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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漢四郡)은 있지도 않았다(上) 위만의 조선 망명을 숨긴 사마천

글쓴이 : 폴 김 날짜 : 2011-08-27 (토) 02:22:15

단군조선(壇君朝鮮)은 국초(國初)부터 진한(眞韓: 진조선), 마한(馬韓: 막조선), 변한(弁韓: 번조선), 즉 3한(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진한은 단군(壇君)이 직접 통치하고 단군을 보좌하는 왕으로 변한과 마한을 두었다.

단군조선 변한(弁韓)을 연(燕)나라 도적(盜賊) 위만(衛滿)이 술수(術數)로 빼앗아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여 ‘위만조선衛滿朝鮮’이라 알려진 나라를 한(漢)나라 무제(武帝: 유철)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하고 그곳 옛 번조선(변한)땅에 낙랑(樂浪),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도(玄菟)를 설치했다는 설(說)이 바로 한사군(漢四郡)이다.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연(燕)나라는 11개로 여기서의 연(燕: BC202-BC195)은 한(漢) 나라 유방(劉邦)이 개국(開國) 공신(功臣)이던 자신의 친구 노관(盧綰)을 제후(諸侯)로 책봉한 나라를 말한다. 이 연(燕)은 주(周)나라 무왕이 자신의 동생 소공석(召公奭)을 연의 제후로 봉(封)한 그 연(燕)을 계승한 것으로 연의 도읍(都邑)은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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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연나라의 전쟁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BC770-BC233)는 단군조선 35대 사벌(沙伐) 단군부터 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 시기로 단군조선은 연(燕), 제(劑), 조(趙)와 끊임없는 전쟁으로 일관한다.

<한단고기◦단군세기>의 기록을 보자. “35대 사벌단군 갑술 66년(BC707) 단제(壇帝)께서 조을(租乙)을 파견하여 똑바로 연나라 도성(하남성 정주)을 돌파하고 제(齊)나라 군사와 임치(臨淄)의 남쪽 교외에서 싸워 승리하였음을 알려왔다.”

“36대 매륵(買勒)단군 무진 52년 (BC653) 단제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須臾: 변한을 칭함)의 군대와 함께 연(燕) 나라를 정벌하였다. 이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위급을 알리자 제나라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 고죽(孤竹: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산서성 서남부 황하강이 꺽기는 지점으로 현, 영제시(永齊市) 일대)에 처들어왔는데 우리의 복병에 걸려서 싸워 보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하고 물러갔다.”

변한(弁韓) 제68대 왕(王) 수한씨(水韓氏) 때 연(燕)과의 전쟁에서 연나라가 패하여 변한은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를 인질(人質)로 잡았다. <위략>도 우리와 같은 기록을 하고 있다. “燕有賢將秦開爲質於朝鮮(연유현장진개위질어조선) 연나라 장수 진개가 조선에 인질로 잡혀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사기> ’흉노전’ 은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 燕公子爲質於番韓(연공자위질어변한) 연나라 공자(?)가 번한에 인질로 잡혀있었다.” 진개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공자’라고 인질의 이름을 감춘 것이다. 그 이유는 진개가 연(燕)나라 소왕(BC312-BC279)의 아들이기때문이다. 조선에 28년간 인질(人質)로 있던 진개(秦開)가 변한을 탈출한 후 변한(弁韓)에 처들어와 조선(朝鮮)의 서쪽 변두리 천리땅을 빼앗았다. 이때부터 단군조선은 국력이 기울기 시작한다.

 

www.zh.wikipedia.org

• 위만에게 빼앗긴 변한(弁韓) 땅

진시황이 BC221년에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하고 15년 만인 BC206년에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反亂)에 의해 망한다. 진승, 오광, 항우, 유방 등의 농민 반란에서 유방(劉邦)이 승리하여 한(漢)나라를 세우게 된다.

한(漢)의 제후가 된 노관(盧綰)이 유방을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도망하자 노관의 부하인 위만(衛滿)은 1천여명을 데리고 변한 왕 기준(箕準:BC243-BC194)에게 망명하니 준(準) 왕은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아 변한의 서쪽 땅 상하운장(上下雲障)을 맡겨 다스리게 했다.

위만은 차츰 다른 나라에서 온 망명자들로 세력을 규합하여 위만이 번조선(番朝鮮)에 망명온지 3년만에 준(準)왕에게 반기를 들고 왕위를 빼앗는다.

이 부분을 사마천의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연왕노관반 입흉노 만망명 취당천여인 추결만이복이동주출새 도패수 거진고공지상하장) 연왕 노관이 반란을 하여 흉노로 들어가고 만(위만)은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망명하였다. 머리를 뒤로 틀어 땋은 몽치머리와 만이(오랑캐) 복장을 하고 동쪽 요새를 탈출해 패수를 건너 진(秦)나라의 옛 빈 땅 상하장에서 살았다.”

망명(亡命)이란 혁명 또는 그밖의 이유로 자기 나라에 살지 못하고 남의 나라로 몸을 피하는 것을 말한다. 위만(衛滿)이 망명(亡命)은 했는데 망명한 나라가 없다. 사마천(司馬遷)은 위만이 단군조선(檀君朝鮮) 변한(弁韓)으로 망명했다고 기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소위 ‘춘추필법春秋筆法’ 이라 한다. 과연 사마천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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