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평양성의 위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읍(濊邑)은 예맥조선 즉,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예수(濊水)가 발원하는 왕옥산 서쪽 즉, 하간부였던 지금의 원곡(垣曲)에 있던 염산현 서북에 위치한 지역이다.
염산현(鹽山縣) 서북지역은 오늘날의 산서성 임분시로 평양이란 땅이며 이곳을 예읍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의 평양성에 대해 “단군왕검은 당요(唐堯)가 즉위한 지 50[25]년이 되는 경인[무진]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평양성은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으로 태일(太一)인 왕검단군 자신이 거주하며 직접 다스리던 곳이며 후에 고구려의 평양성이고 대진(大震)의 서경[중경]이며 고려의 서경이 된 지역이다.
당나라 위징 등이 지은 <수서>에 “배구가 앞서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를 봉(封)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 요동(遼東)을 통솔하였다”고 하여 고죽국인 산서성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구당서>와 <신당서>에도 똑같이 적고 있다.
“한(漢)나라 이전에는 조선(朝鮮)이라 하였다”란 조선은 단군조선이며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이어받은 나라로 고구려가 평양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기록은 <명사>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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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3부

가. 평양성의 위치
<明史(명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朝鮮)은 기자(箕子)에게 봉(封)하여 준 나라이다. 한(漢)나라 이전에는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일찍이 연(燕)나라 사람 위만에게 점거되어 있었으나, 한무제가 이를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토의 사군을 설치하였다.
한(漢)나라 말[초]에 부여(扶餘)사람 고씨(高氏)가 그 땅을 차지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로 고쳤다. 혹은 고구려(高句麗)라고도 한다.
평양(平壤)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곧 낙랑(樂浪)의 땅이였다. 그 뒤, 당(唐)나라에 격파되어 동쪽으로 옮겨 갔다.
후당(後唐) 때 왕건(王建)이 고씨를 대신하여, 신라, 백제의 땅을 겸병하고 송악(松岳)으로 옮겨 동경(東京)이라 불렀고,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그 나라는 북으로 거란(契丹)과 인접하였고, 서쪽에는 여직(女直), 남쪽에는 일본이 있었다. 원(元)의 지원(至元) 연간(1335-1340)에 서경(西京)(平壤)이 내속(內屬)되자 동녕로총관부(東寧路總管府)를 설치하고 자령(慈嶺) 끝으로 경계를 삼았다.”
라고 하여 고죽국(孤竹國)이 있었던 산서성(山西省)을 고구려가 그 땅을 차지하였으며 평양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평양은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특정 지역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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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4부
가. 평양성의 위치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했었다는 확인된 문헌 기록은 <구당서> 권 199상, <신당서> 권 220, <구오대사> 권 138,
<송사> 권 487, <遼史拾遺(요사십유)> 권 7, <원사> 권 59,
<자치통감> 권 271, <通鑑地理通釋(통감지리통석)> 권 10, <御批歷代通鑑輯覽(어비역대통감집람)> 권 48,
<통지> 권 41, <欽定續通志(흠정속통지)> 권 635, <명일통지> 권 89,
<흠정만주원류고> 권 12, <鄭開陽雜著(정개양잡저)> 권 5, <宣和奉使高麗圖經(선화봉사고려도경)> 권 3,
<통전> 권 186, <당회요> 권 95, <五代會要(오대회요)> 권 30,
<文獻通考(문헌통고)> 권 325, <欽定續文獻通考(흠정속문헌통고)> 권 230, <欽定續通典(흠정속통전)> 권 135,
<大學衍義補(대학연의보)> 권 155, <太平御覽(태평어람)> 권 783, <冊府元龜(책부원구)> 권 498,
<도서편> 권 50, <山堂肆考(산당사고)> 권 29, <御定淵鑑類函(어정연감류함)> 권 135 등 27종을 열거할 수 있다.
정리하면 산서성 원곡 서북에 위치한 예읍(濊邑)은 임분이며 단군조선의 도읍지 평양(성)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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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5부
가. 평양성의 위치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문헌을 검토해보자.
곽박(郭璞)이 지은 <산해경>에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 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 천독 기인수거 외인애지) 동해안 북해의 모퉁이(깊숙한 곳)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이다. 조선을 천독이라 하며 그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가까이하고 사랑한다.)”
동해는 <그림 1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천연호수로 발해라고도 부르던 곳을 뜻하고 북해(北海)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천연소금이 나오는 염지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북해 모퉁이 또는 깊숙한 곳이란 왕검단군이 직접 다스리던 진한의 도읍지가 있는 평양을 뜻한다. 평양성은 압록수 우측에 있다. 그래서 물 가까이 산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천독(天毒)이란 하늘의 독을 가지고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천축국(天竺國)이며 도덕(道德)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문서(文書) 즉, 많은 역사와 글을 가지고 있으며 금, 은과 돈을 가지고 나라(단군조선) 가운데서 죽음을 무릎쓰고 떠나갔다”라고 곽박이 주해를 했다.
단군조선 제21대 소태(蘇台)단군 때인 BC1286년에 색불루(索弗婁)가 무력정변(武力政變)으로 정권을 잡자 단군왕검의 직계 손의 일부는 단군조선의 정통성이 없어진 것으로 믿고 당시의 서역인 경도 110도로 나누어진 황하를 건너 피난을 갔고 색불루가 제22대 단군이 된다.
그 후 약 1048년이 지나 단군조선의 진한(진조선)이 BC237년경에 흉노 모돈(冒頓)에게 망하고 변한(번조선)이 위만에게 BC194년경에 망하자 많은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다시 산서성에서 황하를 건너 서역인 신강성[사천성], 청해성, 감숙성, 서장성 일대로 가서 이곳에 5천축국을 세우게 된다.
천축국은 동, 서, 남, 북, 중앙으로 다섯 천축국이 있었는데 남천축국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출생하였다. 한국의 역사학계가 통설로 믿고 있는 천축국은 인도(印度)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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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의 강역 연구> - 제56부
가. 평양성의 위치

인도의 역사서 어디에도 인도에 천축국이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조국을 떠난 이들 유민들이 BC57년경에 다시 선조들의 고향인 단군조선 진한이 있던 평양(平壤)에 와서 신라(금성)를 세워 살다가 고구려에 밀려 변한땅인 산서성 남부 원곡(垣曲)으로 옮겼으며 다시 강소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지나(支那)의 여러 문헌사료들에 “신라는 본래 진한의 후예다” 또는 “신라는 본시 변한의 후예다”로 기록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진번”이란 이름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앞 제2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왕검단군의 신설(神設)은 왕검이 창시한 신교(神敎)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교를 수두교 또는 선교(仙敎)라고도 한다. 선교에서 불교와 도교가 파생된 것으로 선교, 불교, 도교는 그 근본이 똑같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선조가 바로 왕검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1872년 영국 앜스퍼드(Oxford) 대학에서 출판한 <범어-영어 사전(Sanskrit English Dictionary)>에 “단군은 석가모니의 선조들 중의 한 사람이다”라고 적혀있다.
또한 인도인(印度人)들은 예부터 “중국을 진단(震旦)이라 칭했으며 <繙譯名義集(번역명의집)>에 이르길 동방이 진단이며 해가 뜨는 방향으로 옛날에 진단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天中記(천중기)>에는 “진단은 총하(蔥河)의 동쪽으로 해가 처음 떠서 비추는 동쪽 모퉁이라서 옛날 얻어진 이름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총롱산(蔥聾山)은 지금의 오노산(五老山)이다. 산서성 우향현 서남이다. <산해경>에 총롱산 가운데는 큰 계곡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노산은 오노봉(五老峰)이란 이름으로 오늘날의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 중조산의 일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총하(蔥河)는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가 굴곡하는 구간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산서성 남부에 단군조선의 삼한인 진한(평양), 마한(조양진), 변한(원곡)이 위치한 지역이며, 마한인 백제는 마한 54국의 하나인데 <攻媿集(공괴집)>에 “백제는 진단지역에 있으며 모두 54개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삼한의 하나인 마한지역이 진단지역임을 고증해주고 있다.
진단(震旦)의 ‘震’자는 벼락이란 의미이고 ‘旦’자는 해가 돋는 곳이란 뜻으로 진단이란 두려움과 권위을 떨치는 곳으로 왕검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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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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