 나를 따를자는 자유일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바다(황하)에 뗏목을 띄워 구이의 나라에 간다”는 <書經(서경)>의 기록은 두 곳에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황하)에 뜰까하니(황하로 갈것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자유일 것이다”로 <서경/공야장>에 나오고,

 

“공자가 구이 땅에 가서 살고자 하니 누가 말하기를 더러울텐데 어찌 하시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사는데 어찌 더럽겠는가”라고 <서경/자한>편에 나온다.

 

여기서의 해(海: 바다)란 황하를 일컫는 말이다. 하남성에 있던 노(盧)나라에서 산서성 남부 왕옥산 근처에 있던 왕검단군의 나라를 구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역사학계의 통설대로 만약 단군조선의 중심지역이 하북성 창려 동쪽이나 요녕성 요하(遼河)의 양쪽이나 한반도 대동강이라면 공자는 하남성 노나라에서 산동성 산동반도까지 가서 그곳에서 뗏목을 띄워 황해 바다를 항해하여 요동만으로 진입한 뒤에 하북성으로 또는 요하를 타고 더 올라가거나 또는 한반도 대동강까지 계속 항해해야 할 것으로 추측된다. 넓은 황해 바다에 뗏목을 타고 간다는 것이나 뗏목으로 먼 곳을 항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논리성도 설득력도 합리성도 찾아볼 수 없다.

 

공자가 가고싶어 한 구이의 나라 단군조선은 하북성, 요녕성, 한반도가 아니라 가까운 곳으로 황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황하북부 산서성(山西省) 남부에 위치한 것이다.

 

구이(九夷)의 종류에 대해 <淮南子(회남자)> 주(注)에서는 ⑴ 현도, ⑵ 낙랑 ⑶ 고[구]려 ⑷ 만식 ⑸ 부유(부여) ⑹ 소가 ⑺ 동도 ⑻ 왜 ⑼ 천비 등으로 분류하지만 <後漢書(후한서)/동이열전>에서는 ⑴ 견이(畎夷) ⑵ 어이(於夷) ⑶ 방이(方夷) ⑷ 황이(黃夷) ⑸ 백이(白夷) ⑹ 적이(赤夷) ⑺ 현이(玄夷) ⑻ 풍이(風夷) ⑼ 양이(陽夷)로 나누고 있다.

 

이들 구이를 통합하여 하나의 단일 왕조인 조(朝)를 세운 최초의 임금이 바로 단군왕검이다. 공자가 살던 노나라와 황하를 건너 위치한 구이의 나라인 단군조선의 중심 지역인 산서성 남부와 하내를 다음 <그림 1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48부




<그림 16)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주나라 무왕이 은(상)을 멸하고 그 땅인 하남성에 동생들을 제후에 봉했는데 셋째 아우인 주공단(周公旦)에게 봉한 나라가 바로 노(魯)나라이며 공자는 노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노나라에는 도(道)가 행해지지 않아 공자는 뗏목을 타고 황하를 건너 구이(九夷)의 나라 단군조선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황하북부는 단군조선의 핵심 영토로 황하 북부에 위치한 은허(殷墟)에서 발굴되었다는 갑골문을 포함한 청동기나 분묘는 단군조선의 것으로 은나라 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증해 보자.

1899년 왕의영(王懿榮: 1845-1900)이란 금속학자이며 골동품 수집가가 북경 시내의 한 한약방에서 구입한 용골(龍骨)에 고문자(古文字)를 우연히 발견하고 이것을 해독하기 위해 많은 양의 용골을 구입했다.

1900년 지나(支那)의 의화단(義和團) 사건에 왕의영이 사망하고 유악(劉鶚: 1857-1909)이라는 사람이 이들을 입수하여 금석학자인 나진옥(羅振玉: 1866-1940)에 의해 이 용골들이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 소둔촌(小屯村)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둔촌은 전설상의 은나라 도읍지였다고 추측하고 그 후 왕국유(王國維: 1877-1927)에 의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는데 왕국유가 상(商)의 반경(盤庚)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 은(殷)의 도읍지라고 주장하였다.

1928년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1986년까지 약 15만 건의 갑골이 발굴되었다. 유적은 왕의 분묘와 귀족의 분묘라고 여겨지는 규모의 것으로 다수 있었는데 이 유적은 은왕조의 분묘로서 은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0부

 

2. 평양성, 왕험성, 왕검성의 위치

 

왕검단군의 신설(神說)은 삼신(三神)과 오제(五帝)인데, 삼신은 태일(太一: 진한), 천일(天一: 마한, 우현왕), 지일(地一: 변한, 좌현왕)이라 하여 왕검 자신이 태일로 진한이 되고 변한과 마한으로 하여금 왕검 자신을 보좌하는 우현왕과 좌현왕으로 정하여 인간 세상의 제도를 창시하였다.

 

<사기/封禪書(봉선서)>에도 “삼일신은 천일, 지일, 태일이며 그중 태일이 가장 존귀하다”고 하였다. 오제는 동, 서, 남, 북, 중앙으로 태일을 보좌한다. 단군조선이 진한, 마한, 변한으로 된 것은 “경자 93년(BC2241) 천하의 땅을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삼한은 64족을 포함하였다”라고 <단군세기>에 기록이 보인다.

 

한(韓)이란 글자는 유목민이나 유목민이 사는 땅을 의미한다. 그러나 파생하여 임금이나 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치 한(忓), 한(汗), 한(扞), 간(干) 등이 임금이나 왕으로 사용된 용례와 같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여 ‘干’을 왕의 호칭으로 사용되었음은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추장이나 돌궐의 임금을 호칭할 때 ‘汗’이라 했음도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이와 같이 왕검단군이 진한이 되고, 웅백다(熊伯多)를 마한이라 하고, 치두남씨(蚩頭男氏)를 변한으로 삼아 우(虞: 순임금)를 감독하게 하였으며 그 후 제22대 색불루단군(1285-1237BC) 때에 비로소 삼조선 즉 진조선(진한), 막조선(마한), 번조선(변한)이라 하였다.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에 “색불루단군 때인 BC1285년 5월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을 삼조선이라 했다. 조선이란 관경(管境)을 말한다”라 적고 있다.

 

진수가 지은 <삼국지>에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고 ... 한에는 세 종류가 있으며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은 옛 진국(辰國: 단군조선)이다. 마한은 [삼한 중에서] 서쪽에 위치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대방군이 어디에 위치했었는지 알아보자. “대방현은 한나라 때 낙랑군에 속했다. 공손도가 대방군을 두었다. 두우(杜佑)가 말하기를 건안(建安: 196-200) 중에 공손강이 둔유(屯有)을 나누어 염현(鹽縣)이 있는 남쪽 거친 땅에 대방군을 두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염현의 위치를 알아보자. “염지는 산서성 해현 동쪽에 있다. 안읍현 남쪽이다. ...두우의 주(注)에 염(鹽), 염지(鹽池)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우 때문에 대방군의 위치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다. 기주이자 요동이라 하고 유주이면서 요서인 수양산이 위치한 산서성 남부 운성염지의 남쪽이 바로 대방군이었다.

 

이들 지명은 모두 당시 바다(海)라고 하는 황하와 인접한 지역이다. 이곳 산서성 남부에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초기의 왕성(王城)이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대방군의 위치를 지도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 18>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이전글  다음글  목록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