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獨島)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왜(倭 일본)는 독도를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할뿐만 아니라 한반도 동쪽 바다인 동해(東海)를 일본해(日本海: Sea of Japan)라고 우기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대한민국 영토 영해 침략과 같은 도발행위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망동은 우리의 영토 간도(間島: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와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얻기위해 러시아와 벌인 싸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로 전쟁에 돌입하여 1905년 가을까지 약 1년 반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8월 일본 정부는 러시아 군함을 감시하기 위하여 독도에 군사용 망루를 설치하려고 한다.
독도(獨島)가 대한제국(大韓帝國: 조선)의 영토임을 모르지 않는 일본은 간교(奸巧)한 방법으로 시마네현 어부 나까이 요사브로(中井養三郎)을 앞잡이로 내세워 연극을 시작했다. 그 내용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1904년 9월 29일 시마네현 어부 나까이 요사브로가 일본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아 일본 정부가 독도를 시마네현에 소속시켜 일본의 영토로 선점 편입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라면 거제도에 살고 있는 한 어민이 대한민국의 외무부, 내무부, 농수산부에 서한을 보내 경상남도 거제도에 일본 땅 구주(九州)를 편입시켜 주라고 요청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영토 구주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될 수 있다는 이론과 같다.
일본은 엉터리 연극을 합리화하기 위해 1905년 1월 28일 일본내각이 우리의 영토 독도(獨島)를 일본말로 ‘다케시마(竹島)’ 란 명칭으로 바꿔 시마네현 관할로 지정 의결하고,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공포하여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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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행 잊으면 안돼
같은 해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보호조약 일명 을사늑약 (乙巳勒約)이 우리 정부의 의사(意思)와 관계없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으로부터 금년 2012년은 102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일제에 의해 민족사가 왜곡되고, 민족 말살정책을 내세운 일제하에서 우리가 우리 말을 사용하지 못했으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유린당하고 정치탄압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죽어갔다. 또한 식민지인(植民地人)이란 열등감을 유발시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심적 고통을 받아 왔었다.
100년은 긴 세월이다. 이제 우리 민족은 대오각성(大悟覺醒: 크게 깨달아 정신을 차림)하여 민족의식혁명 (民族意識革命)을 시도 할 때가 되었다. 동이배달한민족 (東夷倍達韓民族)의 자존심 회복과 불굴의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되살려 그동안 일제가 망쳐놓은 잘못된 모든 것들을 원상복귀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동해로는 승산이 없어
간계(奸計)한 일본이 일본해(Sea of Japan)를 주장하는 지금 동해(東海)로는 승산(勝算)도 명분도 없다. 동해(東海: 동쪽의 바다)는 방향 설정이지 소유의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국호는 처음부터 COREA이고 동쪽의 바다는 한국해(Sea of Corea)였다. 한국해(韓國海)라고 주장해야 대한민국의 소유가 된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바뀌지 않고 일본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민족의 잘못된 의식구조(意識構造)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이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가장 근본적인 일이 바로 국호를 원상태인 COREA로 되돌리는 동시에 동해가 아닌 한국해(Sea of Corea)로 원상복귀 하는 일이다. 원래의 국호인 COREA를 사용하게 되면 독도(獨島)문제와 동해(東海)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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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le(Cauly)의 어원은 가우리(高句麗)에서
라틴어 알파벹 (Latin Alphabet)으로 표기한 한국(韓國)국호의 시원(始原)은 900년간 아시아 대륙을 지배한 가우리(高句麗)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주몽(朱蒙: 추모, 중모, 동명성왕) 황제가 졸본천(卒本川)의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가우리”라고 한다. 가우리는 이두어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두어라고 부르지 않고 단군조선(壇君朝鮮)때부터 부르던 ‘향서’나 ‘국서’나 ‘가명’등으로 불렀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소리글인 한글로 국호를 “가우리”라 했던 것이다. 가우리를 한자로 표기하면 가(高) 우(句) 리(麗) 즉, 高句麗(고구려)인 것이다.
한자는 배달국(倍達國: BC3898)때 만들어진 동이배달한민족의 뜻글자로 단군조선때는 뜻글자인 진서(眞書: 참글로 한자漢字의 전신)와 소리글자인 가명(假名)을 썼다. 3대 가륵단군 때인 BC2181년 을보륵이 가림토 38글자를 만든 것이 한글의 전신이며 당시에는 향서, 국서, 가명 등으로 불렀고 신라때는 향찰, 고려 중렵때는 이두, 조선때는 언문, 암클, 국문, 한글로 부름)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자가 우리말인 한가지 증거로 우리는 한자(漢字) 한 글자를 한가지 음(音)으로 발음하지만 지나(支那) 사람들은 대개 2음으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단군조선을 한자로 표기하면 ‘壇君朝鮮’이고 한글로 읽으면 ‘단군조선’으로 한 글자를 한 음으로 발음한다.
그러나 지나인들은 단(壇)을 ‘탄’으로, 군(君)을 ‘쮜인’으로, 조(朝)를 ‘차우’로 선(鮮)을 ‘쉬엔’으로 한자(漢字) 한글자를 2음으로 발음하다. 한자 네자가 한글 네자로 발음되는 ‘단군조선’과 일곱자로 발음되는 ‘탄 쮜인 차우 쉬엔’. 어느쪽이 표준어인가! 당연히 한글이 표준어인 것이다.
지금의 지나인들은 고(高)를 ‘꼬우’로 발음하고, 구(句)는 ‘쮜’로 발음하며, 려(麗)는 지금도 ‘리’로 발음하고 있다. 가우리 건국당시 高(가)를 지나인들은 ‘가우’ 로 발음하고 句(구)는 ‘구’로 麗(리)는 ‘리’로 발음한 것으로 보인다.
‘가우리’를 한자로 표기하면 ‘高句麗’인데 지나인들은 ‘가우 구 리’로 발음되는 것을 쉽고 부드럽게 발음하기위해 중간 글자인 句(구)를 생략하고 ‘가우리’ 즉 지나인들의 표기로 ‘高麗(가우리)’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당시 지나인들은 ‘가우리高句麗’를 ‘가우리高麗’로 생략해서 불렀던 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高句麗를 ‘가우리’로 발음한 것이나 지나인들이 구(句)자를 빼고 高麗 두글자를 읽어도 ‘가우리’인 것이다.
이와 같은 증거로 지나의 25사중 주서(周書: 영호덕분), 수서(隋書: 위징, 장손무기), 북사(北史: 이연수), 구당서(舊唐書: 유구), 신당서(新唐書: 송기, 구양수), 송사(宋史: 탈탈) 6가지 사서가 모두 고구려(高句麗: 가우리)를 고려(高麗: 가우리)로 기록하고 있다.
<下편 계속>